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페스티벌

“이상은 아주 큰데 현실은 몰라주고, 가진 건 꿈이 전분데…. 돌아오지 못할 강물처럼 흘러간다.”밴드‘뜨거운 감자’는‘청춘’을 이렇게 노래했다. 이런 청춘을 위로하기 위한 페스티벌이 지난 5월 19일 열렸다.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플로팅스테이지에서 오후 1시부터 진행된 이날 행사에선 MBC 뉴스데스크 최일구 앵커, 디자이너 이상봉, 무한도전 김태호 PD 등 청년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여덟 명의 멘토가 차례로 무대에 올라 자신의 ‘청춘’을 이야기했다. 관객석을 가득 채운 4000여 명 대학생의 환호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현장 스케치] 원더풀~ 원더풀~ 멘토의 청춘
“총장 앞에서 기자가 되겠다고 선언하던 순간” - MBC 최일구 앵커
대학 입학식날 총장님이“여러분 중 꿈이 있는 사람은 말해보세요”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처음 손을 들었죠.“대한민국 최고의 기자가 되겠습니다!”라고 말이죠. 그날의 외침이 저를 만들었습니다.‘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하죠? 누군가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나 기대가 그 대상에게 그대로 실현되는 것 말이에요. 언론사 입사 시험에서 계속 낙방했지만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은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앵커의 꿈을 이루고 나자‘나만의 뉴스를 진행하자’는 고민이 시작됐어요. 내 재능이‘튀는 것’이니 앵커 진행 방식을 그에 맞춰 바꿔보자고 했지요. 시청자와 대화하듯 말하고, 시청자와 공감하기 위해 현장 속으로 가보고···모두 나만의 스타일로 뉴스를 풀어내기 위해서였지요.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재능이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가는 것이 자기 자신을 브랜딩하는 방법입니다. 직업을 선택할 때도 그 재능이 중점이 돼야 합니다.


[현장 스케치] 원더풀~ 원더풀~ 멘토의 청춘
“가수가 어떻게 판검사를 이기냐고?”-
인디 뮤지션 강백수
고등학교 때 제가 좋아했던 그녀는 손꼽히는 우등생이었습니다. 학원 선생님도, 여자친구 부모님도 우리가 사귀는 걸 싫어했어요. 결국 얼마 안 가 헤어지게 됐는데 저는 이별이 슬프기보다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녀를 이기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길 수가 없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가수로 활동할 때 그녀가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이건 절대 극복이 안 되는 열등감이구나’싶더군요.

그때 만든 노래가“가수가 어떻게 판검사를 이겨”라는 가사의 ‘벽’이라는 곡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제가 범한 실수가 있었어요. 자꾸 그녀가 잘하는 것으로만 나를 비교한 것이죠. 김연아가 박태환에게 수영으로 겨루자고 하면 이길 수 있겠어요? 나는 현실적 가치에선 훨씬 뒤처져 있는 게 분명합니다. 평생‘딴따라’라는 편견과도 싸워야 하죠. 하지만 낭만적 가치에선 내가 조금 더 앞서지 않을까요. 그녀가 모르는 홍대의 밤 풍경을 나는 알고 있고, 여러분 앞에 서서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잖아요.
[현장 스케치] 원더풀~ 원더풀~ 멘토의 청춘
“대학 시절은 평생 써먹을 무기를 만드는 시기” -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
대학 시절은 정말 기가 막힌 특권을 얻는 시기입니다.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누군가가 돈을 대주는 기간이니까요. 대학 문을 나서면 험악한 세상이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그 시절에 평생 쓸 수 있는 무기를 마련해야 해요. 보통의 대학생들이 중요시하는 전공과 스펙만으로 긴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60세에 은퇴하면 남은 인생 30여 년 동안 스스로 먹고살 능력이 필요합니다. 은퇴라는 개념이 없어질 거예요.

직업을 대여섯 번은 갈아타야 하는데 대학 때 배운 전공 하나로 그것이 가능할까요? 자기 자신을 다양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기회가 오든지 바로 잡을 수 있지요. 시작이 늦었다고 해서 너무 걱정할 필요도 없어요. 사회에선 별 상관이 없습니다. 대학을 6~7년 다녀도 괜찮아요. 저도 2년 늦게 시작했지만 나중에 그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더군요. 조바심 내지 마세요. 대학 시절에 다양한 무기를 쥘 수 있도록 노력하세요.
[현장 스케치] 원더풀~ 원더풀~ 멘토의 청춘
“디자이너를 꿈꿨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 디자이너 이상봉
서울예술대학에서 방송연예학을 전공한 나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연극인을 꿈꿨습니다. 공연 일주일을 남긴 어느 날 커다란 벽을 느꼈어요. 결국 연극으로부터 도망을 쳤고 그 자리에 우연히 디자이너라는 꿈이 찾아왔습니다. 운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디자이너는‘상상을 실천하는 직업’입니다. 생각한 것을 시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실천하는 자세가 중요해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현실로 이끌어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세상이 두렵고 불안한 청춘들처럼 나도 도망가고 싶은 충동을 간혹 느낍니다. 아직도 무대를 내려오면“해냈어, 이번에도 도망가지 않았어”하면서 스스로를 보듬습니다.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법을 알게 됐거든요. 한때는 누군가와 비교하며 한계를 느꼈지만 이제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됐어요.
[현장 스케치] 원더풀~ 원더풀~ 멘토의 청춘
“나는 세계 일주로 경제를 배웠다”- 작가 코너 우드먼(Conor Woodman)
학자금 대출을 받아가며 대학을 다녔지만 졸업 후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의 애널리스트가 됐어요. 대출을 다 갚고 아파트와 차를 살수 있는 돈을 벌었죠. 마땅히 행복해야 하는데 회의가 오더군요. 기업을 매입해 분사하며 수익을 내는 일을 했는데, 이윤을 위해 종종 많은 직원을 해고해야 했어요. ‘이런 일을 하려고 경제학을 공부했나’하는 생각에 사표를 내고 네팔로 향했죠. 내가 평생 하고 즐겨야 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려고요.

