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컴퓨터공학도에서 스타셰프로… 훈남 귀요미 이원일 셰프

이원일 셰프 사진=김기남 기자


최근 몇 년 사이 ‘먹방’, ‘쿡방’ 열풍이 불면서 요리사가 선망의 직업으로 급 부상하고 있다. 바야흐로 셰프의 전성시대다. 이 때문에 방송 출연과 가게 및 식당 운영 등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요리사들을 섭외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원일찡’, ‘푸(우)원일’, ‘귀요미’ 등 다양한 별명과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스타셰프 이원일 씨가 요리사를 꿈꾸는 청년들을 위해 흔쾌히 시간을 냈다.

여느 연예인 못 지 않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요즘 근황은 어떤가.

어제(인터뷰 전날) 방송을 마치고 새벽 4시에 집에 들어갔다. 요즘에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다. 하루 종일 녹화가 이어지고,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바쁜데다 몸도 고단하고 힘들지만 최근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현재 1호점인 고대점과 2호점인 이대점 등 베이커리를 2군데서 운영하고 있다. 가게도 꼼꼼히 챙겨야 한다. 또 최근에는 한식을 알리기 위한 음식점을 미국 현지에서 준비 중이다. 새로운 한식 양념 및 소스류를 개발하는 것도 추진하고 있는 일 중 하나다.

최근 요리사에 대한 직업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기분이 어떤가.

방송의 영향으로 셰프라는 직업이 화려해 보이지만 정말 멀고,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특히 3D 직군이라 요리사들이 중간에 쉽게 포기하기도 한다. 또한 대부분의 초보 요리사들은 쥐꼬리만 한 ‘열정페이’를 받으며 비정규직으로 힘들게 일하고 있다. 요리사라는 직업은 어디에서 일하건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방송으로 인해 요리사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친숙한 느낌으로 일반 대중에게 다가가는 등 인식이 달라지고 있어 좋아 보인다. 예전의 요리사라는 직업은 맛보기 힘든 어려운 요리를 하는 딴 세상 사람인 것 같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대중들에게 친근하고 쉬운 음식을 조리하기도 하면서 같이 대중들과 호흡할 수 있는 직업이 된 것 같아 좋다.


셰프가 되기까지 고군분투했다던데.

맞다. 어렸을 적부터 꿈은 요리사였다. 하지만 부모님이 워낙 반대를 해서 요리 공부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선 부모님의 바람대로 상명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하고 싶은 요리를 하지 못하면서 1년 동안 억지로 학과공부를 했지만 전공에 흥미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후 필리핀으로 6개월 배낭여행을 떠났다. 필리핀에 가서 돈을 벌면서도 요리사에 대한 갈증은 커져만 갔다. 이후 상명대를 자퇴하고 필리핀국립대학교 디자인학과에 편입을 했다. 이때도 부모님 몰래 진행해야만 했다. 당시 다니던 디자인학과가 (우리나라로 치면) 학부로 확대되면서 호텔외식경영을 전공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이때부터 실질적으로 요리계에 입문하는 전환점을 맞은 셈이다. 학교를 거의 6년간 다닌 셈이다. 군대는 카투사로 입대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식당에 근무하며 궁중음식, 사찰음식, 전통주 등의 한국 음식 관련공부를 병행했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두둑한 상’ 이라는 한식당도 운영했었고, 양식의 기술을 한식에 접목하기 위해 양식당 근무경력도 쌓았다. 지금은 같이 근무했었던 여러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같이 팀을 이뤄 베이커리와 음식점을 공동운영하고 있다.


요리에 관심은 언제부터였나

어렸을 때부터 그러니깐...어머니가 식당을 운영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께서 워낙 음식을 잘하셨고 자연스레 어깨너머로 배우게 됐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한다는 것은 늘 의미 있고 기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일의 매개체를 음식으로 선택한 것이 나를 요리사로 만들었다.

한식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어머니의 영향도 있었지만, 우연찮게 이탈리아 요리사를 만난 경험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요리사가 특별한 음식을 만들 줄 알았는데, 이탈리아의 가장 기본적인 가정식인 ‘라자냐’ 를 만들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 때 이탈리아 요리사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추억의 라자냐를 만들었다.’ 라고 했을 때 나 역시도 추억을 만들 수 있는 한식을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컴퓨터공학도에서 스타셰프로… 훈남 귀요미 이원일 셰프



요리하면서 가장 힘들게 했던 점은 무엇이었나.

요리를 처음 배울 당시에는 막내생활, 즉 ‘도제식 교육’이 기본이었기에 고단하고 버티기가 힘들었다. 하루에 16시간에서 18시간을 근무해야 한다. 주 5일 근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또한 내가 후배들과 같이 일하게 되었을 때 그들의 힘든 점을 이해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지금도 종종 힘들 때가 있지만 내 음식을 먹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미소를 볼 때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큰 보람을 찾게 된다.

셰프라는 직업에 대한 자신의 생각

하루에 적어도 1끼에서 3끼를 먹어야 하는 게 사람이기에 배고플 때 마다 내 음식을 맛있게 먹었던 사람들이 나를 다시 찾아준다는 사실이 내게는 큰 도움이다. 그건 만으로도 나를 외롭게 만들지 않으니까.

셰프로서 청년들이 종사하기에 이 분야의 비전은 어떤지

앞서 말했듯이 셰프· 요리사 라는 직업은 육체적 노동을 수반하는 직종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가지고 고된 노동을 견디기는 힘들다. 오랜 근무시간과 반복 작업을 견뎌낼 수 있는 인내심이 있다면 맛있는 음식으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직종이니 도전해 후회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만큼 노력의 여하에 따라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미래의 셰프가 될 청년들에게 ‘힘내라’고 격려하고 싶다.

향후 이원일셰프는 어떤 셰프가 되고 싶은지.

늘 곁에서 맛있는 된장찌개 한 그릇 보글보글 끓여줄 수 있는 친근하고 정직한 요리사가 되고 싶다.


정유진기자 jinji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