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취업난, 등록금 투쟁, 스펙 쌓기, 88만 원 세대… 대한민국 20대 뒤에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말들이다. 반갑지 않은 데다 우울하기까지 하지만 그렇다고 부인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오늘의 20대는 그 어느 세대보다 힘든 시간을 뚫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현실 탓만 하다가는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법. 캠퍼스 잡앤조이가 팔을 걷어붙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난 2월 17일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 국제회의실에서는 각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뜻깊은 자리가 열렸다. 김홍유 경희대 교수와 이동형 런파이프 대표(싸이월드 창업자)가 강의를 한 후 패널 토론이 이어졌다. 청중은 캠퍼스 잡앤조이의 제3기 대학생 기자단 160명. 2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대토론회는 참석자들이 내뿜는 열기로 시종일관 뜨거웠다. 이날의 강의 및 패널 토론을 재구성해 지면으로 중계한다.
진행 : 김상헌 캠퍼스 잡앤조이 편집장
<토론 패널>
김홍유 경희대 교수
이동형 런파이프 대표 (싸이월드 창업자)
류창완 한양대 글로벌기업가센터장
최기원 한양대 취업지원센터장
이민재 고용노동부 청년고용기획과장
유환철 중소기업청 창업벤처국 서기관
원유훤 삼성증권 인사부장
김범진 소셜벤처 ‘시지온’ 대표 (연세대 화학공학 4) 잡 셰어링, 장기적 시각으로 보자
김상헌 : 잡 셰어링(Job sharing) 등 현재 나와 있는 일자리 해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김홍유 : 청년 취업난의 현실적 대안으로 잡 셰어링은 유효하다. 하지만 잡 셰어링을 고민하고 실행해야 할 당사자인 정부나 기업이 단기적인 시각으로 임하는 게 문제다. 그렇다 보니 인턴만 늘어나는 것이다. 정부로선 당장 실업률을 낮출 수 있고, 기업은 세제 감면 혜택을 받으니 안 할 수가 없다. 구직자 입장에선 스펙을 쌓아야 하니 지원한다. 모두가 눈앞의 성과에 매달리다 보니 구조적인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힘을 합치고 양보하면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잡 셰어링 방안을 다듬는다면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다. 잡 셰어링의 성공조건은 바로 ‘상생’이다.
최기원 : 동감이다. 잡 셰어링은 좋은 취지에 비해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어서 현실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대학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정부에선 대학의 구조조정이 많이 진행됐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실업 문제는 심각하다. 게다가 올해부터 특성화 고교에 대한 지원정책 강화로 대학의 취업지원제도 예산이 크게 깎였다. 결국 대졸자 취업난 악화로 이어질 것이다.
유환철 :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아이디어 등을 빼앗는 식의 구조가 심해지고 있다. 잡 셰어링은 이렇게 잘못된 부분의 생산성을 돌려주자는 의미도 갖고 있다. 월급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 월급이 조금 적어지는 대신 나는 그만큼의 내 시간을 갖게 되고, 더불어 남에게 일자리도 줄 수 있다. 조금씩 양보해서 발전적인 제도가 됐으면 한다. 개인적으로는 특허청에서 근무하다 보람 있는 일을 찾아 중소기업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과정에서 ‘남들이 많이 가는 길, 남들이 가고 싶어하는 길을 가는 것이 행복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적이 있다. 결론은 ‘아니다’였다. 인생을 책임져주는 직장은 없다.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김범진 : IT 기업이 갖고 있는 여러 가치 중 자동화 시스템이 있다. 여러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자동화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다. 시지온의 경우 적은 수의 인력으로 똑같은 효율을 내는 것에 관심이 많다. 어떻게 보면 한국 사회가 구조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에 진입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고민해볼 문제다.
원유훤 : 기업의 채용 담당자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여러 기업에 중복 지원하지 말라는 것이다. 학교는 중복 합격 후 포기해도 차점자가 들어올 수 있지만 기업은 그렇지 않다. 여러 곳에 합격한 뒤 마음에 드는 회사를 고르는 행위는 결국 남의 일자리를 뺏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자신의 진로를 명확히 하고 일관성 있게 도전했으면 한다.
류창완 : 기업들은 신입사원의 능력에 불만이 많다. 그래서 연수 등 각종 교육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여유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바로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사원을 원하는 이유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직원을 많이 채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선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대학에서도 대기업이 만족하는 수준의 교육을 해야 한다. 잡 셰어링도 기업 시각에선 답답하게 보일 수 있다. 국가적 공감을 이끌어내지 않으면 제대로 된 잡 셰어링은 힘들 것이다.
