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돌아가는’ 취업의 길


꽉 막힌 채용시장에도 돌파구는 있다. 때로는 인턴십으로, 때로는 중소기업 입사로, ‘우회 전략’을 펼쳐 자신만의 커리어를 구축한 이들의 이야기다. 내 일에 대한 확신과 스스로 진로를 개척하겠다는 패기는 우회 전략 성공의 필요충분조건. 이들이 전하는 ‘현명한 우회전략’을 만나보자.
우회구간 A
인턴십


“적성 확인하고 취업까지 골인”

3년차 취업준비생 김지민(27·가명) 씨의 가장 큰 고민은 나이다. 서울 시내 중상위권 대학을 졸업한 그는 스물다섯 살에 본격적으로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첫 해엔 대기업에만 원서를 냈다. “기왕이면 좋은 곳에서 일을 시작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취업 재수’를 하게 된 이듬해엔 중소기업에도 지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높이까지 낮추진 못했다. 중소기업 한 곳에서 연락이 왔지만 끝내 입사를 포기했다. “나보다 스펙이 낮은 친구들이 대기업에 들어가는 걸 보니 자존심이 상했다”고 했다.

다시 30여 개 기업에 입사지원서를 내고 적지 않은 곳에서 면접을 봤지만 최종 결과는 탈락. 상반기 공채를 준비하며 취업스터디를 찾고 있다는 그는 “이제는 나이 어린 후배들과도 경쟁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고 털어놓았다.

뜻하지 않게 ‘취업 장수생’의 길로 들어서게 된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김 씨와 같은 고민을 토로한다. 공백 기간이 길어질수록 취업이 어려워진다는 것. 게다가 올해는 대졸 신입 채용 규모가 감소할 것으로 보여 취업시장의 체감온도는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 이런 경우 작은 기회부터 살려 차근차근 목표를 이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비교적 경쟁률이 낮은 인턴십을 통해 일을 시작한 뒤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중소기업에 들어가 경력을 먼저 쌓은 뒤 원하던 회사로 이직하는 일종의 ‘우회 전략’이다.



“일에 확신 있다면 대기업 아니어도 비전 보여”

이달 말 서울 시내 K대학을 졸업하는 정혜림(26) 씨. 그는 요즘 국내 한 홍보대행사에서 신입사원 연수를 받고 있다. 다른 동기들처럼 서류 전형과 면접 전형을 통과해 입사했지만 사실 그는 공채가 진행될 때부터 그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다.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인턴십을 시작할 때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규직 전환이 보장되는 자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3개월 정도 일했을 때 본부장이 “신입사원 공채가 있으니 지원해보라”고 권했다. “인턴으로 일하며 홍보 쪽 일이 잘 맞는다는 것을 느꼈다”는 그는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인턴으로 일하던 동기 중 그를 포함한 5명이 신입사원으로 최종 합격했다.

정 씨처럼 자신이 입사하려는 회사에서 인턴십을 하다가 정규직으로 입사하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상시로 채용을 진행하는 중소기업일수록 그 빈도는 더 높아진다. 지난해 2월 취업포털 사람인의 조사에 따르면 인턴을 채용하는 중소기업 10곳 중 9곳이 “정규직 전환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신입사원 채용의 전 단계로 인턴십을 활용하며 직무 역량을 검증하는 것이다.

정 씨는 “졸업을 앞두고 일단 홍보 업무가 나와 맞는지 보고 싶어서 지원했는데 일을 할수록 이쪽 일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전문 역량을 쌓아서 나중엔 관심 분야인 스포츠 홍보 일을 하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며 “굳이 이름 있는 기업이 아니더라도 일을 하면서 자기 적성을 찾을 수 있다면 어디든 경험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우회구간 B
직무 전환

“냉철한 자기분석으로 진짜 내 일 찾다”

“진로 개척에 정답은 없다. 현업 거치며 목표 수정”
인턴십의 가장 큰 장점은 일을 하면서 그 분야의 일이 나와 맞는지의 여부를 가늠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씨처럼 일과 적성이 일치한 경우 빠르게 진로를 결정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 경험은 입사 과정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지난 2009년 서울 시내 중상위권 대학을 졸업한 조성현(30) 씨는 현재 직장에 입성하기까지 인턴십만 네 차례 거쳤다. 통신 분야의 대기업, IPTV 분야의 공공기관 등 다양한 곳에서 일했지만 대부분 정규직 전환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는 “인턴으로 일하면서 정규직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시기엔 힘들었다”면서도 “인턴을 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이 지금 일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방송 통신 산업과 관련된 일을 계속 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그 분야에서 성장해가고 싶다는 목표를 갖게 됐다는 것.

