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멘톨이

OO청바지, OOO팩, OO스테이크, OO만두…. 홈쇼핑 채널을 통해 등장하는 상품들의 연이은 대박 행진, 그 중심에는 ‘MD(머천다이저)’가 있다. MD는 시청자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상품을 선정하고, 생산하고, 그 상품의 가치를 높여 판매로 이어지도록 하는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유통업의 꽃’.

이 분야로 진출을 꿈꾸는 이들에겐 성별 불문 ‘워너비’ 직업이기도 하다. 홈쇼핑 MD 1세대, GS샵 패션의류 분야 MD로 12년째 우리나라 홈쇼핑 산업의 의류 시장을 개척해온 강성준 팀장을 만나 MD의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홈쇼핑 MD] “1분에 300콜, 피 말리는 긴장과 짜릿한 희열이 공존하는 세계”
강성준 GS샵 패션의류팀장
- 1971년생
- 경희대 의상학과 졸업
- 1996년 신세계 백화점 여성의류 파트
- 2001년 LG홈쇼핑 상품기획팀 의류MD
- 2009년~현재 GS샵 패션의류팀장


“유 통 분야의 MD는 업무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요. 일종의 ‘종합 예술’이라고 볼 수 있죠.” 강성준 GS샵 팀장은 ‘포괄적’이라는 단어로 홈쇼핑 MD의 업무를 소개했다. 일반적으로 머천다이저(MD) 직군을 소개할 때 떠올리기 쉬운 의류제조 업체의 ‘브랜드 MD’와 업무 범위가 다르다는 것.

오프라인 매장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브랜드 MD는 주로 상품 기획에만 관여한다. 하지만 매장이 없는 홈쇼핑의 경우 기획 단계부터 방송에서 어떤 판매 전략을 취할 것인지 염두에 둬야 한다. 따라서 홈쇼핑 MD는 상품의 소재, 패턴, 컬러를 선정하는 일까지 관여한다. 오늘은 ‘바이어’지만 내일은 ‘디자이너’로, 또 ‘마케터’로 역할을 바꿀 수 있는 역량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광범위한 일을 하는 만큼 만나는 사람도 다양하다. 가장 많이 만나는 이들은 ‘상품 공급자’. 강 팀장은 “MD의 가장 큰 덕목은 좋은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파트너를 개발해 그 네트워크가 양질의 상품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도 MD의 역량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상품 기획에 대한 감각과 사람들을 한곳에 모을 수 있는 네트워킹 능력을 함께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홈쇼핑 MD] “1분에 300콜, 피 말리는 긴장과 짜릿한 희열이 공존하는 세계”
“회사의 매출을 움직이는 중심은 나”

홈쇼핑에서 방송을 통해 벌어들이는 연간 매출액은 1조5000억 원에 달한다. 백화점 한 채의 연간 매출액과 같은 규모다. “브랜드 MD에 비해 기획하는 스타일의 수는 적지만 한 번에 하나의 상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것이니 그만큼 압축적으로 트렌드를 담아내야 해요.”

일반적으로 시즌 기획 상품들은 1년 정도의 준비 기간을 거쳐 탄생한다. 오랜 시간 준비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 속 성공 여부는 알 수 없기에 늘 긴장 상태다. “준비한 상품이 방송을 통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것을 보면 마치 딴 세상에 온 것처럼 전율이 오죠. 하지만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에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동반돼요.”

강 팀장은 빠르게 흘러가는 트렌드를 파악해 그 안에서 고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상품을 정확하게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패션업계에서 ‘동물적인 감각’이 필요하다고 얘기해요. 고객에 대한 끝없는 연구를 바탕으로 자신 있게 일을 진행시킬 수 있는 배포도 필요하고요.”

