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신원시장 뒷골목. 최근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시끌벅적한 20대 청년들부터 술 한 잔 기분 좋게 걸친 동네 아저씨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는데. 이들이 향하는 곳은 골목 안 어느 건물의 지하실. 도대체 그 지하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꼴Q열전] 장학금 2800만원 버리고 온 훈남, 신림동에서 뭐해요?

(사진)왼쪽에서 두 번째 하늘색 셔츠를 입은 장서영 대표와 ‘ ’(작은따옴표)에서 함께 지내는 식구들


서울 신림동에 위치한 ‘ ’(작은따옴표). 따옴표 부호 두개가 전부인 독특한 이름이 눈길을 끄는 이곳은 24시간 언제나 열려 있으며 다양한 공연과 전시, 강연 등을 진행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또한 장서영(22, University of Bridgeport 휴학) 씨와 그의 친구들이 함께 지내는 집이자 지인들이 머물렀다 가는 게스트하우스이기도 하다.


“지난해 2월28일 계약했죠. 이름을 정할 때 고민을 많이 했어요. ‘ ’는 속 깊은 생각이나 진심을 담을 때 쓰는 문장부호잖아요? 이곳을 찾는 이들이 각각 느낀 감정을 그 안에 담았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사실 이름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래서 다들 이름을 지을 때 얼마나 말렸는지 몰라요. 정말 한 달 동안이나 진심으로 말리던 형님도 있어요.”(웃음)

장학금 2800만 원, 쿨하게 버리고 신림동 지하실 입성

미술을 공부한 장서영 씨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에 있는 브리지포트대학 산업디자인과에 입학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고등학교 입시미술에 지쳐 있던 그에게 자유롭고 열린 대학의 수업은 흥미롭고 즐거웠다. 하지만 2학년이 끝날 무렵 그는 돌연 휴학을 선언했다. 다음해 장학금(2800만 원 상당)까지 받은 마당이었다. 휴학하면 장학금은 모두 무효가 되는 상황이었다. 보는 사람마다 ‘미쳤다’며 그를 만류했다. 하지만 서영 씨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학교생활이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더 즐거운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 욕구가 불타올랐다. 그는 휴학을 결정하고 울산 집에서 부모님께 받은 용돈과 캐리어 하나를 끌고 서울로 상경했다. 다행히 서울에서 혼자 지내던 친구가 있어 집안일을 모두 도맡아 하겠다는 조건으로 돈 한 푼 안 내고 한 달간 더부살이를 할 수 있었다.


“다들 알바부터 하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데 말이죠. 하고 싶은 것, 재미있는 것을 하고 싶어 서울에 온 거잖아요? 음악에 관심이 많아 공연을 해보고 싶었는데, 우연히 연이 닿은 기획사와 함께 친구 집에서 지내던 한 달간 3.1절 프로젝트를 준비했어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공연이었고, 저는 그 공연의 팸플릿을 제작하는 일을 맡았죠. 돈을 받고 하는 일도 아니고, 어떤 결과를 원했던 것도 아닌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어요. 공연 때 팸플릿을 나눠주고 3일도 지나지 않아 디자인회사 3사에서 디자인 제의가 들어온 거죠.”

더럽고 치사해서 내가 만든 공간

굳이 알바를 하지 않아도 그는 원하는 디자인 작업을 골라서 하면서 돈도 벌 수 있게 됐 다. 그렇게 조금씩 모은 돈으로 마련한 것이 신림동의 ‘ ’다.


“계약은 2월28일, 그러니까 3.1절 프로젝트 하루 전날 했죠. 당시에는 돈 한 푼도 없어 보증금은 아버지께 부탁드리고, 월세는 후불로 내기로 했어요. 다행히 3.1절 프로젝트로 디자인 작업도 하고 공연도 하게 되면서 월세를 낼 수 있게 됐지요.”


그가 없는 돈을 그러모아 ‘ ’를 만든 이유는 따로 있다. 다양한 예술활동을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으니 전시도 하고, 공연도 할 장소를 물색했지만 늘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돈을 많이 지불하지 않으면 이름 없는 아티스트에게 흔쾌히 장소를 제공하는 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럴 바에는 그냥 내가 하나 만들겠다’고 결심했고, 신림동 지하실 40여 곳을 둘러보고 드디어 ‘ ’의 공간을 마련했다. “꼭 신림이어야 했어요. 처음에는 홍대 앞도 생각했는데 너무 활성화했더라고요. 이왕이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신림은 우리나라에서 1인가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에요. 외로운 사람이 많은 곳인 만큼 이곳에서 시작하면 의미가 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PC방으로 운영되다 1년 정도 버려져 있던 공간이어서 처음에 왔을 때는 곰팡이,먼지,벌레,거미,거미줄,모래가 전부였다. 5일 밤을 꼬박 새우며 청소를 하고, 인테리어 비용을 아끼고자 직접 페인트를 사다 칠했다. 건물 밖에는 아직도 PC방 간판이 달려있다. 수거비용이 비싸 뗄 수 없다는 슬픈 사연이다. 때문에 가끔 PC방인 줄 알고 ‘ ’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기초공사가 끝나고 서울생활하면서 만난 분들을 초대해 홈 파티도 했어요. 말이 홈 파티지, 그저 돗자리 깔고 술 마시는 것이 전부였죠. 한겨울에 얼마나 춥겠어요? 패딩 껴입고 덜덜 떨면서 마셨죠.”(웃음)

개천절 맞아 개천에서 연 특급 축제

그렇게 신림에 터를 잡은 ‘ ’는 1년여간 다양한 문화활동을 진행했다. 특히 국경일에는 다양한 행사를 많이 하는데, 10월3일 개천절에는 지역 주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를 개천에서 진행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신림의 외로운 1인가구를 위한 ‘1인가구 네트워킹 파티’도 눈길을 끈다. 혼자 밥을 먹는 쓸쓸한 동네 독거인들이 한데 모여 함께 식사도 하고 게임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친구가 될 수 있는 만남의 장을 만들어준 것. 입장료도 없고 24시간 열려 있다 보니(장서영 씨의 집이기도 하다) 누구나,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지난해만 무려 2000여 명이 ‘ ’를 찾았을 정도. 그 중 제 집 드나들 듯 ‘ ’를 오가던 이들 몇몇은 아예 ‘ ’로 이사해 서영 씨와 함께 생활한다.


서영 씨는 이렇게 모인 이들과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이름하여 ‘아트래시(Artarash)’ 프로젝트. 아트(Art)와 트래시(trash)의 합성어로 길거리에 지저분하게 버려진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획이다.


“얼마 전 외국인 지인들과 함께 서울 구경을 하는데, 길거리의 쓰레기를 보고 놀라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어떻게 하면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생각했고, 예술로 풀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보통은 버스킹을 하면 기타 가방에 돈을 넣어주는데, 기타 가방 대신 쓰레기통을 넣고 쓰레기를 받을 거예요. 또 공연할 때 입장료 대신 쓰레기를 받는다거나, 길거리 쓰레기통을 재미있게 칠해볼 계획도 있어요. 그러다 보면 길거리 아티스트도 많아지고 쓰레기도 줄일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예술가이니 예술가답게 문제를 해결해야죠.”


주소_서울 관악구 신림1동 (신원로 5-1) 1628-83번지 스카이마트 건물 지하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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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해나 기자 (phn0905@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