티베트에서 소금을 나르는‘야크’행렬을 보고 물물교환의 원리가 떠올랐어요. 그때부터 여러 나라에 가서 산 물건을 다른 나라에 가서 팔면서 돈을 벌었어요. 세계 일주를 무사히 마쳤지요. 이때 느낀 것은 소통의 중요성이었습니다.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면 장사 또한 성공해요. 많은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이 있음에도 현실이라는 벽이 두려워 도전을 피합니다. 하고 싶은 일은 해봐야 합니다. 직접 경험해봐야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죠
[현장 스케치] 원더풀~ 원더풀~ 멘토의 청춘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 예술가, 남이 원하는 일을 하면 기획가” - 상상공장 류재현 감독
네가지 조언을 드리고 싶어요. 첫째, 최소한 10년은 버티자. 10년이란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기간 단위라고 합니다. 조바심을 내어 되돌아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둘째, 돈 생각하지 마세요. 돈을 걱정하다 보면 많은 것에 얽매이게 됩니다. 셋째, 남과 비교하지 마세요. 엄친아 같은 비교 대상은 언제나 있습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인생을 10년 단위로 비교하는 게도움이 됩니다. 마지막, 실패하세요. 실패는 성공의 또다른 이름입니다. 내인생의 터닝포인트는 친구의 조언이었어요.“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 돈이 안 벌리고 남이 원하는 일을 하면 돈이 벌린다.”홍대 클럽데이,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 등내가 만든 행사가 사실은 남들이 원한 일이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예술가’, 남이 원하는 일을 하면‘기획가’, 이것은 내신념이기도 합니다
[현장 스케치] 원더풀~ 원더풀~ 멘토의 청춘
“내 앞의 면접관, 동네 아저씨란 마음으로”- MBC 김태호 PD
방송사 입사 면접을 할 때 나는 별로 떨지 않았어요. 어차피 낙방하면 면접관은 동네 아저씨보다 못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면접관에게 질문도 던지면서 편하게 대했죠. 면접 경쟁률은 중요치 않아요. 내 입장에서 보면‘되느냐 마느냐’결국 반반의 확률이잖아요. 무한도전의 소재가 고갈되지 않았느냐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데, 그간 해 온 소재 중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건 없어요.

창의성은 누군가의 천재적인 감각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경험이 다른 이의 경험과 부딪히면서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무엇’이 아니라‘어떻게’이야기를 풀어갈까가 더 중요하죠.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나는 완성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과정’을 살아갑니다. 그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내심인 것 같아요. 운전 연습처럼 인생도 멀리 보고 가는 것이 중요해요. 과정을 즐기고 이겨내다 보면 어느 순간 산 중턱에 와 있더라고요.
[현장 스케치] 원더풀~ 원더풀~ 멘토의 청춘
“나를 만든 건 8할이 시련과 절박함”- K팝스타 이승훈
오직 춤이 좋아 춤만 추던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무작정 서울로 왔어요. 부모님 품을 떠난 나는 앞이 캄캄했죠. 대학 가는 친구들이 부럽고 TV에 나오는 연예인과 나를 비교하며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했어요. 아이돌을 하기엔 나이가 많았고 나를 찾는 곳은 없었어요. 하루를 견디고 잠자리에 누워 또다시 미래를 그려보곤 했는데, 그런 절박함이 오히려 약이 됐습니다. K팝스타에 지원하면서 이번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임했거든요.

절박함은 내 성격까지 바꿔놓았고 심사위원이 눈여겨볼 기회를 줬습니다. 난생처음 랩을 하고 진심을 다해 랩가사를 쓰고 그동안 쌓아온 실력을 다 발휘해 무대를 만들었어요. 그 모든 것이 합쳐지자 거리가 멀어 보였던 꿈이 내 앞으로 다가오더군요. 결국 목표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었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아픈 시련의 시간이 나를 성숙하게 만든 것이죠.



글 이시경(홍익대 국어국문 3)·이경민(상명대 한국어문학 4)·김명환(충북대 경영학부 2)·이승현(숭실대 경제 2) 대학생 기자┃사진제공 마이크임팩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