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경영사상가 구본형


그는 인터뷰 중 ‘밥’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밥이란 먹고사는 문제, 그러니까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단어다. 밥의 대척점에 있는 낱말은 ‘존재’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의해 규정된 것이 아닌 자기 내면에서 원하는 무언가를 따라 살아가는 삶을 뜻한다. 안경 너머 그의 눈은 이 단어들을 꺼낼 때마다 유독 빛났다.

아마도 이 두 단어가 그의 삶을 적확하게 표현하는 키워드이기 때문일 것이다. 실례를 무릅쓰고 이 두 단어를 이용해 그의 삶을 짧은 글로 정리해보면, ‘밥을 위해 애써 억눌렀던 자신의 존재를 마흔세 살에 꺼냈고, 그러자 존재가 명료해지면서 밥도 해결할 수 있었다’ 정도가 될 듯하다.

마흔셋의 나이, 무언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느껴질 때, 그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저술가로 새로운 삶을 그리기 시작했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는 존재와 밥을 모두 얻었다. 그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 변화경영사상가 구본형은?
1954년 충남 공주 출생
1980년 서강대 역사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역사학과 중퇴
한국IBM 입사
1991년 서강대 경영대학원 석사
1991~1996년 IBM 본사 말콤볼드리지 국제심사관
1992년 한국능률협회 선정 제1회 ‘경영혁신대상’ 개인 공로자상
2000년 한국IBM 퇴사
2005년 삼성 SDS e캠퍼스 선정 ‘최고의 강사’
현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소장. 홈페이지 : www.bhgoo.com

저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생각의 나무, 1998)
낯선 곳에서의 아침(생각의 나무, 1999)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휴머니스트, 2001)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김영사, 2001)
내가 직업이다(북스넛, 2003)
나 구본형의 변화 이야기(휴머니스트, 2004)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휴머니스트, 2007)
세월이 젊음에게(청림출판, 2008)
미치지 못해 미칠 것 같은 젊음(뮤진트리, 2011)등 총 19권


그의 명함에는 ‘우리는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들을 돕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보다 정확한 뜻을 알고 싶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자신의 직업인 ‘변화경영사상가’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문장이라고 답했다. 기존에 없던 직업인 ‘변화경영사상가’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고, 그것을 잘 표현해줄 수 있는 슬로건이라는 것이다. 그가 정리한 변화경영사상가는 한마디로 ‘어제보다 나아지려고 하는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 사람’을 뜻한다. 그는 유명 저술가로 책과 칼럼을 쓰고 변화경영에 대해 연구하고 강연하며 사람과 조직이 더 나은 미래를 꾸려나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1954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공주에서 오래 지낸 적은 없다. 초등학교 3학년 이전에는 아버지의 일터가 있었던 부산에서 자랐고 그 이후에는 서울로 올라와 유년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때는 이과를 선택했다. 이유는 한 가지, 이과를 졸업하면 취직이 잘됐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것이 중요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재수생 시절, 그는 자신의 적성이 이과와 맞지 않음을 깨닫고 문과로 진로를 변경했다.

“재수할 때 내가 문과 기질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문과로 바꿨어요. 그게 내 인생에서 잘한 결정 중 하나입니다.”

진로 변경 후 입학한 곳은 서강대 역사학과다. 대학 시절 그는 역사학과 교수를 꿈꿨다. 당시 그의 유일한 꿈이었으며 다른 진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군 제대 후에도 진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이어져 1980년 대학원에 입학했다. 하지만 사건이 터졌다.

“1980년에 광주 민주화 운동이 터졌어요. 지식인 서명 운동 같은 것이 있었는데, 당시 내가 존경하던 스승님이 대표자 서명을 한 후 사라지셨어요. 신군부 눈치 보던 학교가 이 교수님이 학생들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조치한 거죠. 따르던 선생님이 없어지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유학을 가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이번에는 유학 갈 돈이 없더군요. 취직해서 학비를 벌고 그 후에 유학을 가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계기가 특이하듯 취직 스토리도 남다르다. 지금도 다소 그런 경향이 남아 있지만 그 당시에도 역사학과 출신에게 눈길을 주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는 학과 제한이 많은 국내 기업 대신 외국계 기업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사학도가 기업, 하물며 당시 그리 많지도 않았던 외국계 기업에 대한 정보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때 그가 떠올린 것이 ‘전화번호부’였다.

“전화번호부에서 외국 기업들을 쭉 찾았어요. 그리고 있는 돈을 털어서 명함판 사진 100개와 우표 100개를 마련했죠. 그렇게 100군데 기업에 이력서를 보냈어요. 세 곳에서 ‘면접 보러 오라’는 통보를 받았는데, 그중 한 곳이 한국IBM이었습니다.”

그는 한국IBM에 합격했다. 유학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결정한 회사원 생활, 2년 정도 일하려던 계획은 점차 길어져 현실에서는 20년이라는 긴 시간으로 나타났다. 결혼하고 아이도 생기자 먹고사는 문제, 즉 ‘밥걱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유학의 길, 역사학도로서의 꿈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 굶다

직장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마흔세 살이 되던 해, 문득 존재의 문제를 느꼈다. 갑자기 떠오른 것이라기보다 그간 억눌려 있던 것이 분출했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마흔 넘어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느낀 그는 회사에 휴가를 내고 ‘단식’을 하러 떠났다.

“지금까지 성실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마흔 살 중반의 나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인생을 살면서 맞은 몇 군데의 갈림길에서 항상 차선책을 선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몇 번의 차선책을 선택한 결과가 그 당시의 내 모습이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왜 최선이 아닌 차선책을 택했을까 생각해봤더니 ‘밥’ 즉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밥은 해결이 됐지만 내 존재는 채워지지 않은 채로 긴 세월이 흐른 것이죠.”

