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인턴의 현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청년층의 고용 사정은 크게 나빠졌다. 생존의 기로에서 기업들은 정리 해고, 신규 고용 축소를 단행했다. 지속적으로 심화되는 청년층 실업난에 정부는 ‘청년 인턴제’를 도입했다. 정부가 급여의 일부를 보조해 기업들이 인턴을 많이 선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기업 입장에서는 적은 비용으로 인력을 구할 수 있고, 구직자 입장에서는 일자리 탐색이 가능할 뿐 아니라 경력도 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청년 인턴제가 도입된 지 4년째. 초기에는 공공기관 및 대기업 중심으로 시행되던 청년 인턴제가 최근 들어서 중소기업을 포함한 고용시장 전반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2년 청년 인턴 규모는 4만 명. 전년에 비해 8000명 늘어난 수치다. 양이 늘어난 만큼 질도 나아지고 있을까?

캠퍼스 잡앤조이가 청년 인턴 유경험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밝은 목소리보다는 한숨 소리가 컸다.
청년 인턴? 그 시간에 공무원 시험 준비나 할걸
22.1%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11년 10월 청년층 체감 실업률 수치다. 공식적인 실업자뿐 아니라 구직 단념자, 취업준비생 등 ‘사실상 실업자’를 더해 산출한 것으로 2011년 연간 청년층(15~29세) 실업률 7.6%의 3배에 가깝다. 청년층 5명 중 1명꼴로 백수라는 뜻이다.

청년 실업은 그 시기의 경제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청년 실업률은 12.2%로 전년도의 두 배에 근접할 정도로 급격한 상승세를 보였으며,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도 마찬가지로 청년층의 고용 사정은 좋지 않아 2010년 1월에는 10년 만에 10%를 넘기도 했다.

고용 사정이 좋지 않은 시기에는 공통적으로 두 가지 양상이 두드러진다. ‘창업 장려’와 ‘비정규직 증가’가 그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자는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 아래 ‘창직’이라는 새로운 개념까지 등장시켰고, 후자는 인턴십의 확대와 증가로 이어졌다. 기업들은 정규직 채용을 꺼리는 대신 인턴십 비중을 크게 늘렸고, 일부 기업에서는 인턴십을 정규직 채용의 전 단계로 둬 좋은 역량을 보인 일부 인원을 채용하고 있다.

인턴십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실업 대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청년 인턴제’가 대표적이다. 청년층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인턴십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로 청년층에게 직장 경력을 만들어 정규직 취업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실시하는 청년 고용 촉진 지원사업이다. 해당 공공기관 및 기업에 지원금을 줘 인턴 채용 확대를 유도한다.

청년 인턴제는 도입 당시부터 논란이 많았다. 기업은 중장기간 지원자를 직접 평가하면서 좋은 인재를 선발할 수 있고 구직자는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어 서로 윈윈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던 반면, 결론적으로 일자리 창출과 제대로 된 실무 경험 모두 할 수 없다는 비판 여론도 있었다. 정부가 앞장서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무리한 인턴 양산, Win-Win 아닌
Lose-Lose?


청년 인턴으로 모 은행에서 근무했던 K씨는 “시간이 아까웠다”고 운을 뗐다. 그는 금융권에서 대대적으로 청년 인턴을 모집했던 2010년 초에 2개월간 근무했다. 당시 졸업예정자 신분이었던 그는 ‘생계형 인턴’이라기보다 이력서 한 줄을 위해 지원한 케이스다. 그리고 그는 “정말 이력서 한 줄만 얻어 나왔다”고 말했다.

당시 그의 주 업무는 ‘은행 현관 앞에서 인사하기’. 가끔은 은행 이름이 적힌 어깨띠를 매고 은행 밖으로 나가 쓰레기를 줍는 봉사활동도 했다. 일을 배울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배운 것이 없으니 실제 업무에 투입되기 힘들었다. 회의감에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지만 기간을 다 채운 이유는 금융권 인턴십이 쉽게 얻을 수 없는 기회이고, 인턴십 경력 한 줄이면 금융권 취업에 좀 더 수월해질지 모른다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해 하반기 공채 시즌에 그는 줄줄이 낙방했다. 자신이 인턴으로 근무했던 은행에도 지원했지만 서류 전형도 통과하지 못했다. 그는 “개인의 실력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청년 인턴 활동이 특별히 실무 경험과 관계없다는 것은 그쪽(금융권) 인사팀이 더 잘 알지 않았겠느냐”고 이유를 분석했다.