기업은 뛰어난 스펙을 가진 사람을 뽑으려는 게 아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진로가 명확하고 그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면 취업에 성공할 수 있다. 스스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찾아보는 게 우선이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
김상헌 : 취업준비생의 대기업 집중 현상이 심하다.
원유훤 : 대기업 선호 인식을 버려야 하는 건 아니다. 사실 업무는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진로다. 예를 들어 취업준비생이 생각하는 금융회사와 실제 금융회사의 모습에는 괴리가 많다. 입사도 힘들지만 이직이 빈번하고 포기하는 이도 부지기수다. 기업은 뛰어난 스펙을 가진 사람을 뽑으려는 게 아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진로가 명확하고 그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면 취업에 성공할 수 있다. 스스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찾아보는 게 우선이다.
최기원 : 학생들 입장에서는 좋은 직장을 구하려는 것이 당연하다. 안정적인 공기업에 가려고 하거나 많은 임금을 받으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미스매치가 심하다. 학생들은 졸업 학년이 돼서야 직업을 선택한다. 준비해놓은 게 없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직업과 진로에 대해 미리 고민하고 능력을 쌓아야 한다. 여기에 정부의 노력이 맞물려야 할 것이다.
김상헌 : 사실 가장 많은 고민을 하는 곳이 정부일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생각하는 취업 문제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창업은 탑 쌓기가 아니라 퍼즐 맞추기
이민재 : 올해 대학으로 편성된 예산은 2조 원 규모다. 이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는 학생들과 고용노동부가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우선 ‘중소기업’이 아닌 ‘괜찮은 기업’을 찾아가도록 해 취업 미스매치를 줄이려고 한다. 또 창업 지원에도 적극 나선다. 2011년에 10개의 대학을 선정해서 창조캠퍼스 사업을 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올해는 24개 대학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정부가 학생들의 밑받침이 돼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이 밖에도 많은 지원 제도가 있다. 제도를 잘 이용하고 잘못된 부분은 지적해줬으면 한다.
김상헌 : 이동형 대표는 싸이월드 창업자로 유명하다. 20대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이동형 : 창업은 취업이 안 되면 도전하는 옵션이 아닌, 준비된 자만 시도할 수 있는 가치다. 작은 것을 발견하는 자세로 시작해야 한다. 현대엔 더 이상 대자원들이 남아 있지 않다. 사람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소자원들을 찾아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창업은 어찌 보면 배에서 바다로 뛰어드는 행위다. 최소한 헤엄을 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꾸준히 만들어 온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김상헌 : 김범진 대표는 대학생 CEO다. 어려운 점은 없나. 김범진 : 벤처회사는 크게 두 가지가 부족하다. 자본과 사람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갖춰지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창업의 단초는 우연히 찾아왔다. 동아리 활동을 하던 친구들끼리 인터넷 악성 댓글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계속 관심을 갖다 보니 관련 수업을 듣게 됐고, 나중엔 우리가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했다. 특히 ‘사람’ 문제는 해결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서로 신뢰를 쌓기까지 2~3년이 걸렸다. 그나마 자본 문제는 중소기업청의 지원정책 등을 활용해 사정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
김상헌 : 대학생 창업은 도전 정신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어떤 점을 기억해야 할까.
이동형 : 창업은 창조가 아니다. 발견이다. 그 이전에 있던 무수한 것들 중에 기회를 찾는 것이다. 무작정 돌아다닌다고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진짜 좋은 것은 찾기 힘든 곳에 있다. 사업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도대체 이 사업이 언제 성공할 것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성공하기 전까지는 내가 성공할지 그렇지 않을지 전혀 알 수 없다. 창업은 탑을 쌓는 게 아니다. 퍼즐을 맞추면서 완성해나가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류창완 : 사업은 만만치 않다. 더구나 대학생 창업자는 기본 소양이나 역량을 체득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 실패 위험이 더 크다. 체계적인 준비를 한 후 창업하는 게 쉽지 않다. 따라서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학에서는 예비 기업가가 갖춰야 할 역량을 가르쳐야 한다. 기업가로서 어떤 태도를 갖춰야 하는지 알려줘야 한다. 진리의 전당이 가르치면 안 될 천박한 지식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최기원 : 솔직히 말해 대학 취업지원 부서에서는 창업을 적극적으로 권하지 않는다. ‘벤처는 벤치’라는 말이 있다. 잘못하면 벤치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동형 대표의 말처럼 준비를 많이 한 사람만이 성공의 밑거름을 깔 수 있다. 창업은 대학생이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대학생이 창업을 하게 도와주기보다 창업을 하기 위한 경험과 기반을 쌓게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김상헌 : 중소기업청이 계획하고 있는 창업 관련 사업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유환철 : 작년에 비해 3배 정도 많은 창업 지원 자금을 마련했다. 기억할 점은, 창업은 일자리의 대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기업과 일자리의 시작이 창업이다. 그래서 중소기업청에서는 실리콘밸리를 벤치마킹했다. 창업 실패의 부담을 정부가 나눠 지는 것이다. 투자해서 성공하면 윈윈(win-win)하는 것이고, 실패하면 그 부담은 정부가 안는다. 실패를 통해서 또 다른 성공을 낳도록 하기 위함이다.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사업은 생각해볼 만한 화두이고 분명 그것을 통해서 모든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믿는다. 창업은 탑 쌓기가 아니라 퍼즐 맞추기
김상헌 : 인생의 선배로서 청년들에게 조언 한마디를 한다면.
