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Q열전]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드립니다. 커뮤니티 '놀자'


‘인문’과 ‘예술’이라니. 묵직한 어감의 두 단어 덕분에 한껏 무게를 잡고 페이스북 페이지 ‘놀자’를 한참 둘러봤다.

게시물에는 사람들이 모여 티셔츠에 자신의 얼굴을 그리거나 책을 만드는 모습이 담긴 사진과, ‘포기’ 경력을 묻는 글과 ‘모태솔로’가 죄인인지 묻는 글도 있었다. 페이스북 창을 닫고 생각했다. “정체가 뭐지?”





정체를 묻는 질문에 예상했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는 커뮤니티 ‘놀자’의 운영자는 네 명의 여대생이었다. 김하은(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철학 3)·원지은(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3)·김예진(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4)·심유진(건국어 중어중문·철학 4) 씨가 그 주인공들.



이들이 운영하는 ‘놀자’는 어렵게만 느껴지는 예술과 인문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활동을 하는 커뮤니티다. 하지만 이들은 “심각할 필요 없는 곳”이라며 연신, 힘주어 설명한다.



“인문,예술이라고 하지만 전혀 어려운 곳이 아니에요. ‘지성인’이라고 불리는 대학생들이 너무 자신을 모르는 듯싶어 만든 곳이에요. 학교생활과 취업준비에 급급해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는 듯하니 다 같이 모여 생각해보는 장을 마련해 보자는 의도였죠.”


[꼴Q열전]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드립니다. 커뮤니티 '놀자'

△ 커뮤니티 '놀자'의 운영자 김예진, 원지은, 김하은, 김유진(왼쪽부터)




정기적인 모임으로 만들어 나가는 ‘나’

한없이 밝은 네 여대생이 ‘자아를 찾겠다’며 놀자를 만든 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2013년 말, '감성 폭발 글'로 가득했던 김하은 씨의 페이스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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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생각을 올리는 것임에도 ‘감성 페북’을 올리면 아니꼽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잖아요? 일기장에 쓰라면서요. 친구로 지내던 유진 씨도 저한테 뭐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생각을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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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무턱대고 기획안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모아보면 어떨까’ 하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렇게 ‘놀자’의 실체, ‘놀자 캠프’ 계획이 세워졌다. 두 사람은 캠프에서 진행할 프로그램을 위해 ‘함께하면 재밌을 것 같은 일’을 주제로 글을 올려 댓글을 받으며 본격적인 놀자 활동을 시작했다.



‘놀자 운영자 실록’의 세 번째 주인공 김예진 씨는 캠프 소식을 듣고 캠프 기획에 직접 참여하고 싶은 욕심에 합류하게 됐다.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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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올린 글의 댓글에는 ‘햇빛 받으면서 음악 듣기’부터 ‘티셔츠에 서로 얼굴 그려주기’까지 사소하지만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들로 가득했는데, 이들 댓글을 본 김예진 씨의 마음이 동했던 것.



마지막 운영자 원지은 씨는 캠프 참여자로 놀자와 처음 만나 지금까지 함께 운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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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맡은 일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대체로 ‘생각을 던지는 사람’이 하은 씨예요. 정말 생각나는 대로 막 던져요. 그래도 큰 그림을 워낙 잘 그려 그게 다 기획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예요. 하은 씨가 던져놓은 생각을 나머지 세 명이 정리해 구체적 기획으로 발전시키고 실행으로 옮겨 진행하죠. 굳이 따지자면 유진 씨가 디자인과 홍보 등을 맡고, 예진 씨와 지은 씨가 기획실무 정도? 뭔가 거창해 보이네요.”(웃음)



연신 수줍게 웃으며 가볍게 말하는 듯했지만, 그녀들의 입에서는 ‘자아’ ‘가치관’ 등의 단어가 등장할 만큼 커뮤니티의 운영 목표에는 무게감이 실렸다. 하지만, 목표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커뮤니티의 이름처럼 부담 없이 유쾌하다.



