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서울대입구역에서 5513번 타고 약 세 정거장 지나 하차. 눈앞에 크고 넓은 캠퍼스. 길을 잃었다. 정처 없이 20분을 걷다 보니 어느새 학교 구경하고 있는 나.


“어? 호수다!”

“점심시간이라 교내방송도 하나 보네? 아나운서 목소리 참 예쁘네”

“근데 여긴 어디지? 저기요, 혹시 74동 예술계 복합동이 어디죠?”


경영 대학 지나 박물관 지나 호수까지 지나 가까스로 음악대학 근처 학생식당 도착.


나랑 학식 먹을래 12화. 여긴 서울대, ‘나는 누구인가요’

l 서울대 제2식당(언덩방) 카레돈까스와 만두육개장(학생 할인 적용 가격 각각 3,000원)



학식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아 물었다.


“음대 국악과? 그럼 송소희랑 친구야?”


“하하.. 그 친구는 아직 고등학생일 거예요. 저는 가야금 전공이고요”


[ ‘아홉 살’에 시작했어요 ]


아홉 살. <아홉 살 인생>이라는 제목의 책도 있던데. 인생에 있어 아홉 살이 가지는 의미라는 게 있는 걸까?


아홉 살이 되면 의례 엄마 손에 이끌려 어딘가로 향한다. 미술학원, 태권도 학원, 피아노 학원, 스케이트 학원 등등 우리는 이때 처음 ‘예체능’이란 영역에 하얀색 실내화를 들여놓게 된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예체능인’이 된다. 그러다 하얀색 실내화가 삼디다스로 바뀌는 중학생 무렵부터 급작스러운 변화를 맞이한다. 부모님은 학원 과목을 미술, 태권도에서 수학이나 영어로 바꾸고 우리 역시 아홉 살부터 시작한 예체능이 슬슬 지겨워진다. 그렇다고 새로운 학원이 즐겁지 만은 않지만 영어, 수학은 ‘해야 하는 거니까’.


어쩐 일인지 아리랑소녀(*대학에 와서 ‘여긴 어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 중인 국악을 사랑하는 여대생)는 이런 정규 코스를 밟지 않은 것 같다. 아홉 살에 처음 가야금을 시작해 국악 중, 국악 고를 나와 지금도 대학에서 가야금을 전공하는 걸 보면 말이다. 말 그대로 쭉 가야금만 했다.


[ 여긴 서울대, ‘나는 누구인가요’ ]


위에서 말한 정규 코스를 밟은 우리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지만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난제이며 행복을 위한 고민은 끝이 없다’는 걸 어려서부터 알았다.


‘영어공부’를 생각해보자. 백 만개의 영어 지문을 외우다 보면 세상은 넓고 갈 곳도 먹을 것도 할 것도 많다는 걸 자연히 알게 된다. 장소 앞에 전치사가 in 인지 at 인지는 항상 헷갈리고 세계 속에 내가 갈 곳이 어딘지는 여전히 막막하지만 말이다.


‘수학’이란 과목을 생각해보자. 덧셈, 뺄셈, 나눗셈, 곱셈이 모두 섞인 문제에서는 어느 부분에 괄호를 치는가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는 걸 우리는 경험했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어느 시점에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내 행복도 달라진다. 이것도 사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반복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끝없이 반복할 예정이다. 마치 끝이 없는 수학 기호 ‘파이(π)’처럼. 3.141592…



나랑 학식 먹을래 12화. 여긴 서울대, ‘나는 누구인가요’

첫 선택 이후 줄곧 24시간이 모자라게 가야금만 연습했던 아이랑소녀와 아이랑소녀의 친구들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대학에 와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면서 비로소 ‘나에게 행복이란?’, ‘나는 어떤 애일까?’, ‘나는 누구일까?’ 하는 것들이 궁금해졌다.


2학년 되어 본격 고민에 돌입한 아리랑소녀는 한 날 아는 오빠에게 물었다. “오빠 나는 뭘까, 나는 왜 살까, 내 성격 뭐지?” 돌아오는 대답이라고는 “마약 먹었냐”. 주변에서도 아이랑소녀를 마냥 행복한 사람으로 본다. 잘 웃고 잘 놀고 고민 없는 4차원의 국악소녀.

[ 하고 싶어요. 남들과 다른 거 ]


아리랑소녀의 고민이 시작된 건 그 안에서 소위 ‘엘리트 코스’로 불리는 것-대학원까지 공부하고 국립국악원 같은 단체에 들어가는 코스-에 의구심을 품게 되면서부터다.


몇 년에 한 번씩 생기는 국립국악원 자리는 고작 한 개. 경쟁자가 100명씩 된다. 물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경쟁을 해서 그 한 개의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 다른 점은 아리랑소녀가 세상이 넓고 다양하고 신기함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알아버린 것.


더욱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트렌드가 전통음악이라고 해서 비켜가는 게 아니라는 것도 고민을 심화시켰다.


아리랑소녀에 의하면 음악 분야에서는 ‘월드뮤직’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클래식도 아니고 팝도 아니다. 국악만 하는 게 아니라 서양악기랑 같이 연주를 한다. 생긴지 오래되지 않아서 정확한 정의는 모호하지만 아리랑을 연주하는데 가야금과 아쟁, 바이올린과 색소폰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는 가능하다고.


어쨌든 외국인들과 함께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처음 만나는 신세계에 아리랑소녀는 매료됐다. 지금까진 없었던 일종의 모험. 줄곧 '1등'만 하던 소위 서울대 엘리트의 불안하지만 흥분으로 가득한 도전.


‘월드 뮤직?’

‘꼭 하고 싶다’

‘지금은 뭘 해야 하지’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미래로 세계로, 무작정 떠나볼까?’

‘내가 할 수 있을까’

‘떠난다고 행복해질까’

'나에게 행복이 뭐길래?'


가야금 연습시간을 제외하고는 이 고민으로 머리가 깨질것 같다는 아리랑소녀. 어쩌면 이런저런 것들을 자문하기 시작했다는 건 지금까지 만나지 못한 '새로운 아리랑소녀'를 만나기 위한 꿈틀거림 아닐까. 알을 깨기 위한.



기획·글 캠퍼스 잡앤조이 nyr486@hankyung.com

그림 BOXI(웹툰 '여대생의 정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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