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기획자

지난 2011년 베를린영화제 단편부문 황금곰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파란만장’. 오직 스마트폰으로만 촬영한 새로운 제작 방식으로 개봉 전부터 큰 이슈가 됐다. 대중에게 ‘아이폰 영화’라는 이름으로 각인된 그 영화가 사실은 한 통신사의 광고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영화이면서 광고이고, 광고인데 영화이기도 한 이 신기한 콘텐츠의 밑그림을 그린 기획자가 있다. ‘인터렉티브 캠페인 디렉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원희 모그 인터렉티브 이사를 만났다.
[멘토에게 듣는 직업 세계] “광고의 새 지평 인터렉티브 캠페인이 연다”
정원희 이사는?
중앙대 시각디자인과
고려대 경영대학원(MBA)
1998년 디자인파크 입사
2002년 외국계 컨설팅 기업 Xfiniti 입사
2004년 파란(PARAN) 마케팅팀 근무
2008년 KTH 콘텐츠본부 서비스 및 브랜드 마케팅 담당
2009년 모그 인터렉티브 입사
2011년 WINSOR ‘Share the Vision’,
삼성 ‘How To Live Smart’ 캠페인 등
다수의 캠페인 진행
[멘토에게 듣는 직업 세계] “광고의 새 지평 인터렉티브 캠페인이 연다”
인터렉티브 캠페인(interactive campaign)은 소비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브랜드를 알리는 광고 기획의 한 분야다. TV, 라디오, 신문, 잡지 등 4대 매체에 의존했던 기존 광고 형식과 달리, 영화·음악·공연·게임 등 플랫폼을 넘나들며 쌍방향 광고를 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국내에 인터렉티브 캠페인이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이지만 해외에선 이미 6~7년 전부터 각종 광고제를 휩쓸어 온 마케팅 기법. 미국에서 버거킹 캐릭터로 게임을 만들어 큰 인기를 끌었던 ‘빅 범핀(Big Bumpin)’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내 1호 ‘인터렉티브 캠페인 디렉터’로 이름을 알린 모그 인터렉티브의 정원희 이사는 “브랜드에 스토리를 입히는 과정”이란 말로 인터렉티브 캠페인의 원리를 설명했다. 소비자들이 주로 접하는 매체에 광고 브랜드와 관련된 콘텐츠를 제작해 내보내면 소비자들은 그 콘텐츠를 즐기며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인식하게 된다는 것. 박찬욱 감독의 영화 ‘파란만장’을 보며 ‘스마트폰으로 찍어도 훌륭한 영상이 나오는구나’ 하고 느낀 대중들이 스마트폰을 구입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 이사는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콘텐츠가 녹아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인터렉티브 캠페인 광고는 전방위로 이뤄진다. 일례로 정 이사가 지난해 총괄했던 캠페인 중 하나인 ‘윈저(WINSOR) 프로젝트’는 3D 영화, 뮤직비디오, 콘서트의 힘을 두루 빌렸다. 기획 단계에서 위스키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만든 뒤 ‘직장인들이 비전을 나눈다(Share the Vision)’는 메시지를 담은 3D 영화를 제작했다. 뮤직비디오도 만들었다. 제작한 콘텐츠는 온라인 모바일 사이트를 통해 대중들에게 배포했다. 캠페인의 마지막은 영화와 음악과 위스키가 곁들여진 콘서트. 행사장을 찾은 관객들은 브랜드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와 음악을 즐기며 직접 위스키를 맛볼 수 있었다.

이 모든 캠페인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데 걸린 시간은 6개월. 다른 광고와 달리 인터렉티브 캠페인 광고는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것이 특징이다. 브랜드에 하나의 스토리를 입히는 과정이기에 최소 3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도 걸린다. 정 이사는 “바로 반응이 오지 않을 때는 스트레스도 받지만 기간이 길기 때문에 생기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일단 캠페인을 시작하면 소비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그 반응에 따라 우리의 대응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죠. 인터렉티브 캠페인을 ‘살아 있는 광고’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멘토에게 듣는 직업 세계] “광고의 새 지평 인터렉티브 캠페인이 연다”
플랫폼·콘텐츠의 한계 벗어나 아이디어로 승부

플랫폼이나 콘텐츠에 대한 한계가 없다는 점도 인터렉티브 캠페인의 특징이다. 정 이사는 “그렇기 때문에 브랜드와 마케팅 전략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캠페인의 분위기나 성격이 본연의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색깔에 따라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는 “캠페인 디렉팅은 기발한 카피 하나, 디자인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와 콘텐츠가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작업”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플랫폼이나 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필수”라고 설명했다.