또 하나 필요한 자질은 숫자에 대한 감각이다. MD에게 주어지는 권한이 큰 만큼 잘 활용하면 충분한 효과를 낼 수 있지만 반대로 한순간의 실수가 돌이키지 못할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일을 하다 보면 제 주변에 회사의 모든 자원이 집중돼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것에 대한 긍지와 보람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부담과 스트레스도 받죠.”
[홈쇼핑 MD] “1분에 300콜, 피 말리는 긴장과 짜릿한 희열이 공존하는 세계”
“인기 드라마에 ‘콜’이 줄어들 때 애환 느끼죠”

홈쇼핑 MD로서 느끼는 애환도 수없이 많다. 무엇보다 외부 영향을 많이 받는 방송산업의 특성상 예측하지 못한 사건·사고를 피해갈 수 없다. 아주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기획한 상품을 선보이는 날 갑자기 테러가 발생한다면? 예기치 않은 돌발변수 때문에 기획이 한 번에 물거품이 되는 경우도 있다.

“MD는 주어진 시간에 목표량을 팔아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에 들쑥날쑥하는 시청률 속에서 애가 탑니다. 드라마 ‘시크릿가든’이 할 때면 콜이 바닥으로 급강하하곤 했어요.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30~40분의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요.(웃음) 이 모든 것을 넘나들며 상품 운영을 해야 하는 게 MD라는 직업의 묘미이자 애환이죠.”

강 팀장은 드라마나 언론 보도에 등장하는 홈쇼핑의 ‘대박 신화’에 대한 환상만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는 것을 경계했다. 실제로 하나의 상품이 ‘대박’으로 이어지기까지 오랜 세월 철저한 준비가 밑받침돼야 한다는 것.

“고객에게 인정받는 상품은 보통 노력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보다 훨씬 치밀한 준비가 필요한 일이고, 논리와 과학으로 접근해야 하는 비즈니스예요.”

수준 높은 소비자를 리드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객에게 먼저 신뢰를 얻어야 판매하는 업체도, 협력하는 사람들도 믿고 따라오게 됩니다. 전문가로서 ‘촉’을 잃지 않기 위해 업계 사람들을 꾸준히 만나고 해외 트렌드도 접하고 트렌드를 좇는 노력이 끝없이 이어져야 하죠. 결코 만만치 않은 직업이에요.”

하지만 힘든 만큼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직업이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트렌드를 찾고 배우고 체험해봐야 다른 아이디어가 나오기 때문에 그런 노력을 해나가는 과정이 인생을 즐겁고 풍요롭게 합니다. 힘든 일도 많지만 결과적으로는 누구보다 재밌게 살 수 있는 직업이 아닌가 생각해요.”



홈쇼핑 MD에게 궁금한 점

Q. 홈쇼핑 MD가 되려면?

A. 홈쇼핑과 같은 유통업의 MD가 되려면 유통업에 대한 관심을 놓지 말 것. 평소 오프라인 매장에 다니며 꾸준히 업계 상황을 지켜보는 게 중요하다. 브랜드 업체에서 인턴십을 하거나, 홍보마케팅 분야에서 근무한 경험도 도움이 된다. 상품을 다루는 일이지만 마케터 역량이 필요할 때가 많기 때문.



Q. MD로서의 자질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학문은?

A. 경영학 중 마케팅 분야, 심리학 중 소비자심리학 분야 수업을 들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패션 분야 MD를 꿈꾼다면 의상학 또는 디자인 계열 전공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상품에 대한 기본 감각이 일을 하는 데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Q. 비전공자도 MD가 될 수 있나?

A. MD가 되기 위해 꼭 관련 아카데미를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마케팅, 심리학 등 업무에 도움되는 기초적인 소양을 닦는 것을 추천한다. 자신의 관심사를 살려 관련 잡지도 읽고 오프라인 매장도 자주 돌아보며 업종에 대한 관점을 키우기 바란다. 상품에 대해 관심이 충분하다면 분명히 길이 있다.



Q. 어학 능력이 중요한가?

A. 필수는 아니지만 어학 쪽에 재능이 있으면 해외 진출 기회가 더 많아진다. 패션 분야를 다룬다고 단순히 ‘패션’으로만 승부하려는 생각은 버릴 것.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않은 걸 갖추어야 경쟁력이 된다.



글 김보람 기자 bramvo@hankyung.com
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