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우리 사회가 극단적으로 변해 간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막장 사건이 실제로 벌어지고, 경쟁은 학생의 필수 덕목처럼 인식된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이자 지난해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으로 발탁된 세계적인 자연생태과학자 최재천 교수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자연에서 찾는다.


그의 생태학은 ‘통섭(統攝)’으로 귀결된다. 그는 식물과 곤충의 꽃가루받이 공생에서 인류의 협업을 찾고, 생태학의 학문적 위치를 통해 문·이과 대통합을 강조한다.


그래서였을까? 자연생태학에서 시작된 대화는 최근 삼성 등 대기업의 채용 화두로 떠오른 ‘융합형 인재’로까지 이어졌다.


[靑春에게 告함]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인터뷰

최재천

1954년생

하버드대 대학원 생물학 박사

1992년 미국 미시간대학교 생물학과 교수

1994년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교수

2006년 이화여대 자연과학대학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2007년 한국생태학회 회장

2013년 이화여대 에코과학연구소 소장

2013년 제1대 국립생태원 원장

2014년∼ UN 생물다양성협약(CBD) 의장


동물 모형이 가득한 다소 음산한 연구실을 상상했습니다.

책이 월등히 많은 편이다. 직접 쓴 것을 비롯해 많은 책이 있는데, 학생들도 자유롭게 빌릴 수 있다. 동물 모형이라면 책상 위에서 날고 있는 선물 받은 새 인형이 있는데, 멕시코에서 만들어서인지 아무리 돌려 놔도 자꾸 멕시코 방향을 가리킨다.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으로 부임한 지 1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특히 기억나는 성과가 있나요?

생태원이 있는 충남 서천은 교통 측면에서 오지 중의 오지다. ‘멀기가 원통할 만큼’이라는 강원도 인제도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가는데, 서천은 아무리 빨리 가도 세 시간은 걸린다. 그럼에도 환경부는 2014년 관람객 목표를 30만 명으로 잡았다. 될까 싶었는데 지난해 12월 30일, 100만 명을 돌파했다. 조류독감으로 두 달간 문을 닫았던 것을 감안하면 매달 10만 명이 꾸준히 찾은 것이다. 덕분에 기관 인지도도 많이 올랐다. 사실 애초부터 세계적 연구기관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결과적으로 2013년 탄생한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의 태스크포스(TF) 중 우리 기관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됐다. 그래서인지 세계인들이 자연스럽게 우리 기관을 100년은 넘은 오래된 곳인 줄 알더라. 뿌듯했다.


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한 생태학 이슈 중 하나를 꼽는다면요.

지난 정부 때 4대강사업을 많이 반대했다. 그래서 당시 사회통합위원회에 들어가 열심히 생태학적 근거를 설파했고, 이번에도 비슷한 형태의 국민대통합위원회에 참여했다. 이유는 딱 하나다. 갈등을 없애자는 것. 애초부터 없었으면 되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이런 위원회를 설립해 운영하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사회적 낭비일 수 있다. 갈등을 없애려면 사전 협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돌이켜보면 송전탑 문제, 원전 문제 등 국책사업에는 반드시 시민단체나 해당 지역 주민의 반발이 뒤따랐다. 기획 단계 때 생태학적 이슈나 거주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경제적인 면만 봤기 때문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아예 경제와 환경을 함께 따지자는 것이다.


근본적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인가요?

그렇다. 인류는 먹거리를 찾기 위해 계속 자연을 개발할 것이다. 이때 주최기관은 늘 그랬듯 3분의 1을 개발하자고 설득할 것이고, 국민의 반대에 부닥쳐 4분의 1만 허문다고 해도 10년 뒤 또 이런 과정을 통해 4분의 1을 헐고, 또 10년 뒤 나머지 4분의 1을 허는 일이 반복되다보면 전 국토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후손들은 정말 미래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오는 빌딩숲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를 막으려면 근본적인 시스템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학생 생태교육에도 애쓰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생태원이 추구하는 것은 ‘핸즈 온 에듀케이션(Hands on education)’, 즉 체험형 교육이다. 자연을 직접 만져보고 실험해보는 교육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최근 10년간 내 좌우명이 ‘알면 사랑한다’다. 자연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자꾸 개발하려 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생태교육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靑春에게 告함]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인터뷰


자연생태학 분야의 비전은 어떠한가요?

매년 어림잡아 70명의 중·고·대학생이 진로상담을 위해 연구실을 찾는다. 이메일 문의까지 합치면 수백 명은 족히 될 것이다. 확실히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생태학을 배우러 미국에 간다고 하자 다들 시골이나 가라면서 뜯어말렸다. 그런 의미에서 고무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 분야에서 큰 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곤란하다. 학생들에게도 항상 ‘굶어도 좋으냐’고 묻는다.


경제적 야망이 크다면 다시 생각해보라는 뜻이다. 하지만 확실히 수요는 늘고 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보듯 우리 세대가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제는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깨끗한 물에서 첨벙거리며 사람답게 살고 싶어 한다. 최근 중국의 마윈 알리바바 회장도 환경오염 퇴치를 위해 3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뜻이 있고 열심히만 한다면 충분히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분야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이 분야의 진로를 결정할 때 팁이 있다면요.

