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의 보이스톡이 사라졌다. 누군가가 카카오톡을 관 안에 가둬놓고 보이스톡을 훔쳐간 것이다. 보이스톡은 카카오톡이 소유한 철제상자의 이름이다. 철제상자 안에는 통화품질이 들어 있었다. “자작극입니다.” 내가 말했다.

사건 몇 개를 해결한 이후로 나는 우주적인 자만심으로 충만해 있었다. 탐정 사무실이 열린 후로 가장 많은 사람이 와 있었다. 전병헌 경감이 지휘하는 수사팀과 방통위, 소비자연대 이사, KT, LG유플러스, 그리고 거물 SKT까지 왔다. 보이스톡에 담긴 통화품질이 뭐라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단 말인가.

“모두 카카오톡이 꾸민 일입니다.” 내 말에 사무실 안이 고요해졌다. 방금 전까지 사무실에서는 난투에 가까운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종산의 이슈탐정소] 카카오관 미스터리
카카오톡은 관 안에 들어가기 전날 SKT, KT, LG유플러스가 자신에게 죽음의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VoIP 사업을 독점하고 있는 SKT, KT, LG유플러스 3인이 카카오톡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카카오톡은 m-VoIP 사업에 뛰어들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카카오톡은 VoIP 독점에서 m-VoIP 독점으로 넘어가려는 3인의 계획에 걸림돌이 됐다. 3인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3인이 범인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명씩 따로 취조를 받은 3인은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며 펄쩍 뛰었다.

3인은 사무실에 들어와서부터는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다만 LG유플러스는 6월 7일 밝힌 전면 개방 입장을 완전히 뒤집었다. 3인은 자신이 관리하는 구역에 카카오톡이 드나드는 것을 막고 있다. 전 경감은 방통위가 3인의 독점을 무능력하게 방관하고 있다며 비난했고, 방통위는 중립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소비자연대는 이미 시장 지위 남용 문제로 3인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한 바 있다. 여러모로 3인이 궁지에 몰리는 분위기였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소.” 내가 빛나는 추리를 펼치려는 찰나 침묵을 지키고 있던 SKT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SKT는 카카오톡을 관에 가두는 자리에 있었으며 통화품질을 훔치는 데 일조했다고 고백했다. SKT의 말이 나를 성숙하게 만들었다. 그 뒤부터 나는 나 자신과 내 능력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었다. ※이 글의 일부는 엘러리 퀸의 ‘그리스 관 미스터리’ 15~16챕터에서 인용했다.



시사 키워드 다시 읽기
보이스톡 이용 제한 논란

- 국내 380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SNS 카카오톡, 2012년 6월 4일 ‘보이스톡’이라는 m-VoIP(모바일 인터넷 전화 서비스)를 선보임. 음성 통화가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이동통신사들은 통신망을 이용하는 보이스톡 서비스에 대해 우려.

- 기존 m-VoIP에 대해 이동통신사들은 특정 요금제에 가입한 회원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서비스를 허용하거나(SK텔레콤, KT) 서비스 자체를 전면 차단(LG유플러스)해왔음. LG유플러스는 2012년 6월 7일 보이스톡과 같은 m-VoIP에 대해 전면 개방 선언.

- 지난해 11월, 경실련 등 시민단체는 통신사가 일방적으로 m-VoIP를 제한하는 것은 불공정 행위라며 공정위에 이통사의 m-VoIP 서비스 제한 조치를 고발한 바 있음.

- 한편 2012년 6월 14일 국회에서 열린 ‘보이스톡 논란과 망 중립성’ 토론회에서 카카오톡 측은 통신사들이 의도적으로 통화품질을 조작했다고 주장. 이에 대해 SK텔레콤 측은 보이스톡이 허용된 요금제 이용 고객들은 정상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며 반박.



m-VoIP(mobile Voice over Internet Protocol)

모바일 인터넷 전화 서비스. 인터넷망을 이용한 전화 서비스인 VoIP(Voice over Internet Protocol)가 진화한 형태다. 1대1 회선을 통해 음성 통화를 하던 기존의 유선 전화와 달리 와이파이(Wi-fi), 3G망과 같은 무선 모바일 인터넷망을 이용하기 때문에 비용이 저렴하고, 통화와 함께 영상이나 문자메시지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스카이프’, 다음의 ‘마이피플’, 네이버의 ‘라인’, 카카오톡의 ‘보이스톡’ 등이 있다.



이종산

사건의 여파를 추적하는 이슈탐정소장. 잡글이라면 다 쓰는 잡문쟁이. 한량 생활에는 염증이 나고 샐러리맨이 되기는 두려운 졸업 유예자로 캠퍼스를 어슬렁대고 있다. rolel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