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취업시장 토토가’] 조상님이 들려주는 2000년대 취업 썰, 설레는 젊음 하나로  ‘그땐 그랬지~’



2000년.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이다. 그다지 오래된 것 같지 않다고? 당시 노스트라다무스의 지구 멸망 예언을 당당히 이겨낸 이른바 ‘N세대’들의 휴대폰에서는 까랑까랑한 ‘군밤타령’ 벨소리가 울려댔고, 이들의 무지갯빛 염색머리에 어른들은 비행청소년이라며 혀를 찼다. 2000년 1월, 당시 인기 그룹 GOD와 함께 등장해 ‘국민아기’에 등극했던 재민이는 내년 수능을 치른다.


[스페셜-‘취업시장 토토가’] 조상님이 들려주는 2000년대 취업 썰, 설레는 젊음 하나로  ‘그땐 그랬지~’



하지만 지금부터 만나볼 ‘9땡 학번’ 어르신들은 이 순간 고단한 취업시장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70년대생 조상님 학번 선배들은 당시를 어떻게 회상하고, 후배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길까?



[스페셜-‘취업시장 토토가’] 조상님이 들려주는 2000년대 취업 썰, 설레는 젊음 하나로  ‘그땐 그랬지~’

진광길(95학번)

사회복지학과 졸업.

2000년 취업준비.

오랜 언론인생활을 접고 최근 컨설팅업체 대표로 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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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97학번)

영문학과 졸업.

2001년 취업 준비.

대기업 기획제작부

팀장으로 재직 중.






[스페셜-‘취업시장 토토가’] 조상님이 들려주는 2000년대 취업 썰, 설레는 젊음 하나로  ‘그땐 그랬지~’


기업들, IMF 이후 ‘슈퍼 갑’이 되다


진광길(이하 광길) 나 군대에 있을 때 IMF 사태가 일어났거든. 취업이나 할 수 있을까 진짜 걱정 많이 했지. 아예 제대하지 않은 사람들도 꽤 있었어.


김창수(이하 창수) 91~93학번은 ‘저주받은 학번’이라고도 불렸지. 그럴 만도 한 것이 합격통지서를 받자마자 IMF가 터져 갑자기 합격이 취소된 거야. 끔찍하지 않아?


광길 뭐 전에도 기업이 취준생들에게 갑이었지만 IMF 이후에는 진짜 ‘슈퍼 갑’이 됐지.


창수 맞아. 일단 채용규모를 엄청 줄였거든. 내수시장이 워낙 안 좋았으니까. 특히 소비재기업들이 채용 취소를 많이 했고, 그나마 뽑았던 곳은 이동통신이나 IT 쪽이었어. 당시 취업 준비 열심히 했던 선배들은 다 이쪽으로 빠졌잖아.


광길 그래. 그때 입사한 인재들이 우리나라를 인터넷 강국으로 만들었지.


창수 이동통신사 경쟁률도 어마어마했어. 지금은 LG유플러스지? 2002년 LG파워콤 마케팅 직무에 원서를 냈는데 경쟁률이 70대 1이었어. 지금은 기업이나 많이 생겼지. 그때도 만만찮게 힘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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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벤처-공사’ 인기 삼각구도 형성


창수 요즘도 그렇겠지만 기업을 선택할 때 기업 이미지를 꽤 중요시했어. 여학생들은 아무래도 소비재 아이템이 많은 SK나 CJ가 부드러워 보인다고 좋아했고, 롯데에도 많이 들어갔지.


광길 인기 있었던 곳이라면 단연 벤처였지? 정부 지원도 막대해서 당시 대학생 중 벤처 주식을 안 사본 사람이 없을 걸? 지금 생각해보면 정부가 그렇게 벤처에 투자한 게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창수 당시 오피스 핫플레이스도 테헤란로였잖아. 벤처가 다 여기 몰려 있었으니까. 동기의 3분의 1이 강남에서 일했을 정도였지. 그러다 벤처 거품이 사그라지면서 갑자기 공무원의 인기가 높아졌지. 공사 인기도 확 뛰었잖아. 안정적이고 급여도 괜찮았으니까. 그래서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이 많이 지원했는데, 경쟁률은 아마 지금보다 셌을 걸. 당시는 워낙 기업 수가 많지 않았거든.


광길 복지도 입사 인기도에 많은 영향을 미치잖아. 그때는 주5일 근무가 그렇게 소중했어. 당시 토요일을 반공(휴)일이라고 해서 격주로 쉬는 게 일반적이었거든. 물론 그 전에는 주 6일이 보편적이었고.


창수 맞아. 주5일 근무가 있다 하면 ‘복지가 잘돼 있는 회사구나’ 했지. 떡값이라는 것도 있었잖아. 요즘은 안 좋은 말로 쓰이지만, 그때는 회사에서 주는 보너스를 가리켰지. 명절 보너스 같은 거 말이야. 종업원이 많은 회사는 지역별로 단체 귀성버스를 빌려주기도 했고.


