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고민 끝에 전공을 결정하고 처음으로 받은 전공 서적은 새내기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런데 강의실에 들어서자 이게 웬일. 딱딱하기만 한 이론은 금세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내가 생각했던 건 이게 아닌데’라는 후회까지 들게 한다.

교재 속 이론을 현실에서 풀어보고 싶은 것은 많은 대학생이 한 번쯤 품는 소망이다. 실력 점검과 더불어 공부에도 재미가 붙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도와줄 선생님은 스크린 속에 있다. 공부는 하지 말고 영화나 보라고? 우리의 선생님을 무시하다니! 어떤 영화든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멋진 선생님으로 삼을 수 있다. 공부는 책상에서만 하는 게 아니니까.


영화 속 심리학 캐리비안의 해적 4 - 낯선 조류

줄거리 - 마시기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젊음의 샘’. 주인공 잭 스패로우와 스페인 궁정 해군 바르보사, 해적 검은 수염 일당은 이 샘을 차지하기 위한 항해를 시작한다.
[영화로 전공 공부하기] 스크린 속 심오한 학문의 세계로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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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샘’ 앞에 도착한 등장인물들. 바르보사와 검은 수염은 칼싸움으로 목숨을 잃어가는 상태다. ‘젊음의 샘’으로 영생을 얻으려면 두 개의 잔이 필요한데 생명의 잔을 드는 이는 죽음의 잔을 드는 이의 남은 생애를 뺏어오게 된다. 검은 수염은 죽음을 앞두고 생명의 잔에 든 샘물을 마셔 딸 안젤리카의 생명을 빼앗고자 한다.

생각해보기 - 영원한 젊음을 향한 욕망

심리학자 자크 라캉은 정신분석학에서 인간의 존재를 ‘욕망’으로 정립시켰다. 즉 인간 정신의 가장 아래에는 무의식적인 욕망이 자리한다는 것이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욕망한다. 또한 그 욕망이 완전히 충족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아래 계속 욕구 충족을 위한 시도를 한다. 이 영화는 ‘젊음의 샘’을 차지하려는 등장인물들의 치열한 싸움으로 전개된다. 그 누구도 영원한 젊음을 가지지 못했고, 가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욕망의 힘은 얼마나 강력할까. 검은 수염은 잔혹하고 무자비하기로 유명한 해적이지만 딸 앞에서만큼은 이른바 ‘딸 바보’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젊음의 샘’ 앞에 섰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친딸마저 남으로 만들 수 있는 비윤리적 실체가 욕망이다.

여기서 ‘아무리 본능적 욕망이라도 비윤리, 비도덕적이면 되겠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자크 라캉은 욕망을 말하는 근원적 주체가 타자 혹은 초자아라고 봤다. 따라서 인간은 욕망을 두고 무의식과 나 사이에서 충돌을 겪게 된다. 자크는 이를 원억압이라 칭하고 이 충돌과 균열을 잠재우기 위해 도덕과 윤리가 등장한다고 설명한다. 결국 검은 수염이 겪은 원억압은 도덕적 잣대로 규명되지 않는 것이다.

한 걸음 더

그렇다면 욕망의 끝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일까. 사회학자이며 작가인 장 보드리야르는 욕망이 충동적이며 유동적이라고 했다. 갑자기 무언가가 너무나도 갖고 싶다가 며칠 사이 그 욕망이 식어버리는 경우, 휴대폰을 사고 나니 컴퓨터가 갖고 싶어지는 경우 등이 그렇다. 끝없이 변하는 욕망의 대상, 그 정도에 대해 논의해보자.


※참고 : 영화 속에 투영된 인간 내면의식 구성과 반향연구(최지윤, 성균관대학교, 2005) 스크린에서 마음을 읽다(선안남, 시공사, 2011)



영화 속 철학 라이온 킹 1

줄거리 - 심바는 삼촌인 스카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쟁탈하는 과정에서 왕국으로부터 추방당한다. 이후 우연히 만난 티몬, 품바와 친구가 되면서 심바는 어른으로 성장해나간다. 어느 날 잊고 지내던 왕국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에 다시 왕국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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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몬과 품바는 매사를 즐겁게 살아가며 ‘하쿠나 마타타(문제없어)!’라는 말을 신조로 여기고 있다. 심바는 아버지를 잃고 왕국에서도 추방당해 더 이상 웃을 수 없던 상황. 그런데 한 번 두 번 이 말을 따라하다 보니 어느새 그들과 같이 춤추며 적응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생각해보기 - 하쿠나 마타타!