그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밥 때문에 최선을 선택하지 못했지만 이번만은 최선을 선택해보리라.’ 그 고민에 대한 상징적 행동이 바로 ‘단식’이었다. 지금까지 밥 때문에 최선을 선택하지 못했으니 밥을 굶으면서 최선이 무엇인지 찾아보자는 뜻이었다. 단식을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났을까, 그에게 하고 싶은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글을 쓰는 것.’ 소설가나 기자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회사에서 해왔던 일인 경영혁신, 변화경영 등을 주제로 저술가·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이 분야의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글을 써본 일이 없었으니 시작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금씩 써나갔고 6개월이 지난 후 책 한 권이 탄생했다. 그의 첫 번째 책인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세상에 나온 순간이었다. 때마침 불어닥친 IMF 외환위기 이후의 변화·혁신의 물결과 함께 책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책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고 그는 그간 익숙했던 직장과 결별해 1인 기업가, 변화경영전문가로 탈바꿈했다.

“그때 계획대로 유학을 떠나 역사학 교수가 돼 있는 나,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지금에 다다른 현재의 나 중 어떤 것이 더 괜찮은 삶이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봤습니다. 지금이 좋다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그는 빙긋 웃었다.
10년을 견뎌라

“만일 젊음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한다면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답할 겁니다. 내게 젊음은 방황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래도 젊음으로 돌아간다면, 다른 사람이 가는 길에 합류하지 못했던 것에 불안해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 보폭을 갖고 나의 아젠다를 갖고 살아갈 것 같아요.”

여기까지 말을 마친 그는 조셉 캠벨이라는 미국 신화종교학자의 이름을 꺼냈다. 원래 영문학 전공이었던 그는 영문학 박사 과정 도중 신화학에 깊게 매료돼 그간 공부했던 영문학을 그만두고 신화학으로 전과, 세계적인 신화종교학자가 된 인물이다.

“조셉 캠벨은 영문학을 그만둔 후 우드스탁이라는 마을에서 5년 정도 지냈다고 합니다.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최소한의 일을 하면서 신화 관련 책만 봤다고 해요. 옆에서 보는 사람은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조금만 더 하면 박사 학위를 손에 넣을 수 있는데 시골에 처박혀서 책이나 보고 있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세계적인 신화학자가 된 후 그 시절을 ‘내가 신화학자로서 배워야 할 기초를 닦았던 시기’라고 회상했다더군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깊게 공부하고 성찰한 겁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조셉 캠벨의 5년과 같은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이 조금 후회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면서 젊은 사람들에게 당장의 현실에 너무 매달리지 말 것을 주문했다. 인생을 길게 살필 수 있는 지혜를 가지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남들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지 말고 모험을 하라는 조언이 뒤이었다. 젊음에게는 실수할 권리가 있는 법, 기성세대가 닦아놓은 길을 걷기보다는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아가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삶은 필연적으로 외로움이 뒤따른다. 그리고 가난하다. 사회에서 인정받기도 힘들다. ‘이 길이 정말 내 길이 맞을까’라는 의문에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젊은 세대가 자신의 길을 가지 않고 타인에 의해 규정된 삶을 좇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그는 ‘10년’이라는 기간을 이야기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이 그 분야의 대가로 자리하는 데 걸린 시간을 조사했더니 10년이라는 기간이 나오더군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밥’까지 해결하려면 10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야 합니다. 그 기간 동안 부단히 자신을 갈고닦아야 해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 만큼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게 하는 무언가를 찾아야 합니다. 바로 ‘내면적 보상’이죠.”

내면적 보상이란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노력 속에서 발생하는 즐거움이다. 그는 즐거움이 이어지면 외로움, 가난 같은 어려움을 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두 가지 중요한 물음
‘하고 싶은 것’&‘잘할 수 있는 것’

하지만 여전히 망설여진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기에 어느 길로 가야 할지조차 가늠하기 힘들다. 그의 막내딸도 그렇다고 한다.

“막내딸 아이에게 물어봤어요.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자신도 모르겠다고 답하더군요. 그래서 일단 취직해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단, 그 일에 매몰되지 말고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꾸준히 찾으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딸이 이 일도 해보고 저 일도 해보면서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좁혀 나가길 원했다. 충분히 방황하되 ‘인생을 바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인생의 중요한 물음 두 가지는 절대 잊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나 덧붙여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사람과 사회에 도움을 주는 것이 되길 바랐다. 자신의 딸에게 전한 당부의 말이지만 기자에게는 이 시대의 모든 청춘에게 그가 전하는 메시지처럼 들렸다.

인터뷰 마지막 질문 ‘인간 구본형이 살아가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장면’이라 답했다.

“문득 지난 세월을 반추해보니 몇몇 순간의 기억들이 떠오르더군요.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닌 것임에도 삶의 기쁨을 줬던 장면들이었습니다. 아마 그런 장면을 많이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살아가는 이유 혹은 의미인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시처럼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요. 즐겁고 행복한 순간을 많이 만드는 것이 시처럼 사는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을 위한 구본형의 책 한 권
‘미치지 못해 미칠 것 같은 젊음’

“나는 낮에도 꿈을 꿀 것이다. 내 꿈은 단순한 희망들과는 다르다. 나는 내 꿈을 찾아낼 것이고, 여기에 나를 바칠 것이다. 이 노트는 앞으로 내 꿈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 책 속에서

어쩌면 이날의 인터뷰는 이 책의 축약이라고 할 수 있다. 10여 년 전에 출간된 ‘사자같이 젊은 놈들’의 개정판으로, 저마다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을 안고 있는 일곱 명의 젊은이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글 양충모 기자 gaddjun@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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