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가 있다. 흰 종이에 무뚝뚝하게 적힌 몇 글자가 코끝을 시큰하게 만들 때. 30년째 카피를 써온 광고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선생, 정철 작가는 말한다. ‘사람 이야기’를 할 때 그렇다고. 그리고 그는 한 마디 덧붙인다.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이 카피다‘.



카피라이터 정철  “가장 재미있고 감동적인 카피는 ‘사람’ 이야기”

정철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졸

MBC애드컴 카피라이터

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겸임교수

서울카피라이터즈클럽 부회장

정철카피 대표

<내 머리 사용법><한 글자><불법사전><인생의 목적어> 등




카피라이터로 30년. 대체 이 직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다른 건 할 게 없어서요. (웃음) 가장 큰 매력은 지루할 틈이 없다는 거예요. 카피라이터는 회사에 출근하면 아침에는 책을 팔고, 오후에는 옷을 팔아야 해요. 한 가지 아이템이 아니라 대여섯 개의 아이템을 계속해서 생각해야 하니 굉장히 힘든 작업이죠. 하지만 약사, 때로는 건축가가 되면서 여러 가지 직업을 가져볼 수 있어서 흥미로워요.




‘글 쓰는 정철’의 시작이 궁금해요.

중학교 3학년 때 이야기부터 할게요. 여수에서 서울로 전학을 온 때였어요. 서울에 딱 오니 제가 점점 작아지더라고요. 좋은 성적을 받기도 힘들었고, 사투리를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입을 다물게 돼서 친구 사귀기도 쉽지 않았죠. 그러다 교내 백일장이 열려서 시를 써서 출품했는데 장원이 된 거예요. 존재감이 생기자 친구도 사귀기 시작했고, 자신감이 붙어서 글 쓰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런데 제가 선택한 전공은 국문과가 아닌 경제학과였어요. 물론 국문과를 가고 싶었죠. 하지만 당시에 친형이 국문과를 다니고 있던 터라 아버지께서 반대하시더라고요. ‘우리가 무슨 선비 집안이냐’면서 말이죠. 아버지의 바람대로 경제·경영학과를 선택했는데, 가서 공부를 해보니 온통 수학이었어요. 2학년이 되면서는 반 포기했죠. 전공 필수 과목만 수강하고, 나머지 학점은 사학, 신문방송학 같은 수업을 들었어요. 그러면서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어요. 그렇게 4학년까지 글을 쓰겠다며 하숙방에 앉아서 단편을 썼고, 결국 고대문학상을 받았어요. 그 때 생각했어요. 직업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30년 전에는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이 생소했을 듯해요.

맞아요. 사실 저도 카피라이터가 뭔지 몰랐어요. 우선은 글 쓰는 사람이 되려고 기자 시험도 여러 번 봤는데 계속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일반 기업에 원서를 썼죠. 당시는 학생들이 기업을 선택하는 환경이어서 원서를 쓴다는 건 합격이나 마찬가지였어요. 그렇게 원서를 쓰고 나오다가 우연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카피라이터’가 적힌 포스터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무슨 직업인지는 몰랐지만, ‘라이터(Writer)’라는 단어가 있으니 관심이 생겼어요. 아마 그 때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으면 제 인생이 많이 바뀌었을 거예요.




어떤 과정을 거쳐 카피라이터가 되셨나요?

포스터를 보고 카피라이터에 지원하겠다고 했더니 학교에서는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경제학과는 취업이 잘 되는 편이기 때문에 신문방송학과 친구들에게 우선 기회를 줘야 한다고요.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잖아요. 우여곡절 끝에 MBC애드컴에 지원할 기회를 얻었는데, 시험날짜가 먼저 지원했던 기업의 면접날과 겹치는 거예요. 먼저 지원했던 기업은 입사가 확실시되는 상황이었기에 갈등이 됐죠. 그러다 ‘내가 넥타이 매고 일할 사람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짓고 MBC로 향했어요. 먼저 카피시험을 봤어요. ‘검은색 하면 생각나는 단어 10개를 써라’‘서울에 눈 대신에 소금이 내리면 어떻게 될까?’같은 문항이었어요. 재미있더라고요. 그리곤 2차 면접까지 본 뒤 입사하게 됐어요. 꼴등으로요. (웃음)




프리랜서로 활동하신 지는 얼마나 됐나요?

벌써 20년째네요. 여러 상황이 겹쳐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프리랜서로 독립하면 여기저기서 일이 들어올 줄 알았는데, 1년 반 가까이 제대로 된 일이 없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니 국내 대형 광고대행사에서 함께 작업하자는 연락이 왔어요. 정말 열심히 했죠. 결과도 좋고, 반응도 좋았어요.




카피라이터는 어떤 일을 하나요?

두 가지예요. 쓰는 일과 쓴 카피에서 군더더기를 거두는 일. 더 거둘 것이 없으면 일이 끝나는 거죠. 카피라이터는 이런 훈련이 굉장히 잘 되어 있어요. 사람들은 꽃다발을 받았을 때보다 꽃 한 송이를 줬을 때 비로소 꽃을 봐요. 핵심은 한 마디에 담기는 거예요.




작업 과정이 궁금해요.

프리랜서다 보니 대행사에서 연락이 오면 가서 작업해요. 우선 회사에 가서 광고제품에 대해 설명을 쭉 듣죠.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적어 내려가요. 색깔, 동물 어떤 것이든 지요. 그렇게 적어 놓은 것들을 보면 A안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잘 안 풀릴 때는 예전에 적어놨던 카피를 쭉 살펴보는데, 이때 5~6개 안이 나오기도 하고요. 5년 전에 커피 광고로 실패했던 것이 맥주 광고에는 잘 맞을 수 있으니까요.