“인터렉티브 캠페인은 아이디어만큼 실행도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장기간 이어지는 캠페인이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고 처음 기획했던 바대로 진행되도록 이끌어나가는 것도 기획자의 중요한 역할이다. 이 때문에 광고주와 콘텐츠 생산자들을 만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업무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정 이사가 “출근과 동시에 전화 통화를 시작하고 오후 일과는 대부분 미팅으로 채워진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광고업의 특성상 제한된 시간에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관리가 쉽지 않다. 아이디어로 승부를 보는 직업이기에 계속해서 치열하게 공부해야 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끝날 때까지 그에 대한 생각이 멈추지 않아 괴로울 때도 있다”는 고충도 털어놓았다.

정 이사는 “광고가 결코 아름다운 일만은 아니”라면서도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스토리를 만들고 그것으로 고객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일은 즐겁고 행복하다”며 웃었다. “마치 이름 없는 꽃에 이름을 붙이고, 향기를 부여하듯 광고로 상품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자부심과 성취감을 느껴요.”

그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광고 시장의 흐름을 주목할 것”을 조언했다. “광고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끈기 있는 이들이 이 일에 도전했으면 한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인터렉티브 캠페인 디렉터는 플랫폼과 콘텐츠의 한계를 뛰어넘어 아이디어를 내야 합니다.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계속 고민해야 하죠. 그만큼 해야 할 일도 많지만 분명 매력 있는 직업이 될 겁니다.”



“변화가 두렵지 않는 사람에게 적합한 직업”

Q. 광고 기획자 중에서도 인터렉티브 캠페인 디렉터가 되는 길은?

A
. ‘인터렉티브 캠페인 디렉터’라는 직종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뚜렷한 진로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이 일을 하고 싶다면 광고 회사에 AE로 들어가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어느 곳이든 처음부터 캠페인 디렉터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광고 시장의 흐름에 따라 관련 일을 하는 곳이 생길 것이고 그때 자신의 아이디어로 일을 기획해가면 된다.



Q. 도움이 되는 전공은?

A.
뚜렷한 전공이 필요한 직종은 아니지만 마케팅이나 광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있어야 한다. 아이디어만 있고 지식이 없으면 상대를 설득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콘텐츠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기에 문화 마케팅 분야를 공부한 사람에게 유리하다.



Q. 광고 기획자가 되려는 이들에게 조언 한마디.

A
. 광고 기획자는 무엇보다 융통성이 필요한 직업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거리낌이 없고, 다양한 정보를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책에서 나오는 아이디어가 많다. 나의 경우 하루에 일정 시간은 꼭 비워놓고 자료를 찾거나 아이디어를 이끌어내기 위한 시간으로 삼는다.
[멘토에게 듣는 직업 세계] “광고의 새 지평 인터렉티브 캠페인이 연다”
모그 인터렉티브(Mog Interactive)는 어떤 회사?

2007년 3월 창립된 광고 전문 기업. 인터렉티브 캠페인이라는 새로운 마케팅 방법을 국내 광고 시장에 도입해 지금까지 삼성, 현대, LG, KT 등 다수의 기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캠페인 전략과 기획·진행을 맡아하는 캠페인팀, 특화된 콘텐츠를 제작하는 디자인팀, 인터렉티브 필름팀, 모션아트팀, 아티스트팀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R&D센터가 직접 개발한 자체 서비스 플랫폼인 올포스트, 올쿠폰, 소셜키프트를 통해 모그 인터렉티브가 제작한 콘텐츠와 플랫폼을 동시에 조화시킬 수 있는 부서를 두고 있다.

지난해 이노션과 함께 진행한 KT 광고 아이폰 필름 프로젝트 ‘파란만장’으로 2011 대한민국 광고대상 프로모션 부문 대상을 비롯해 영상 부문, 통합미디어 부문, 신유형 광고 부문 등의 상을 휩쓸었다.


글 김보람 기자 bramvo@hankyung.com
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