청년 인턴이 실무 경험과 다소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한두 번 제기된 게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초 “젊은 세대는 인턴 근무를 할 때 적절한 업무가 주어지지 않을 경우 실망할 수 있다”며 “커피를 끓여오게 하거나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것”이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문제는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1년 초부터 6개월간 공공기관 청년 인턴으로 근무했던 P씨도 비슷한 케이스다. 첫 출근과 함께 적절한 업무가 주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며칠 동안 인터넷 서핑만 하다 퇴근했다. 단순 업무라도 맡긴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생계형 인턴인 처지라 당장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지만 정규직 채용이 보장된 것이 아니었기에 ‘차라리 공무원 시험 공부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기간을 다 채우지 않은 채 그만뒀다. 그는 “청년 실업률을 낮추려고 청년 인턴을 크게 늘리는 것 같다”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미봉책”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당시 K씨의 주 업무는 ‘은행 현관 앞에서 인사하기’.

가끔은 은행 이름이 적힌 어깨띠를 매고 은행 밖으로 나가 쓰레기를

줍는 ‘봉사활동’도 했다. 일을 배울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배운 것이 없으니 실제 업무에 투입되기 힘들었다.
청년 인턴? 그 시간에 공무원 시험 준비나 할걸
일은 그렇다 치고
보수는?


답답하기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모 카드사에서 대리로 근무하고 있는 K씨는 “인턴에게 어떤 업무를 줘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위에서 인턴이라며 몇 명 내려보낸 적이 있는데 사실 이들이 없어도 업무는 잘 진행되고 있던 터라 시킬 일이 없었다”며 “간단한 엑셀 작업을 시켜도 미덥지 못해 다시 검산하다 보면 또 다른 업무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들에게는 ‘인턴의 할 일을 만들어주는 것도 일’이 돼버린 셈이다.

모든 곳에서 적절한 업무를 배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턴 시작과 함께 중국 무역 관련 프로젝트를 맡은 A씨는 “일 하나는 제대로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정규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업무를 맡고 있으며 주위로부터 “계속 이렇게 일한다면 대리 달아도 되겠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업무에도 성실히 임하고 있다.

그가 받고 있는 한 달 봉급은 법정 최저임금보다 약간 넘는 수준인 80만 원. 세금을 제하고 나면 이보다 더 낮아진다. 인턴이라 어느 정도 낮은 임금은 감수할 수 있지만 업무 강도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비슷한 또래의 신입 정직원들과 하는 일은 비슷하지만 봉급에서 차이가 나다 보니 스스로 위축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정직원 전환이 보장된 것도 아니기에 불안감도 많다. 일에 실수가 많거나 적당히 일하려고 하는 정직원들을 보면 ‘차라리 저 사람들에게 줄 월급으로 나를 정직원 전환시키는 것이 회사에 도움이 될 텐데’라는 생각도 든다. 그는 “정규직 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청년 인턴도 계약직의 일종”이라며 “비슷한 업무 강도라면 최소한 일반 계약직 수준에 맞는 봉급을 줘야 하지 않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생계형 인턴’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J씨도 봉급에 대한 불만은 많았다. 그는 “인턴은 적게 받아도 괜찮다는 인식이 당연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기회비용 측면에서 따지면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는 ‘일종의 리스크’를 안고 가는 셈인데 그 리스크에 대한 보상이 충분히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에 덧붙여 “인턴을 뽑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새 인턴을 고용하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는 이익이 되기 때문에 고용 안정성 측면에서 현재 청년 인턴 제도는 청년 실업 대책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정규직 전환 비율에 대한 규정을 확립해 구직자의 불안을 어느 정도 해소해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정직원 전환이 보장된 것도 아니기에 불안감도 많다.

일에 실수가 많거나 적당히 일하려고 하는 정직원들을 보면

‘차라리 저 사람들에게 줄 월급으로 나를 정직원 전환시키는

것이 회사에 도움이 될 텐데’라는 생각도 든다.
청년 인턴? 그 시간에 공무원 시험 준비나 할걸
글 양충모 기자 gadd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