여러 분야에 걸쳐 호기심이 가득하다면 뛰어들어도 된다. 생태학은 극단적인 수학도, 극단적인 인문학도 아닌 중간에 끼어있는 학문이다. 예를 들어, 자연환경 보전에 대해 논의할 때 과학적 지식은 물론 경제적 이익과 법적인 정당성도 고려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통섭형 인재’가 중요하다고 많이 강조했다. 단, 단순히 즐기는 것 외에 훈련도 성실히 해야 한다.


최근 삼성 등 기업들이 ‘융합형 인재’를 중요시합니다. 같은 맥락인가요?

안 그래도 삼성과 연이 깊다. 삼성컨버전스소프트웨어아카데미(SCSA) 1기 개강식 때 회사 측의 요청을 받아 강의도 했고, 2기 선발을 앞두고는 안내 브로슈어에 글을 썼다. 전부터 삼성에서 통섭형 인재에 대한 강의를 많이 했는데, 여기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


그런데 이 통섭형 인재는 최근 대두한 융합형 인재와 조금 다르다. 융합은 두 분야를 단순히 합친 것이다. 복수전공한 사람을 뽑겠다는 것과 같다. 반면 통섭형 인재는 자기 전공 분야를 확실히 하면서 다른 분야도 이해하는 사람이다. 융합형 인재를 찾기란 어렵다. 스티브 잡스 같은 한 명의 융합형 인재를 기다리기보다 언제든 융합을 할 수 있는 통섭형 인재 여러 명을 키우고 기르는 게 중요하다. 애플도 잡스가 세상을 떠난 뒤 제2의 잡스를 못 찾지 않았나? 미켈란젤로 역시 죽었다.


인문대 학생이 자연계열을 공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팁이 있을까요?

자연계열을 공부한 사람은 위대한 문호가 될 수 없을지 몰라도 인문학에 입문할 수는 있다. 하지만 영문과 출신이 양자역학을 공부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 자연과학은 진입장벽이 높은 학문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공부해야 한다. 70대가 나노과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뜯어말릴 것이다. 특히 자연과학은 공부해야 하는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시기를 놓친 대학생이라면 ‘기획독서’를 추천한다. 완전히 새로운 분야의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술술 읽힐 리는 없다. 하지만 두세 번 비슷한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읽히기 시작한다. 그렇게 양자역학부터 분석철학, 나노과학까지 하나씩 공략하는 것이다.


독서에 그렇게 큰 힘이 있나요?

굴지의 기업에 합격한 사람은 노벨상을 받을 만큼 실력이 뛰어나서 붙은 것이 아니다. 남보다 조금 나았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책 한 권에서 나온다. 기획독서는 진로도 바꿀 수 있다. 내가 쓴 <통섭의 식탁>이라는 책에 실었던 시나리오 하나를 들어 보겠다. 40대 초반의 두 동창이 길에서 우연히 만난다. 서로 안부를 묻던 중 한 친구가 나노기술 관련 사업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다른 친구가 나노에 대해 전혀 모른다면 그냥 헤어졌을 테지만 한 번이라도 기획독서를 했다면 깊은 대화를 나누다 동업으로 발전할지도 모른다. 이게 바로 기획독서의 나비효과다.


교수로서의 삶은 어떠한가요?

가르치는 일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 그래서 강의 스타일도 조금 다르게 꾸몄다. 시험 대신 과제를 부여하는 것이다. 방대한 지식이 이미 인터넷에 다 있는데 왜 굳이 꾸역꾸역 머릿속에 넣었다 한 순간 꺼내게 한 뒤 이걸 가지고 평가해야 할까? 대신 흩어져 있는 지식을 제대로 활용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매 학기 총 열 개 이상의 과제를 주고 배점을 줄여 다면평가를 한다.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30학점짜리 과목’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냥 휴학했다고 생각하고 이 과목에만 집중해야 한다면서 하루도 이 과목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는 날이 없다고도 하더라.


좋은 점수를 받는 비결이 있을까요?

논리력과 설득력이 중요하다. 평소에 글을 즐겨 쓰다 보니 논리가 맞지 않는 글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물론 대학원생 조교들과 함께 채점하기 때문에 평가기준이 다 다를 수 있다.


생태계에서 배울 수 있는 삶의 지혜가 있다면요.

자연생태계에서 가장 성공한 케이스는 ‘식물과 곤충의 꽃가루받이 공생’이다. 여기에 이견을 제시하는 생태학자는 없을 것이다. 무게로 가장 성공한 게 식물이고, 숫자로 성공한 게 곤충이다. 이 두 위대한 세력은 서로 싸우는 대신 돕는다. 이런 기막힌 성공사례를 배워야 한다. 우리 인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경쟁한다. 신문이나 드라마도 막장투성이다. 실은 그렇지 않은데, 충분히 따뜻하게 살 수 있는데 말이다. 안타깝다.


서울 시내에서 자연을 흠뻑 느낄 수 있는 명소를 추천해 주신다면.

대학 교정과 고궁이다. 언젠가 서울을 그린도시로 만드는 문제를 놓고 고민한 적이 있다. 이때 대학과 궁궐을 연결하는 생태축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이곳 이화여대부터 연세대-인왕산-북악산-경복궁-정릉, 최종적으로 남산까지 축을 잇는 것이다. 실제로 주말에 학교 교정을 걷다보면 산책하러 나온 가족이 많다. 참 보기 좋다. 앞으로도 잘 보존해 아이들이 김밥을 먹으며 자유롭게 뛰놀 수 있는 곳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글 이도희 기자 | 사진 김기남 기자


온라인에디터 jobnj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