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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 사진 안 받은 지 2년… 뭐가 달라졌나

사진란 폐지, 너도나도 동참하세


취업 이력서에 점점 사진이 필요 없게 됐다. 특히 이미지가 중요하다고 알려진 승무원 취업사진의 경우 최대 수십 만 원을 호가하는데, 구직자들이 이를 아낄 수 있게 된 것이다. 과연 기업의 이 같은 정책이 구직자들에게는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지, 최근의 ‘취업사진 시장’을 짚어봤다.



“그래서 요즘은 아예 포토샵을 자연스럽게 하는 게 유행이에요.”


한 사진관 대표에게 최근 기업들이 이력서에서 사진란을 폐지하고 있는 데 대한 의견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지난 2014년 아시아나항공이 객실승무원 이력서 사진란을 폐지한 것을 비롯해 현대자동차, 포스코, SK, 효성, 롯데, LG 등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올 상반기를 앞두고는 CJ와 이랜드도 합류했다. 삼성그룹은 이전부터 열린채용을 통해 사진을 받지 않고 있다. 포토샵 기술의 발달로 증명사진과 실물의 차이가 점점 커지면서, 증명사진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이 회사가 밝힌 이유다. 이에 일부 사진관은 아예 ‘최대한 티가 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만들어주겠다’를 홍보도구로 내걸고 있었다.



[르포] 이력서 사진란 폐지 후 2년… “없애려면 다같이 없애야죠”



최근 많은 기업이 이력서의 사진란을 폐지했다. 왼쪽부터 2016 상반기 CJ, 롯데, LG, SK 이력서(시계방향)


“우리는 이목구비를 미세하게 만져드려요”


지난 2일, 사진관이 몰려있는 홍대를 찾았다. 일반 사진관과는 달리 입구에서부터 정장차림을 한 청년들의 대형 증명사진을 걸어두고 홍보하는 전문 취업사진관이 많았다. 이중 한 곳을 들어가 봤다.


우선 카운터에 붙어 있는 가격표를 살펴봤다. 잡티제거 등 기본 보정만 제공되는 2만 원대를 시작으로 의상과 헤어를 포토샵을 통해 기업에 맞는 스타일로 변경하는 만원짜리 ‘패키지 상품’도 있었다. 여기에 배경을 파랑색 등 기업이 선호한다는 색상으로 추가만 해도 1만원을 더 내야 했다. 가격을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매장을 둘러보니 촬영실과 메이크업실, 의상실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촬영 전 이곳에서 의상을 빌리거나 메이크업을 받으면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메이크업실에서는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메이크업 비용은 5만원. 의상실에는 블라우스와 치마, 구두까지 이른바 ‘취업의상’이 구비돼 있었다.


또 다른 스튜디오를 들어가 봤다. 상담을 받으려 카운터에 서니 직원이 설문지 양식의 종이 한 장을 줬다. 원하는 이미지부터 헤어스타일, 표정, 자세까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질문지였다. 개인별 맞춤 이미지로 작업해준다는 이유 때문인지 가격은 앞선 사진관보다 조금 비쌌다.


“요즘 기업들이 포토샵을 많이 하는 걸 안 좋아하는 것 같다”고 운을 떼 봤다. 그러자 상담실장은 기다렸다는 듯 “그래서 우리는 이목구비를 아주 미세하게 만진다. 티가 나지 않으면서 예쁘게 만드는 기술이 더 어려운 것 알지 않느냐. 원래는 가격을 추가해야 하지만 일단은 기존대로 쳐 주겠다”고 말했다.


지방의 한 대형 사진관은 블로그에서 아예 ‘주요기업의 사진란 폐지’ 뉴스기사를 언급하며 “사진의 본질은 자연스러움”이라며 “우리 사진관은 이런 자연스러운 보정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홍보했다. 업계 동향에 대응하는 발 빠른 움직임이었다.


가격 하락? 손님 감소? 달라진 것 없어


기업의 ‘사진 폐지 움직임’은 일부 사진관의 마케팅 수단에는 활용됐어도 실질적인 가격 하락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홍대와 강남 일대의 대다수 사진관 관계자들은 ‘크게 체감하지 못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기업이 사진을 안본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가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보통 수십 개 기업에 지원하는 구직자들에게 취업사진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르포] 이력서 사진란 폐지 후 2년… “없애려면 다같이 없애야죠”

사진관이 몰려있는 한 대학가. 사진=이도희 기자


홍대의 한 사진관 대표는 “오래전부터 이력서에 사진이 필수항목처럼 들어갔는데 갑자기 몇몇 기업이 안 본다고 해서 학생들이 안 찍겠나”라며 “또 이 흐름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쪽 업계도 별다른 동요는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진관 관계자는 “몇 년 전에 사진란을 없앤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정작 구직자들은 이 내용을 잘 모르더라”며 “매년 새로운 구직자가 생기는데 그때마다 일깨워주질 않기 때문인지 필요 없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사진을 찍고 간다. 말해줄까도 생각했지만 장사하는 입장에서 섣불리 입이 떨어지질 않더라”라며 멋쩍어 했다.


하지만, 취지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승무원 취업사진을 전문으로 찍는다는 한 사진관 실장은 “승무원의 경우 백만 원 가까이 드는 경우도 있다”며 “학원에서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항공사별로 원하는 이미지가 다르다고 설명하는데, 사진도 여기에 따라 달리 찍다보면 헤어, 메이크업, 촬영비용 다 합쳐서 수십 만 원은 우습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다 같이 가격을 줄일 수 있다면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가격을 줄이지 못하는 것일까. 사진관이 비용을 책정하는 기준은 기본적으로 시설이용료를 근거로 한다. 특히 승무원 등 취업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관의 경우 홍대, 강남 등 젊은이들이 몰리는 번화가에 있기 때문에 임대료부터 만만치가 않다. 카메라나 의상, 메이크업 도구 등을 마련하는 비용도 감안해야 한다.


카메라 뿐 아니라 조명, 인화기, 현상기 등 장비를 구비하기 위해서는 수 천만 원이 든다. 여기에 메이크업, 포토샵 등의 전문 인력을 고용하는 데 따른 인건비까지 고려하면 사진 촬영비용에서 이윤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없애려면 다 같이 없애야 진짜 도움 될 것


사진비용절감을 누구보다 바라는 것은 바로 구직자들이다. 이들은 “취업학원이며 필기시험 문제집, 어학성적 응시료 등 취업을 위해 드는 돈이 만만치 않은데 사진비용까지 점점 비싸지면서 부담이 너무 크다”고 씁쓸해 한다.


은행권 취업을 준비 중이라는 구직자 A씨는(경제학과 졸) “이력서에서 사진을 폐지하는 데엔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다만 특정 산업이라도 모든 기업이 일괄적으로 시행해야 구직자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곳이 사진을 받지 않아도 한 곳만 지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곳에 지원하기 위해 어차피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승무원 학원에 다니고 있는 안씨(중어중문학과 졸)도 여전히 사진을 찍기 위해 싸고 좋은 사진관을 알아보는 중이다. 안씨는 “승무원 업계에서는 아시아나항공만 사진란을 없앴을 뿐 다른 국내 항공사나 외항사에는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지 않을 수가 없다”며 “기업이나 사진관 모두 구직자의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도희 기자(tuxi0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