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백 마디의 말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간단한 선과 색만으로도 어떤 기업인지 알 수 있는 ‘CI’같은. 브랜딩 전문 기업 인피니트의 오기환 대표도 마찬가지다. ‘아르바이트생으로 시작해 대표이사가 되었다’는 간단한 문구는 그의 노력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호기심이 동해 오 대표에게 그의 성공에 관해 물었다.



오 대표가 인피니트에 첫발을 들인 것은 1992년. 대학교 졸업 후 아르바이트생으로 일을 시작했다. 당시 ‘광고대행사의 정규직’, ‘인피니트의 아르바이트생’ 두 가지 길이 있었지만 그는 고민하지 않고 인피니트를 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 막상 아르바이트생 신분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지만, 실망하기보다 일을 하면서 목표가 점점 더 명확해졌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겠다는 것.


목표에 닿기 위해 그는 주말마다 출근해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앉아 마치 자신이 디자이너가 된 듯 공부했다. 선배 디자이너들이 한 것처럼 자신의 디자인을 출력해 서랍 속에 넣어두면 ‘예비 디자이너’로서의 주말 일과 끝.


오기환 인피니트 대표  “부지런히 움직여야 기회를 만들 수 있어요”

“월요일 프로젝트 리뷰시간이 되면 폼보드에 선배들 디자인을 붙이며 몰래 서랍에서 주말에 작업한 제 디자인을 붙여놨어요. 어느 날 리뷰회의가 끝나고 한 선배가 오셔서 “오기환씨 디자인인가요?”라고 물으시더라고요. 아르바이트생은 리뷰 회의에 참여하지 못하거든요. 회의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 채 큰 잘못을 했다는 생각에 “죄송합니다”고 말했죠. 그런데 선배가 저에게 작업한 디자인을 계속 진행하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정말 뿌듯했어요. 이런 일이 쌓여서 인피니트의 정식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맺은 인피니트와의 인연은 10년간 계속됐다. 하지만 막상 꿈꾸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자 그는 허무함에 사로잡혔다. 목표에 도달하고 나니 더 앞으로 나아갈 추진제가 없었던 것. 고심 끝에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족들과 함께 글로벌 디자인 기업들이 모여 있는 샌프란시스코행을 선택했다. 당시 인피니트 대표의 도움으로 세계적 디자인기업 ‘메타디자인’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고, 이곳에서 근무하는 1년 동안 그는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문제는 낯선 문화와 언어였다. 영어 실력도 훌륭하지 못했고, 아는 사람이라곤 함께 간 가족뿐이었다. 우울증에 앓을 정도로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심적으로 힘들어하는 그에게 주위에는 ‘한인교회’를 가보라며 제안을 했고, 의지할 곳이 필요했던 그는 주말마다 교회를 찾았다. 이때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며 본 창세기에 적힌 짧은 문장이 그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바로 그가 참여한 ‘어도비 패키지 디자인(Adobe Package Design)’ 버전업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창세기에 적힌 ‘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라’에서 얻어왔기 때문.


“메타디자인에 근무하면서 ‘어도비’ 수주 소식과 함께 제가 그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어요. 디자인을 고민하던 와중에 창세기에 적힌 문구를 보고 번쩍 뜨이더라고요. 그래서 ‘창조(Creation)’를 콘셉트로 하늘과 땅, 창조의 신화 등을 테마로 패키지를 만들었어요. 한국의 동양화처럼 여백의 미를 살린 디자인이 외국인들에게 매우 흥미롭게 보여졌는지, 어도비 프로젝트는 메타디자인의 대표 실적이 되었어요.”


세계적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그가 1년 만에 한국에 들어온 이유는 명확했다. 세계적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그는 2003년, 한국으로 돌아와 소디움파트너스에서 디자인디렉터로 7년간 근무하면서 대표실적들을 축적해나갔다.



오기환 인피니트 대표  “부지런히 움직여야 기회를 만들 수 있어요”

2010년에 인피니트의 대표이사로 부임하면서 롯데그룹 계열사CI를 비롯해 다수 기업의 작업을 맡았고, 2013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MI 프로젝트'로 세계3대 디자인 어워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크게 브랜드 전략, 브랜드 개발, 브랜드 관리 순으로 진행해요. 그 중에도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부분이 ‘경영진 인터뷰 프로그램’이예요. CEO를 비롯한 경영진이 현재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프로그램인데, 모든 일이 그렇듯 관심을 가지면 정보가 들어오기 마련이잖아요. 소통해야만 핵심 아이디어도,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도 알 수 있어요.”


한국 디자인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오 대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선배 디자이너로서 청년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크리에이티브 아레나‘ 시즌3 무대에도 설 예정이다. 무대에 서는 소감을 묻자 "떨려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라며 걱정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지만, 그가 전할 이야기가 청년들의 가슴을 울릴 것이라는 사실은 확실해 보였다.



글 김은진 기자

사진 김기남 기자




크리에이티브 아레나3

일시: 2015년 3월 14~15일

장소: 코엑스 D홀

티켓예매처: 캠퍼스잡앤조이 홈페이지(www.jobnjoy.com)에서 온라인 예매 가능 ▶예매하기



온라인에디터 jobnj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