“서울시 청소년미디어센터라는 곳과 연계해 격월로 오프라인 모임인 ‘만나’를 진행해요. 모임에서 특정 주제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고, 주제와 관련해 예술이 가미된 활동도 하고요. 11월까지 격월 활동이 예정되어 있고, 12월에는 단체로 네트워킹 파티를 열 생각이에요. 방학 때는 캠프도 진행할 계획이고요.”



오프라인 모임 ‘만나’ ‘놀자 캠프’ 등을 정기적으로 진행하지만, 프로그램 내용은 항상 다른 것이 놀자만의 매력. 그래도 전체적인 구성은 나름 알차게 정해져 있다.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가치관 알아보기가 첫 관문. 다음으로는 강연을 빙자한 발표시간을 갖는다. 주제를 던져놓고 아무나 말하라고 하면 한국인 특유의 ‘발표공포증’ 덕분에 고요하고 거룩한 분위기만 이어져 채택한 방법이다. 이후 둘러앉아 이야기를 하고 예술활동도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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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고 하니 거창할 듯하지만, 저희는 표현하는 것 자체를 예술의 범주로 이해해요.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고…. ‘만나’의 슬로건이 ‘자아공작소’거든요. 만나서 이야기하며 자아를 만들어간다는 의미예요. 그래서 그런 활동들을 주로 하는 거죠.”




인문과 철학에 대한 심심한 고찰

단순히 노는 것이 아니라 활동을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것. 인문학이나 예술 전문가도 아닌 네 명의 여대생이 만든 프로그램으로 가능한 일일까?



“저희 네 명 모두 인문학 전공자이고, 인문학에 대해 서로 생각하는 게 같아서 프로그램 짤 때도 잘 맞는 듯해요. 인문학이란 나에 대해,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만남’을 중시해 짜고 있어요. 저희 방식대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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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자’를 소개할 때는 꼭 ‘인문’과 ‘예술’이 들어가지만, 인문의 영역이나 예술의 영역을 정해놓은 것은 아니다. 단지 자아에 대해 생각하는 수단으로써 인문과 예술이라는 영역을 빌려온 것이다. 놀자가 영화를 전공했던 김하은 씨와 철학을 좋아하는 심유진 씨로부터 시작된 커뮤니티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왜 굳이 자아를 찾는 데 ‘인문’과 ‘예술’을 수단으로 썼는지 알 수 있다.


“두 영역은 우리 생활과 멀지 않다고 생각해요. 꼭 학문으로 접하지 않아도 되죠. 글쓰기부터 그림,영상,낙서까지 표현하는 것 자체가 예술이잖아요. 저희가 하려는 활동들을 보니 모두 예술의 영역에 포함되더라고요. 그래서 ‘놀자’를 소개할 때 두 단어를 쓰는 거예요.”



실제로 ‘인문학’을 따로 공부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일’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면 ‘일’이 무엇인지 철학적으로, 또 사회학적 개념으로 정의내리고 자료를 찾아보며 스터디를 하는 방식이다. 서로 공부하다 도움 될 것 같은 책이 있으면 추천하기도 한다.



프로그램은 힘을 풀고 재미있게 하는데, 사람들을 모으는 입장이기 때문에 해당 주제에 대해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그동안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했던 답답함 덕분인지 ‘놀자’를 찾는 이들은 점점 늘고 있다.



“장기적으로 그림을 그려본다면 ‘놀자’가 청년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자신을 알고,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장이 되었으면 해요.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느는 것을 ‘놀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취업요? 지금 이렇게 ‘놀자’에서 놀다보면 되지 않을까요? 바람이 있다면 저희 네 명 모두 ‘문화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미래에도 문화와 관련한 일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글 김은진 기자

사진 서범세 기자 ·놀자 제공




온라인에디터 jobnj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