카피라이터 정철  “가장 재미있고 감동적인 카피는 ‘사람’ 이야기”

최근 <카피책>이라는 책을 쓰셨어요.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몇 년 전부터 계획했던 책이에요. 평생 카피 써서 밥 먹고, 술 먹고 했는데 죽기 전에 하나는 남기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다른 책을 쓰는 게 재미있어서 시기가 밀려났지만, 더는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카피를 하나씩 모아서 쓰기 시작했어요. 쓰다 보니 카피라이터 지망생이나 현역 카피라이터를 넘어서 누구든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떤 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외모나 명함, 말투, 관계 같은 것들이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온라인 소통이 늘어나면서 글이 곧 그 사람인 시대가 됐잖아요. 누구나 작가이고, 카피라이터인 시대인 것이죠.


더구나 대부분의 SNS가 긴 글을 쓰는 형태가 아니다 보니, 모두가 카피라이터처럼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책을 통해 ‘이렇게 써야 한다’기 보다는 ‘나는 이렇게 씁니다. 당신은 어떻게 쓸 건가요?’라고 묻고 싶어요.




카피라이터로 일하며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20년 전이었어요. 당시 터널 앞에 한 개 동만 있는 아파트에 살았었죠. 채광이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파트 바로 앞에 대기업에서 고층 스포츠센터를 짓기 시작하더라고요. 주민들은 반발하고 나섰고, 저는 카피라이터라는 이유로 대책 회의에 불려 나갔어요. 아파트 현수막에 넣을 문구를 정하라면서요.


정신 차려보니 아파트에는 제가 쓴 문구가 걸려있더라고요. 보통 그럴 때는 ‘누구누구 각성하라! 물러가라!’라고 쓰잖아요. 저는 그런 문구는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어요. 투쟁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또 하나의 집단 이기주의로 보이는 문구니까요. ‘사람’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었죠. ‘아이들이 햇볕을 받고 자랄 수 있게 한 뼘만 비켜 지어주세요’라고 썼어요.


뉴스에 나올 정도로 화제가 됐고, 해당 기업에서는 부담을 느꼈는지 정말 한 뼘 비켜서 건물을 올리더라고요. 가장 재미있으면서 울림이 큰 글은 결국 ‘사람’이야기예요.





글쓰기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대학생이 많아요. 어떤 훈련을 하면 좋을까요?

글 잘 쓰는 방법은 글을 쓰는 거예요. ‘잘’ 쓰려고 하지 말고 그냥 쓰세요. 처음에는 괴발개발 쓰겠지만, 그 글은 분명 의미가 있어요. 실패하는 과정은 곧 자신에게 에너지가 될 테니까요. 앞으로 글쓰기 공부를 6개월 동안 해서 소설을 쓰겠다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써야해요. 내공은 실패할 때 마다 쌓여요. 저지르지 않으면 내공 쌓을 기회조차 없죠. ‘바다’를 바다라고 이야기하면 되는 거예요. 멋있게 표현하는 것은 그다음 문제죠.




지금 이 청춘들을 표현할 수 있는 카피가 있을까요?

‘꼰대’가 되지 않으려는 몸부림. 청년들이 어떻게든 사회에 편입되려고 무딘 애를 쓰잖아요. 그런데 동시에 꼰대가 되기 싫어해요. 사회로 나가면서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 듯해요. 30년 전에도 이런 몸부림이 있었겠지만, 과거에는 춤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처절한 느낌이 들어요. 사회에 먼저 나온 선배로서 굉장히 미안한 상황이죠.



카피라이터 정철  “가장 재미있고 감동적인 카피는 ‘사람’ 이야기”



카피라이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 한 마디.

꿈 이야기를 해볼까요? 가끔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다’며 메일이 와요. 중·고등학생, 심지어 초등학생에게도 말이죠. 어느 날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제 꿈은 카피라이터인데, 카피라이터가 뭔가요?’라는 메일을 보내왔어요.(웃음) 황당하기도 했고 재미있었어요. 청소년을 비롯해 젊은 친구들이 꿈에 대한 강박 같은 게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중학생만 되면 ‘꿈이 뭐야?’라고 묻고 없다고 하면 타박을 주죠. 이런 압박 때문에 그럴싸한 일을 서둘러 잡아서 ‘이게 제 꿈이에요’라고 말해요. 그리고 그 꿈을 꽉 잡고 놓지 않죠. 꿈은 14살에 찾아올 수도 있고, 35살에 찾아올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때 억지로 잡은 꿈을 놓지 않으면 찾아온 꿈을 놓치고 말아요. 진짜 내 꿈이 날 찾아올 때 잡을 수 있을 정도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해요.


꿈은 가슴이 뛰는 일이에요. 카피라이터가 뭔지도 모르면서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하면 병원을 가봐야죠.(웃음)







카피라이터 정철  “가장 재미있고 감동적인 카피는 ‘사람’ 이야기”








광우병 파동이 촛불로 이어지던 해, 종이컵 하나를 두고 쓴 카피.


종이컵에게


너는 물이나 커피를 담는 싸구려 용기였다. 환경에 부담만 주는 허접한 용이였다. 그러나 너는 다시 태어났다. 촛불을 담는 용기로 다시 태어났다. 아빠손에 들린 너는 저항이었고, 엄마 손에 들린 너는 기도였으며, 아이 손에 들린 너는 희망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네 이름 앞에 '싸구려'나 '허접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다. 네 이름은 용기다.












김은진 기자(skysung89@hankyung.com)

사진 =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