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Q열전]김부각 만드는 청년 임선준, 나눔을 꿈꾸다

사진 = 임선준 제공


바야흐로 ‘먹방시대’다. TV와 인터넷에서는 매일같이 새로운 먹거리가 쏟아져 나오고, 살벌한 요식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극적인 맛들이 난무한다. 그런데 하필 이때, 제조과정도 번거롭고, 재료 본연의 맛으로만 승부를 봐야 하는 전통음식 김부각 제조업에 한 청년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바로 임선준 ‘임가네 김부각’ 대표(21세)다. 식품사업가로서의 성공은 물론 향후 불후아동들의 자립을 돕는 식품고아원을 설립하겠다는 멋진 청년 임선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흔히 사람들은 요리연구가라고 하면 그가 타고난 미각의 소유자이거나 만화 ‘미스터 초밥왕’에서 나올 법한 화려한 요리스킬을 지녔으리라 짐작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청년 식품사업가인 선준 씨는 타고난 미각은커녕, 그 흔한 요리자격증 하나도 없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얼굴은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듯 앳돼 보였지만,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꿈에 대해 거침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혼자 놀기 좋아하던 찌질이, 요리에 눈뜨다


18살 때까지 ‘딱 이거다’ 싶은 꿈이 없었어요. 성격도 소심해서 항상 혼자 지내곤 했죠. 그저 그림과 글에 조금 재주가 있는 ‘찌질이’라고 할까요?(웃음) 잘 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사람, 딱 찌질이죠. 그래도 스스로를 못났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저와는 달리 모든 면에서 우월한 친형이 저를 그렇게 치부할 때는 적잖이 자존심이 상했어요. 뭘 하고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찰라, 공부는 영 적성에 맞지 않아서 덜컥 요리나 해보자는 것이 시작이었어요.”


19살 봄, 그는 정규 고등학교 교육 대신 ‘위탁교육(제도)’을 통해 요리 세계에 입문했다. 위탁교육은 전 과목을 일괄적으로 배우는 일반 학교와 달리, 다른 교육기관에서 학생들의 적성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는 대안교육이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수업이 진행되며, 수료자에게는 고등학교 졸업증과 위탁교육 수료증이 발부된다. 처음 위탁교육을 접한 그는 어깨가 하늘 위로 솟을 만큼 자신만만했다고 한다.


“위탁교육을 오는 친구들은 대개 두부류로 나눠져요. 정말 요리를 배우고 싶어서 왔거나 그저 일반학교가 싫어서 도망치듯 온 친구들이죠. 그래선지 친구들 대부분이 이론공부를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비록 제가 친구들보다 한 달 정도 늦게 위탁교육을 시작했지만, 조리자격증 필기시험은 거의 제일 먼저 합격했거든요. 그런데 딱 거기까지가 좋았어요. 이후 실기시험에서는 저만 불합격했어요. 22번을 도전했는데, 조리자격증을 못 따다니. 정말 비참했죠.”

결과로만 보면 참패 그 자체였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요리실습을 했고, 수업이 끝난 후에도 요리도서관에서 밤새 원서까지 파면서 요리를 연구했지만, 그에게 남겨진 건 고등학교 졸업장 하나였다.


20살 청년의 봄은 시렸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보다 주변의 무시어린 시선이었다.


“차라리 어른들이 ‘저거 공부 안 해서 저렇게 됐네’라면서 훈계를 하셨다면 그건 그냥 이해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정작 절 짓누른 건 주변 또래 친구들의 무시였어요. 그게 참 견디기 힘들었어요. 하지만 거기서 포기하면 안 되잖아요. 부모님은 제게 유학을 권유하셨지만, 저는 우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 무모한 도전이 제게 행운으로 돌아왔죠.”



[꼴Q열전]김부각 만드는 청년 임선준, 나눔을 꿈꾸다

사진 = 임선준 제공


도전은 배움으로, 배움은 나눔으로


그때부터 그는 인터넷 등을 통해 저명한 요리사나 요리연구가, 식품경영자들의 세미나와 출판기념 행사들마다 빼놓지 않고 찾아가 눈도장을 찍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뒤바꾼 수많은 인사들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무료로 다양한 요리이론을 접하게 됐다. 그에게 은사들은 한줄기 빛이었다.


“그분들은 지금도 물신양면으로 저를 가르쳐주시고, 도와주세요. 전 정말 행운아죠. 그리고 어떻게든 그분들에게 보답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문득, 해남에 계신 저희 외할머니의 김부각이 생각났어요. 맛도 좋고, 무엇보다 김부각은 건조식품이라 선물용으로도 손색이 없잖아요. 그래서 할머니에게 찾아가 함께 전통방식으로 김부각을 만들고 그걸 선물로 드렸어요. 반응이 좋았죠. 거기에 최고의 미각을 지니신 은사님들의 피드백을 기반으로 수차례 연구 끝에 지금의 ‘임가네 김부각’이 탄생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김부각은 사업초기인 지난해만해도 하루 매출 10만원, 그것도 재료비와 인건비를 빼면 남는 게 없는 장사였다. 또 다시 사람들은 그에게 “왜 그걸 하느냐”고 만류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바로 눈앞의 목표만을 좇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 아닌 걸 20살 청년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의 김부각은 은사들의 직간접적인 도움과 함께 독보적인 맛으로 점차 그 유명세를 타게 됐고, 비록 지금은 어머니와 운영하는 2인 기업이지만, 대졸 수준 대기업 연봉 못지않은 수입을 내고 있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그는 단지 부의 성공이 아닌 진짜 자신의 꿈을 털어놓았다.


“사실 현재 저는 엄청나게 성공한 사업가도 아니고, 뭐 대단하게 내세울 게 많은 사람도 아니에요. 다만, 제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제게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저를 도와주신 은사님들이 계시죠. 그 고마움을 저 역시 나눔으로 보답하고 싶어요. 앞으로 20년간 열심히 요리를 연구해서 40살쯤 명인이 되면 꼭 식품고아원을 차리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그가 꿈꾸는 식품고아원은 불후아동들에게 단순히 기부만 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일종의 ‘재능기부’ 형태를 띠고 있다. 아이들에게 그의 김부각 제조 노하우를 무상으로 가르치고, 그들 스스로 상품을 만들고 판매해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꼭, 김부각이 아니어도 된다. 요리를 배우고, 이를 통해 꿈을 키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나누고 싶다는 것.


이미 그는 올해부터 ‘조리백과’라는 재능기부 단체의 운영이사진에 참여해 학생들에게 요리 이론 및 실기 노하우를 가르치고 있다. 그것이 그가 스승의 은혜를 갚는 방식이자 자신의 삶을 보다 의미 있게 다져가는 방식이다.


김을 찹쌀풀로 겹겹이 쌓고, 말리고, 튀기는 과정을 거쳐야만 만들어지는 김부각처럼 보다 더 따뜻하고, 맛있는 세상을 꿈꾸는 그의 열정도 지금처럼 겹겹이 쌓여져 멋진 완성품이 되길 응원한다.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