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천국' 스웨덴의 6시간 근무, 허와 실

사진 = 한국경제 DB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저녁이 있는 삶’이 화두가 된 것은 2012년 대선 때다. 당시 대선후보였던 손학규 후보가 ‘저녁이 있는 삶’을 선거구호로 내걸면서 중산층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것. 물론 사회가 변모함에 따라 일부 직장인은 저녁이 있는 삶을 영위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는 아직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저녁이 있는 삶은 물론, 이제는 6시간 근무제도 도입 움직임이 일고 있는 복지천국 스웨덴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6시간 근무, 스웨덴에서도 ‘논쟁 중’


최근 몇 년 새 스웨덴에서는 ‘짧고 굵게’ 일하는 방식을 두고 고민 중이다. 대부분의 OECD 국가와 마찬가지로 하루평균 8시간 일하는 것이 일반적인 스웨덴에서는 최근 6시간 근무제 도입을 놓고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스웨덴은 주당 50시간 이상 근무하는 근로자가 1% 남짓에 불과(한국 19%)하고, 480일의 육아휴직과 25일의 연차가 보장돼 유럽 내에서도 근무환경이 좋기로 손꼽히는 나라다.


실제로 스웨덴에서는 하루 8시간 근무를 초과하면 고용주는 오후 8~10시까지는 임금의 30%, 10시 이후에는 2배의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또한, 하루 최대 12시간 근무를 초과할 수 없게 돼 있을 만큼 스웨덴의 근로자 권익 부분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정비돼 있다. 그러나 이런 스웨덴에서조차 최근 ‘일과 삶의 균형’을 주요 국가정책으로 내세워 효율적 근무제도 도입을 위해 적극 나섰다.


영국 BBC 방송 보도에 따르면 스웨덴의 디지털미디어 제작회사인 ‘백그라운드 AB’는 지난 9월부터 6시간 근무제를 시작했다. 이 회사 직원들은 오전 8시30분에 출근해 오후 3시30분이면 퇴근한다. 하루 8시간 동안 꼬박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이 회사 대표인 지미 닐슨은 “근무시간은 6시간으로 줄었지만 오히려 업무집중도가 높아져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밝혔다. 직원들은 일찍 퇴근해 가족이나 친구와 더 많은 여가생활을 누리며 업무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 닐슨 대표는 “앞으로 9개월 동안 6시간 근무제를 실험해본 후 이 방식을 지속할지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웨덴에서 6시간 근무제는 아주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스웨덴 서부에 있는 도요타 서비스센터는 이미 10여 년 전 근로시간 단축을 시도했다. 이후 회사 수익이 눈에 띄게 상승하자 이 회사는 6시간 근무제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공공부문에서도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6시간 근무제를 시도했고, 현재까지 유지하는 곳이 많다. 공공부문의 근무시간 단축 효과를 분석한 예테보리 시는 이 제도로 인해 근로자의 스트레스가 줄어든 반면 업무의 질은 올라갔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초기 도입 당시 기대와 달리 비용증가 등 각종 문제가 발생해 다시 8시간 근무제로 복귀한 곳도 적지 않다.


스웨덴에서 이 같은 6시간 근무제가 법제화되지 않은 데는 무엇보다 ‘형평성’의 문제가 커 보인다. 스웨덴 시민권자인 한국인 2세 A씨는 “스웨덴 사람들은 이미 8시간 근무를 통해 저녁이 있는 삶을 충분히 누린다. 그래도 같은 임금에 6시간으로 근무시간을 축소하는 걸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지금 스웨덴에서 6시간 근무제 도입을 두고 논쟁이 되는 것은 ‘공정성’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A씨는 “6시간 근무는 직무에 따라 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령, 스톡홀롬 내 수출기업들은 거래국가와 시차도 있고, 수출업무에 따른 변수가 많아 전면 도입이 힘들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6시간 근무제도가 대부분 스웨덴 공공기관 등에서 많이 이뤄져 일반 근로자와 공무원의 차별이 생긴다는 주장도 나온다. 따라서 이런 부분들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 한 6시간 근무제를 법제화하기는 어려우리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서울 경기 지역에 많은 비가 내린 12일 오후 맑게 갠 하늘에 펼쳐진 노을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090812
서울 경기 지역에 많은 비가 내린 12일 오후 맑게 갠 하늘에 펼쳐진 노을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090812

사진 = 한국경제 DB


정치적 이슈로 떠오른 ‘6시간 근무제’


여기에 6시간 근무제를 둘러싼 스웨덴의 정치 이슈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스웨덴은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로 정평이 나있다. 특히 스웨덴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보험료 납부와 관계없이 65세 이상이면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한다. 또한 의료비와 교육비 등이 대부분 무상으로 지원될 정도로 스웨덴은 관대한 복지정책과 열린 이민정책을 이어왔다.


하지만 2011년 유럽 부채위기(유로위기)가 불거지면서 스웨덴은 물론 유럽연합 곳곳에서 반이민 정서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실제로 2006년 총선에서 2.9%밖에 득표하지 못했던 스웨덴 극우정당인 스웨덴민주당(SD)은 지난해 총선에서 13%를 얻은 데 이어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20% 이상의 지지를 확보하면서 스웨덴 1~2위 정당으로 올라섰다. 이들은 대부분난민이나 이민자들에 대해 배타적이며, 이민자들이 스웨덴 국민의 혈세를 축낸다는 견해를 지니고 있다. 그런 만큼 난민이 더 이상 스웨덴으로 들어오지 못 하게 막고, 이미 들어온 난민을 내보내기를 바란다.


A씨는 “스웨덴에서 이 같은 극우정당이 의회에서 힘을 얻게 된 것도 역사적으로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 “이들을 지지하는 세력이 점차 늘고 있다. 이들에 대한 반대급부로 나선 좌파세력(공산당?녹색당)이 주장하는 것이 ‘6시간 근무제도’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포퓰리즘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고강도 노동집약적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현실적 대안이라는 평가도 나온다”고 말했다.


스웨덴 좌파세력이 주장하는 6시간 근무제의 주 타깃은 고강도 노동을 요구받는 근로자들을 향해 있다. 즉, 이들이 하루 8시간 이상 근무할 경우 노후에 이들에게 쓰일 사회적 의료비용이 더 크다는 계산이다. 차라리 이들에게 노동시간을 6시간으로 줄여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하지만 6시간 근무가 스웨덴의 모든 근로자들에게 단기간 내 적용되는 것이 쉽지 않은 만큼 해당 이슈는 스웨덴 내에서도 여전히 논쟁 중이다.


다만, 이미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스웨덴에서조차 6시간 근무제 도입을 추진한 배경에는 무엇보다 ‘일’보다 ‘인간’이 우선시 되는 인본주의 사상이 깔려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스웨덴처럼 급진적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할 수는 없을지라도 최소한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필요는 있지 않을까?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