김홍유 : 눈높이부터 맞추자. 정부나 기업, 학교, 취업준비생이 취업을 바라보는 시각에 극명한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은 2~3개 기업에 합격해 행복한 고민을 하지만 또 다른 과반수는 미스매치로 인해 고민에 빠진다. 기관들은 하위권 학생들의 눈높이에 초점을 맞추면 취업 문제를 원활히 해결할 수 있다. 청년들은 스스로 기회를 찾아나서는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 기업의 인사과장이나 취업지원관이 여러분의 기회를 대신 찾아주지 않는다.
류창완 : 근본적인 해법은 창직이다. 사업도 다른 모든 것처럼 기본기를 필요로 한다. 마음의 준비와 함께 기본 역량에 대한 준비를 해야만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다. 취업이 안 된다고,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고 무조건 뛰어들어선 곤란하다. 사업을 하는 이들 대부분은 직장에서 일을 배웠거나 직장 주변의 아이템으로 창업했다. ‘청년 창업’에서 ‘청년’이 무조건 20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20대부터 확실하고 탄탄하게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이동형 : 후배들이 여러 가지 사업 아이템을 들고 와서 의견을 물어보면 그냥 해보라고 한다. 사람이 길을 걷다 보면 다리에 근육이 생긴다. 열심히 하다 보면 없었던 것들도 생겨난다는 뜻이다. 나중에는 지팡이도 손에 들려 있고 그러다 보면 생각보다 이 길을 완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선 행동으로 실천하면 그 다음부터는 조금 쉬워진다. 원래 우리의 삶에서 주인이란 없다. 계획하는 사람만이 주인이 될 수 있다. 계획하고 행동했으면 한다. 이민재 : 지난해 청년취업아카데미에 참가했던 한 학생이 기억에 남는다. 아무도 그 학생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열심히 노력해서 결국 원하는 기업에 입사했다. 이렇듯 현장에서 분명한 희망을 보는 경우가 많다. 여러분의 인생도 생각보다 훨씬 다양해질 수 있다. 청년들과 정부가 서로 도와가면서 문제를 해결했으면 한다.
원유훤 : 정답만 말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자기소개서나 면접에서 느낄 수 있다. 자기 이야기가 아닌데, 남의 정답을 내 정답처럼 쓰려고 한다. 이런 사람을 기업이 뽑을 수는 없다. 그 ‘정답’ 의식을 버려야 한다. 자기 안에 있는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때 기업은 한 표를 던진다. 어디선가 유포된 ‘정답’이 아닌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서 스스로를 풍성하게 만들기 바란다. 기업들은 공정하게 많은 준비를 한 이를 뽑는다.
김범진 :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말이 있다. 창업 또한 성공 확률이 낮은 하이 리스크에 해당한다. 하이 리턴을 원한다면 하이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하이 리스크를 진다고 해서 반드시 하이 리턴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슨 일이든 치열하게 임할 수밖에 없다.
최기원 : 10년 후를 디자인하라. 그리고 무모한 도전은 하지 마라. 어떤 직업이 나에게 맞고 행복을 줄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춰라. 그리고 취업이든 창업이든 진입 장벽이 높은 곳을 찾았으면 한다. 진입 장벽이 낮은 곳은 그만큼 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정부, 기업, 청년 모두가 함께 노력해 문제를 해결해나가자. ‘무조건 창업해라’가 아니라 창업을 할 조건부터 마련해야 한다. ‘중소기업에 관심을 가져라’가 아니라 중소기업에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유환철 : 창업에 잘 맞는 사람은 창업을 해야 하고, 취업이 맞는 사람은 기업에 들어가는 게 정답이다. 방식에 얽매일 필요 없다. 정부는 여러분이 어떤 도전을 해도 실패하지 않을 만한 든든한 시스템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글 박수진 기자 sjpark@hankyung.com·박혜인 인턴 기자 pie@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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