인턴십을 하면서 그에게 생긴 또 하나의 변화는 ‘홍보 직군’에 대한 고집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홍보 관련 부서는 수요가 적을뿐더러 실제로 일을 해보니 생각과 다른 부분이 많았다는 것. 조 씨는 “일을 하기 전에는 마치 상상연애를 하듯 일에 대한 환상만 키웠었는데 현장에서 선배들의 모습을 직접 보면서 내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게 됐고 커리어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마지막 인턴십을 마친 뒤 전파통신 분야의 한 협회에 들어간 그는 홍보직군이 아닌 관리직군으로 일을 시작했다. 입사 2년차인 지금은 회사 내에서 단독 팀을 맡아 관리할 정도로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올해 채용시장의 주요 이슈 중 하나는 조 씨와 같은 경력직 신입들의 약진이다. 평균 구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동안 인턴십을 하거나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뒤 목표했던 회사에 다시 신입으로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졸업 후 오랜 시간이 지난 취업 장수생들의 경우 이 기간을 어떻게 활용했는지가 입사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취업전문가들은 “졸업 후 1년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경우엔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신길자 취업컨설턴트는 “1년 반 이상 공백기가 있을 경우 다른 곳에서 인턴을 하거나 중소기업에 입사하는 우회 전략을 고민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직무만 일치한다면 같은 기업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조언이다.



우회구간 C
중견기업

“직무에 뜻 있다면 성장 기회 열려 있어”

“회사 이름보다 일을 따라가니 길 보이더라”

졸업 후 중견 컨설팅 기업에서 2년간 일하다가 지난해 전자산업 분야의 대기업 전략기획팀으로 자리를 옮긴 김영현(29·가명) 씨 역시 “한 분야에서 일하겠다는 목표가 확고하다면 조금 규모가 작은 회사라도 먼저 경험해보는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인턴십을 통해 컨설팅 일을 시작했다. 컨설팅 업계에서는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그는 “컨설팅 쪽은 업종 자체에 들어가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어디서든 일을 시작하자는 생각이었다”며 “아마 처음부터 맥킨지 같은 큰 회사에 들어가려고 했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담당한 업무는 국내 기업들의 중장기 전략을 세우는 것이었다. 일을 배우는 신입사원 시절은 “열두 시 넘어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었을 정도로 업무 강도가 높았다. 그는 “업종의 특성상 단기간에 결과물을 도출해내야 하기에 야근이 많았다”며 “짧은 시간에 축약적으로 일을 배웠던 경험이 지금 일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2년간 쉴 새 없이 일을 하고 나니 기회가 찾아왔다. 같은 부서에서 일하다 다른 기업으로 이직했던 선배가 새로운 일자리를 추천해준 것. 평소 그를 눈여겨봤던 선배의 도움으로 현재 그는 국내 대기업 전략기획팀으로 자리를 옮겨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중견기업에서 일하다가 몇 년 뒤 근무 환경이 좋은 대기업에 경력직으로 ‘점프’하는 김 씨와 같은 경우는 우회 전략의 이상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취업전문가들은 우회 전략을 마냥 ‘쉽게 천천히 가는 길’로 생각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누구나 김 씨처럼 이직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신길자 취업컨설턴트는 “직무나 산업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회사의 인지도나 연봉이 가장 중요한 지원자들이라면 우회 전략을 권하기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애초에 ‘대기업 입사’가 목표인 이들이라면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에 입사하더라도 만족하지 못하고 조기 퇴사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윤호상 인사PR연구소 소장 역시 “진로에 대한 고민 없이 무작정 일을 시작했다가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생기면 1~2년도 채우지 못하고 일을 그만둬버리는 현상이 생긴다”며 “이런 경우 경력직으로의 이직도 쉽지 않다”고 충고했다.

신길자 취업컨설턴트는 “우회 전략이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경우는 일에 대한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을 때”라며 “이직에 성공한 이들은 대부분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일을 하며 경력을 쌓는 동시에 부족한 면을 보완하는 과정을 보낸다”고 강조했다.



“이런 사람이라면 우회 전략 고민해보세요”
- 신길자 취업컨설턴트의 조언

첫째, 일하고 싶은 분야와 직무가 명확한 사람

자신의 직업관을 냉철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만일 일보다 회사의 인지도나 연봉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우회 전략을 쓰더라도 그곳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 직무에 대한 열정이 강한 사람들은 장기적으로 한 분야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목표의식이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에 먼저 입사한 뒤 3~5년 후 대기업으로의 이직을 시도해볼 수 있다.

둘째, 실질적으로 스펙이 부족한 사람

단기간에 쌓을 수 있는 스펙이라면 모르지만 학력 같은 스펙은 단기간에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이런 경우라면 남들과 비슷한 스펙을 쌓기 보다는 남들과 다른 경력으로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유리하다. IT 분야 대기업의 인턴십에 떨어지고 나서 협력업체에 들어가 일한 경험을 면접에서 어필해 애사심을 인정받았던 신입사원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협력업체가 아니더라도 관련 분야 업체에 들어가 근무하면서 경력과 인맥을 쌓을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할 것.

셋째, 공백기간이 너무 길어진 사람

요즘 취업이 어렵다는 것은 어느 기업에서나 알고 있는 바. 졸업 후 6개월 정도의 공백은 인사팀에서도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는 추세다. 취업 준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졸업 후 1년 이상을 아무 경험도 쌓지 않고 영어 공부만 해왔다면 취업에 불리하다. 6개월 정도 노력해보고 결실이 좋지 않다면 현장 경험을 병행할 것을 권한다.


글 김보람 기자 bramv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