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취업난속에 16일 장교동 서울지방노동청 취업희망게시판에 '취업해서 장가좀 갑시다'란 문구가 눈길을 끌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081215
계속되는 취업난속에 16일 장교동 서울지방노동청 취업희망게시판에 '취업해서 장가좀 갑시다'란 문구가 눈길을 끌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081215

사진 = 한국경제 DB


새해가 밝았다. 새해 파릇파릇한 꿈으로 가득차야 할 이때, 취업준비생들의 마음은 취업과 결혼 등 막연한 진로걱정으로 무겁기만 하다. 하지만 이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초부터 주변에서는 “취업은 언제 하니?” “결혼은 안 하니?” 라며 시린 질문들을 퍼붓는다. 설상가상으로 2016년 한국경제에 대한 전망도 핑크빛만은 아닌 상황에서 당분간 우리나라의 청년실업문제와 결혼기피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모든 걸 포기하게 된다는 ‘N포 세대’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이제는 취업이 결혼의 필수조건


최근 몇 년 새 대졸자 취업시장은 꽁꽁 얼어가고 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4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건강보험 및 국세DB연계 취업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대졸자 취업률은 2년 연속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2014년 12월 31일 기준으로, 4년제와 전문대, 교육대, 산업대, 기능대, 일반 대학원 등 고등교육 전체를 통틀어 낸 통계로 그동안 논란이 된 1인 창업자와 프리랜서도 이번에 처음으로 포함된 수치다. 통계치에 따르면 고등교육기관 전체 취업률은 67.0%로 전년(67.4%)대비 0.4%포인트 하락했고, 취업률은 2012년 68.1%로 정점을 찍은 이후 2013년(67.4%)과 작년까지 모두 감소세를 보였다.


이처럼 대졸자들의 취업률이 계속해서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내년 취업시장도 그리 밝지 못하다는 것이 경제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오정근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지난해 한국 경쟁성장률은 2.5%수준으로 추락한 가운데 올해 성장률도 그와 유사하거나 더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전망했다.


오 연구위원은 “보통 경제성장률이 1% 증가할 때마다 그에 따른 일자리 창출효과가 6~7만명 수준인데 올해도 2%성장에 머문다면 고용창출이 15~20만 명에 그칠 것”이라며 “매해 대학교 졸업생이 대략 40만 명인 점을 감안했을 때, 그 간극을 채우는데 한계가 있다. 올해 경제가 호전을 보이지 못하면 이 같은 청년실업문제는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흐름 속에 우리 국민의 평균 초혼(初婚)연령도 10년 사이 2살 정도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여성의 초혼 연령 증가폭이 더 컸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평균 초혼, 이혼 및 재혼 연령(2004~2014)’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국내 남성의 초혼연령은 평균 32.4세로 2004년(30.5세)보다 1.9세 늦어졌다. 여성은 2014년 29.8세로 2004년(27.5세)보다 2.3세 늘었다. 남성보다 여성의 초혼연령이 더 늘어난 것은 과거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과거보다 크게 늘어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여성 대졸 취업자 수가 처음으로 남성 대졸 취업자 수를 추월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여성이든 남성이든 ‘N포 세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잇따른 취업유예가 상당수 결혼포기까지 연결되는 것이 현재 우리사회의 안타까운 단면이다. 문제는 이 악순환의 고리가 단기간에 근절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때문에 수년 전부터 이른바 ‘결혼이 곧 취업이다’라는 ‘취집(취업+시집)’, ‘취장(취업+장가)’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취업이 곧 결혼’이라는 뜻으로 풀이돼야 될 모양새다.


3년째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서모 씨(31.여)는 “대입부터 취업까지 정말 ‘재수인생’의 연속”이라며 “삼수 끝에 붙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죽을 힘을 다해 공무원 취업을 준비했지만 3년째 낙방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는 부모님은 물론 주변에서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걱정을 하시는데 지금 내 상황에서 결혼은 그림의 떡”이라고 비관했다.


서 씨는 그러면서 “나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도 취업문제 때문에 결혼은 생각도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면서 “가뜩이나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대세인데 취업도 못한 상황에서 어떻게 결혼까지 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고민은 비단 여성인 서 씨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남성들도 결혼에 대한 부담이 큰 듯 보였다.


지난해 초 취업재수 끝에 제약회사에 취업한 김모 씨(29)도 “취업이 돼서 그나마 한시름 놓은 것 같지만 결혼은 또 다른 장벽”이라며 “결혼을 하려면 집 마련부터 향후 각종 양육비 등 계속해서 돈이 들어가는데 혼자 감당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들다. 때문에 결혼상대자도 경제력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는 재직자 여성을 좀 더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단순히 경제력만을 놓고 결혼상대를 찾는 것은 아니다”며 “부부가 같이 일을 하면 아무래도 어느 한쪽에만 가사노동의 부담을 넘기지 않게 될 뿐더러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공통분모들이 많기 때문에 재직자 여성을 더 찾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결혼의 전제조건이 취업성패로 결정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하나의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다는 셈이다.



취업난이 심각한 가운데 22일 건국대학교에서 열린 2007년도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들이 취업정보 게시판 앞을 지나치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070822
취업난이 심각한 가운데 22일 건국대학교에서 열린 2007년도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들이 취업정보 게시판 앞을 지나치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070822

사진 = 한국경제 DB


결혼보다 ‘자기개발’ 선호하는 청년들도 늘어


국내 유명 결혼정보업체인 듀오의 한 관계자도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해마다 증가하면서 최근에는 남성 쪽에서 상대방의 직업여부를 요구하는 사례가 꽤 있다”면서 “예전에는 상대적으로 여성 회원들이 남성분들의 직업을 많이 고려했다면 이제는 남성 회원들도 파트너의 재직을 원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또 “하지만 여전히 재직 여부가 결혼의 필수조건이라고 볼 수는 없다”면서 “오히려 결혼보다는 ‘자기개발’에 좀 더 매진하려는 분들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여성 회원들 상당수가 결혼 후 경력단절에 대한 우려나 자기개발 기회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 민감하다. 때문에 취업성패와 상관없이 결혼을 유예하는 일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결국, 이 같은 신(新)결혼풍속이 등장한 데에는 우리사회 내 만연한 기형적 주거형태와 과도한 생활비, 불안정한 고용환경, 결혼 후 경력단절 등 사회구조적인 영향이 컸다. 청년들의 결혼기피현상, 저출산 문제를 청년들 개개인의 문제로 지적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 내 더 많은 채용의 기회가 열리고, 정부와 지자체, 기업으로부터 결혼 및 출산을 지원하는 실질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