광길 맞다, 그때는 ‘연초비’라고 해서 담뱃값을 주는 곳도 많았어. 지금이야 금연이 화두지만, 당시에는 집이나 사무실에서 자연스럽게 담배를 피웠으니까. 물론 비흡연자도 연초비를 반드시 챙겼지. 꼭 담배를 사야 하는 건 아니었거든.


창수 아, 외국계 회사도 복리후생이 잘돼있고 급여 수준도 높다는 점에서 인기가 많았어. 특히 여학생들은 성차별이 없다는 이유로 선호했지. 국가공휴일도 이중으로 쉴 수 있다면서. 대기업은 기본적으로 복지가 잘돼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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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기업 채용 현황

2014년 하반기, 1500명을 뽑는 이랜드의 신입 공채에 3만4000명이 몰리며 2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역시 요즘 취업난이 심각하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일 만도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01년, 이 기업의 경쟁률은 137대 1이었다. 80명을 뽑는 이곳에 1만1000명이 원서를 제출한 것.


1990년대 후반 대기업들이 IMF 금융위기 극복에 힘입어 채용인원을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늘리면서 시장 침체기도 회복되는 듯했다. 그러나 곧 다시 채용인원을 대폭 축소하면서 당시 취준생들의 체감 취업난은 한층 더 심각해졌다. 실제로 입사경쟁도 치열했다. 2002년 70대 1이었던 대기업 평균경쟁률은 1년 뒤인 2003년에는 100대 1까지 치솟았다.


신세계는 2000년 하반기 100명 모집에 1만5000명이 지원해 15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고, 같은 해 600명을 채용한 현대-기아차에도 4만여 명이 몰렸다. 한화에는 400명 모집에 2만6000명이 지원했다. 2001년 LG텔레콤의 경쟁률도 120대 1을 기록했다. 당시 언론매체들은 이 같은 입사경쟁률에 대해 ‘사상 최악의 취업난’ ‘바늘구멍’ ‘좁은문’이라는 표현을 쏟아냈다.



광길 맞아. 그러고 보니 당시 성차별이 심했네. 여사원들에게 재떨이를 비우라거나 커피 타라는 말이 워낙 자연스러웠으니까. 사실 복지가 제일 잘돼 있는 곳은 벤처였어. 대기업 갈 인재들을 데려가려고 연봉도 더 많이 주고, 복지혜택도 잘해놓은 경우가 많았거든. 그래서 실제로 대기업에 합격했던 친구들이 벤처로 많이 옮겼지. 그야말로 대기업과 공무원, 그리고 벤처가 막 섞여 있었던 거야. 짧은 기간 인기 있는 업종도 많이 바뀌었다. 그러고 보면 취업할 때 기업 선정에도 신중해야 해.


창수 맞아. 당시 벤처나 IT업체가 뜰 때 사회기반산업이 최고라면서 중공업 쪽으로 간 친구가 있었거든. 지금도 큰 변동 없이 꾸준히 일 잘하고 있어. 물론 제조업이 최고라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당장의 인기만 보고 지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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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후반 5대 스펙 ‘학벌·B학점·토익650점·전공·어학연수’


광길 당시 모집공고는 모두 신문에 실렸어. 그래서 신문 엄청 봤지. 아, 학교 본관에 가면 모집공고를 붙여놓은 게시판도 있었다. 진짜 이제 기억나네.


창수 나 때는 취업포털을 통해 지원하기도 했는데, 지금처럼 활성화하지는 않았어. 대신 직접 방문하라는 곳이 많았지. 심지어 자소서도 자필로 쓰게 하고. 그래놓고 서류전형에서 탈락시켜 얼마나 화가 나든지….


광길 요즘 학생들은 9대 스펙이라고 하던데, 우리 때는 학벌이 엄청 중요했잖아? 취업한 선배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우리 기업은 어디까지는 간다’ 이런 말도 많이 나왔고.


창수 맞아. 일단 학력은 기본이었고, 여기에 학점도 중요했지. 우리 학교는 열람용 학점과 취업용 학점이 따로 있었어. 취업용은 F학점을 다 날려주는 거야.



당시 인기 업종과 기업은 어디?

채용 포털 ‘커리어’가 리서치 전문기관 ‘폴에버’와 함께 2005년 구직자와 직장인 5000명을 대상으로 ‘업종 및 기업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에서 가장 진출하고 싶은 업종에 공기업이 1위로 올랐다. 가장 인기 있는 곳은 한국전력공사였다. 과반수의 인원이 한전을 택했고, 다음으로 한국도로공사·인천국제공항공사도 상위권을 차지했다.