인간의 모든 사고는 언어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 우리 머릿속에는 언어의 형태를 빌린 사고가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언어철학은 해당 언어가 내포하고 표현하는 의미의 대상을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서며 언어철학은 전환점을 맞게 됐다. 언어는 의미하고 있는 내용이 아닌 그 자체로 지배력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 나타난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 아닌 걸까’의 문제로 밤새 고민하다 친구에게 상담을 요청한 당신. ‘나 그 사람 좋아하나봐’라고 말을 내뱉은 다음 날부터 자신의 감정이 정말 사랑이 됐음을 경험해본 적 있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내가 내뱉은 언어가 다시 나에게 돌아와 영향을 끼친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 심바도 마찬가지. ‘하쿠나 마타타!’는 심바의 인생에 큰 일조를 한 격이다.


한 걸음 더

그렇다면 우리의 모든 사고와 행동은 언어를 통해 지배될 수 있는 것일까. 지난 수세기 동안 여러 철학자가 이성과 감성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해왔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에 비해 감정은 유동성이 커 일관적이지 않고, 변화시키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감정은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하쿠나 마타타’라는 언어의 반복으로 모든 사람이 근심을 떨쳐낼 수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이성과 감성을 결합하기 위해 고민하던 그 많은 철학자가 헛수고를 했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자문 : 박기순 교수(충북대 철학)
※참고 :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이왕주, 효형출판, 2005)



영화 속 수학 박사가 사랑한 수식

줄거리 - 교통사고 이후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 기억력을 갖게 된 박사. 이 때문에 가사 도우미와 그의 아들에게 매일매일 첫인사를 건네고 있다. 한편 가사 도우미 모자는 세상 모든 것을 수로 풀이하는 박사를 통해 수의 원리와 아름다움을 배우게 된다.
[영화로 전공 공부하기] 스크린 속 심오한 학문의 세계로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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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는 80분에 한 번씩 가사 도우미에게 질문을 던진다. “자네, 신발 사이즈가 어떻게 되지?” “24입니다.” “고결한 숫자군. 4의 계승이라니.”

생각해보기 - 수를 통한 사람들과의 교류

계승이란 하나의 자연수 n에 대해 1부터 n까지 모든 자연수의 곱을 이르는 수다. 즉 4의 계승은 24가 되는 것(1x2x3x4=24). 박사는 이렇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수를 통해 사람들과 대화하고 교감했다. 그들의 수는 전혀 딱딱하지 않다. 오히려 ‘문학적이고 아름답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박사에게 루트는 ‘어떤 숫자든 가리지 않고 보호해주는 관대한 녀석’이며 우애수(두 수의 쌍 중 어느 한 수의 진약수를 모두 더하면 다른 수가 되는 것)는 ‘신의 주선으로 맺어진 숫자’다. 수의 매력에 반해보고 싶다면 때로는 공식과 정답에서 벗어나 수로 ‘대화’ 해보자.



한 걸음 더

영화는 박사가 교통사고 이전에 자신의 형수를 사랑했었으며,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편지로 고백했음을 알려준다. 여기서 박사가 사용한 수식은 오일러의 공식(e^(πi)+1=0)이다. 어떠한 규칙도 끝도 없는 초월수 e와 π, 허수 i에 1을 더하면 0이 된다는 것.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는 철저히 무(無)가 돼버렸다는 것일까, 혹은 무한수에 1이 더해짐으로써 0이라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었다는 것일까.


※참고 :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 그 순수한 수식에 대하여…(박정필) 박사가 사랑한 수식(오가와 요코, 이레, 2004)


글 박혜인 인턴 기자 pi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