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량특집

머리를 늘어뜨린 귀신 이야기보다 몇 배 더한 공포를 느껴본 적 있는가. 그것도 실생활에서 말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가 겪은 일이라 더 간담이 서늘한 공포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터. 선풍기 바람과 비교할 수 없는 서늘함을 선사할 ‘진정한 공포’ 속으로 떠나보자.
[재미로 하는 진지한 리서치] 진정한 공포란 이런 것
“사이버 강의를 들었는데 강의 특성상 시험기간을 인터넷으로만 공지해주거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이번 주쯤이면 시험 보겠구나 싶어서 확인했더니 이미 지난주에 시험을 치른 거야.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지.” (강대준·홍익대 4)



“밤을 새우다시피 해서 과제 하나를 겨우 완성했지. 그런데 그걸 저장해둔 USB를 학교 PC실에 꽂아놓고 깜빡한 거야. 등 뒤에 소름이 다 돋더라. 뛰어가 봤지만 이미 누가 가져가고 없더라고. 결국 기억에 의존해 처음부터 다시 할 수밖에 없었지.” (김세진·연세대 3)



“큰맘 먹고 사뒀던 선글라스를 여름이 되어 신난다고 꺼내 썼지. 거기에 맞춰서 옷도 빼입고 그날따라 화장도 잘 돼서 너무 기분이 좋았어. 그런데 선글라스 때문에 콧등의 화장이 확 밀렸던 거야. 그걸 내 눈으로 확인했을 때의 공포란….” (김진빈·한동대 2)



“친구랑 한 달 전에 잡은 밥 약속이 있었어. 내가 한 번 미루기도 했던 약속이라 꼭 나가야 했지. 그런데 전날 밤에 깨달은 거야. 내 통장의 잔고가 5000원도 안 남았다는 걸. 참 복잡한 심경이 되더군.” (정예림·홍익대 3)



“아침에 등교하려고 준비하는데 화장품이 보이지 않았어. 알고 보니 동생이 내 화장품 파우치를 통째 가지고 나간 거야. 거울을 보면서 이 생얼로 학교를 가야 한다는 사실을 되뇌는데, 진짜 호러였어.” (김줄기·연세대 3)



“자취방에서 친구들이랑 질펀한 술자리를 하고 있는데, 마침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어. 마치 혼자 평온한 저녁을 보내고 있는 듯 연기를 펼쳤지. 그런데 갑자기 술 취한 친구가 뒤에서 소리를 지르는 거야. 혼비백산한 그 순간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신혜임·중앙대 2)



“그날은 그냥 기분이 좋은 날이었어. 날씨도 좋고, 뭔가 일이 잘 풀리는 그런 날. 잠자리에 들기 전, 별 생각 없이 휴대폰 시계를 보는데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띵~하더군. 그날은 남자친구 생일이었던 거지.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밤 11시 50분. 서프라이즈를 기대하던 남자친구는 기다리다 지쳐 쓰러진 다음이었지.” (이슬기·홍익대 3)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일 년에 두 번, 살 떨리게 긴장하는 날이 있지. 바로 수강신청일. 심호흡하고 데스크톱 앞에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오픈 시간을 기다렸지. ‘요이 땅~’ 정각이 되는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어. 사랑하는 컴퓨터가 갑자기 확 다운… 새카만 화면을 바라보며 오만가지 생각을 했어.” (이은지·서울여대 3)



“스마트폰을 사는 순간 나는 약정의 노예가 되었어. 흠집이라도 생길까 애지중지하면서 두 손으로 쓰고 있는데, 얼마 못 가 땅에 툭 떨어뜨리고 말았지. 그리고 다음 순간, 너무나 육중해서 슬픈 자동차가 내 연약한 폰 위로 지나가더라. 그 무수한 금은 내 마음에 똑같이 새겨졌지.” (홍재희·단국대 3)


글 이시경 대학생 기자(홍익대 국어국문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