2위에는 전기전자와 인터넷 기업이 공동으로 올랐다. 전기전자 업종 중에서는 삼성전자가 77%로 1위였고, 이어 LG전자와 삼성SDI 등이 다음 순위를 차지했다. 인터넷 분야에서는 다음커뮤니케이션(58.4%)에 대한 선호도가 가장 높았다. SK커뮤니케이션즈와 NHN도 각각 51.8%, 42.3%로 2위와 3위를 기록했다.


입사 희망기업을 선택하는 데는 급여 및 복리후생과 더불어 기업 이미지가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응답자 중 30%가 ‘기업 선택 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급여 및 복리후생’을 들었다. 기업 이미지도 22%로 2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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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길 학점 진짜 중요했어. 대학교 4학년 때 학점 때문에 취업 안 된다고 교수들 찾아가서 호소도 많이 했지. 다음으로 본 것이 토익 점수였어. 당시 대기업들이 토익 650점이 안 되면 아예 지원도 못하게 했었다니까.


그래서 그때 어학원들이 센세이션을 일으켰잖아. 4학년들은 다 거기 모여서 족집게 강의 듣고. 그만큼 영어가 중요해서 어학연수 한 번 다녀오면 큰 스펙이 됐지.


창수 맞아. 그래서 영문과도 진짜 인기 많았어. 그 다음이 일본어였고. 근데 막상 취업할 때 되니 대부분 영업이나 마케팅 쪽으로 가더라.


광길 요즘도 캠퍼스 리크루팅이 있나? 마땅한 홍보수단이 없다 보니 기업들이 모교 선배와 함께 학교에 찾아와 괜찮은 인재들 데려가려고 애 많이 썼지.


창수 맞아. 그러고 보면 경쟁률은 높았지만 준비하는 게 요즘만큼 힘들지는 않았어. 아, 면접은 조금 다양해졌다. 압박면접이 처음 나왔지. 그때 LG그룹 면접을 봤는데 계속 시비를 거는 거야. ‘꼬리 물기’라고 하지. 워낙 신개념이이어서 제대로 대답 못한 친구들도 엄청 많았어.


광길 인터넷 활용 능력도 중요했어. 심지어 우리끼리 ‘너 몇 타나 치느냐’고 물어 보면서 막 부러워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창수 그래서 전자전파공학이 확 떴지. 삐삐·시티폰 같은 게 생겼으니까. 요즘도 전·화·기(취업이 비교적 잘된다는 전기전자·화학공학·기계공학과를 이르는 말)라는 말이 있다면서? 당시에도 문·사·철은 취업이 안 됐고. 그만큼 전공도 중요했어. 한자능력검정시험도 유행이었잖아. 중· 고등학교 때는 한글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며 한자시간에 자율학습 시키더니 말이야.


광길 하지만 무엇보다 선배의 힘이 컸지. 선후배 간의 끈끈함이 있었잖아. 취업한 선배가 조언도 많이 해줬거든. 정보도 많이 주고.



[스페셜-‘취업시장 토토가’] 조상님이 들려주는 2000년대 취업 썰, 설레는 젊음 하나로  ‘그땐 그랬지~’


스펙 인플레 극복하려면 인간미 갖춰야


창수 요즘 스펙 인플레 현상이 진짜 심각하더라. 막 키보드 단축키만으로 제안서를 만들어 오더라니까. 그런데 우리는 신입사원들 능력 차이가 ‘회수권 한 장’ 차이라는 말을 많이 해. 그만큼 정작 차별화되는 게 없다는 거지. 스펙의 흐름이 돌고 돌아 지금은 아주 초기 단계로 돌아온 것 같아. 이제 곧 근본적인 인간미가 중요한 시대가 오지 않을까?


광길 맞아. 그리고 놀아본 친구들이 더 좋더라. 집-학교-도서관 같은 단순한 스케줄에 매몰돼있기보다 술집도 가고 노래도 좀 부르는 경험 많은 친구들 말이야.


창수 아르바이트를 선택할 때도 과외나 이런 편한 것 말고 조금 힘들더라도 업무에 도움 되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어. 학생들이 스펙만큼 눈도 높아져서 낮은 데 갈 바에는 대학원 가거나 아예 취업을 포기하는 것 같아. 엄청난 낭비지.


광길 맞아. 업종을 빨리 찾아야 해. 처음 선택한 직종에 10년 뒤에도 발을 담그고 있을 확률이 70~80%는 된다고 봐. 아, 요즘 창업도 많이 하더라. 벤처 거품 이야기도 했지만 창업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는 안 돼. 수십 년 사회경험이 있는 내 나이 친구들도 사업하기 어렵다고들 하거든. 학생들이 회사나 업종을 고를 때 신중했으면 좋겠어.


글 이도희 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한국경제 DB


온라인에디터 jobnj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