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탄 풍경


자전거 탄 풍경(약칭‘자탄풍’)

자전거 탄 풍경은 송봉주, 김형섭, 강인봉(왼쪽부터) 3인으로 이뤄진 포크 그룹이다. 멤버 모두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다. 2001년 결성됐으며 현재까지 3개의 정규 앨범과 1개의 프로젝트 앨범을 발표했다. 2004년부터 ‘풍경’과 ‘나무 자전거’로 나누어 활동하기도 했으나 2011년 7년 만에 재결합했다. 대표곡은 ‘너에게 난 나에게 넌’ ‘그렇게 너를 사랑해’ ‘또 다른 사랑이 찾아와도’ 등이다.

자전거 탄 풍경(이하 자탄풍)과의 만남은 12월 초 서울 도곡동 EBS 사옥에서 이뤄졌다. 인터뷰는 편안했다. 인사를 나눈 후 처음 들은 말이 “기자님 입으신 코트 예쁘네요. 어디서 사셨어요? 나도 사야지”였다. 순간 웃음이 터져나왔다. 기자가 편안한 분위기를 이끌어야 했을 텐데 그들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었다.

‘변하지 말아야 할 것과 변해야 할 것을 잘 아는 그룹’ 자탄풍 홈페이지에 적혀 있는 그들의 소개 문구다. 인터뷰 역시 이 문구와 딱 맞았다. 그들만의 스타일이 있지만 정체되지 않았다. 밝고 아름답다. 음악과 사람이 모두 그렇다.
[스타와 커피 한 잔]세 아저씨가 들려주는 ‘맛있는 청국장’ 같은 음악
신문 기사를 봤는데 굉장히 크게 다치셨었다고….

강인봉
다칠 때는 그랬는데 지나고 나니 괜찮아졌습니다. 예전이었다면 못 걷거나 한쪽 다리가 짧아질 수도 있는 큰 사고였는데, 지금은 의학 기술이 발달해서 정상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할 수 있다고 해요.

(강인봉은 2011년 4월 초, 방송 녹화를 위해 무대에 오르다 발을 헛디뎌 추락, 중상을 입었다. 현재는 목발을 짚지만 활동에는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회복됐다.)



아직 완벽하게 회복하지 않았음에도 공연하고 계시잖아요.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강하신 것 같습니다. 뮤지션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김형섭
친형이 기타를 쳐서 그런지 음악과는 어렸을 때부터 친했어요. 대학 때는 통기타 동아리에 들어갔죠. 동아리 이름이 ‘우리 또래’였는데, 선배들이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해줬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음악이 내 길이라고 느껴졌죠. 교내 ‘백마 가요제’에 나갔는데 거기에서 입상한 친구들끼리 ‘여행 스케치’라는 팀을 만들었어요.

송봉주 저는 사실 음악 엔지니어가 하고 싶었어요. 시험을 봐서 음반 회사에 들어갔죠. 그곳에서 포크 선배들을 만나서 곡을 쓰고 편곡을 하다 보니까 공연 게스트까지 하게 됐어요. 그걸 본 제작자가 앨범을 만들자는 제안을 해오더라고요.

강인봉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어요. 열 살 때부터 가족 밴드인 ‘작은별가족’으로 활동도 했었습니다. 철들기 전부터 음악을 하고 있었던 거죠.



그럼 ‘음악이 내 길이 아니다’라고 느꼈던 적은 없었나요?

강인봉 물론 있었죠. 군대 가기 전에 그랬어요. 음악이 좋긴 했지만 직업이 아니라 취미로 즐기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학 졸업하고 나서는 ‘제일기획’에서 PD로 5~6년 정도 다니면서 일하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안 되겠다, 음악을 해야겠다’고 느꼈죠.



다시 음악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강인봉 제일기획이 안정된 회사잖아요. 오늘 보니까 직원 연봉이 9000만 원이 넘는다는 뉴스도 있더군요. 저는 지금 그만큼 벌진 못해요. 하지만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배짱 편하게 사는 것만큼 행복한 삶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취미로 할 것인가, 프로가 될 것인가 고민하고 있을 때 에릭 클랩튼 내한 공연을 봤는데 그때 ‘음악이 내 길이다’라는 직감이 오더군요.



서로 다른 음악을 하던 분들이 모여서 자탄풍이 됐잖아요, 어떤 면이 끌렸나요?

강인봉 서로 성향이 많이 달랐어요. 그런 만큼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거죠.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희는 성격도 다르고 목소리도 안 어울려요. 처음 연습하면서 ‘팀이 성립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 맞는 블록들이었죠. 하지만 어느 정도 블록을 맞춰서 건물을 지어보니 세상에 없는 건물이 된 거예요. 사람들이 좋다 나쁘다는 판단을 못할 정도로. 어느 일본인 프로듀서가 저희 음악을 듣더니 “화음이 맞긴 맞는데 이런 식으로 맞는 것은 처음”이라는 말을 하더군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면서 우리 색깔을 만들 수 있었어요. 자화자찬일 수도 있지만 아무도 따라하지 못할 음악을 할 수 있게 된 거죠.



자탄풍의 노래는 자탄풍이 가장 잘할 수 있다는 뜻이네요.

강인봉
어느 새 그것을 이룬 것 같아요. 자탄풍만의 음악을 만들어낸 거죠. 그걸 누가 인정해주느냐 않느냐는 이제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이 중요하죠.

송봉주 처음에는 서로 성향이 다른 게 굉장히 불편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매우 감사하고 있죠. 다르니까 더 재미있고 좋아요.

김형섭 초창기에는 ‘서로 다르다’라는 것을 ‘틀렸다’라고 생각했어요. 나와 다름이 틀렸다고 생각했고 거기서 불편함이 느껴지고 조화되지 못했죠. 지금은 다르다는 것을 서로 인정해요. ‘나와 다른 것이 그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송봉주 우리가 다 같은 성향이었으면 굉장히 지루한 음악을 하고 있었을 거예요.



자신만의 스타일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반대로 ‘고정된 혹은 정체된 것’이 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강인봉 그렇죠. 하지만 변화를 추구하려고 노력해요. 사실 ‘변화’라는 키워드가 저희로서도 굉장히 고민스러운 부분 중 하나예요. 저희가 줄 수 있는 변화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어느 선까지 변화를 줄 수 있느냐의 문제죠. 자신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조류를 받아들이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청국장 잘하는 음식점이라면 100년이 지나도 청국장을 잘해줘야죠. 밑반찬 몇 개 바뀔 수 있겠지만 메인은 청국장이니까요.



자탄풍 음악의 지향점은요?

강인봉
저희 음악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다면 그냥 있으나 마나 한 음악이었으면 좋겠어요. 해악이 되는 음악은 하고 싶지 않아요.

송봉주 우리들의 이야기,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화려한 얘깃거리나 이슈가 되는 사건을 말하는 것보다는….



자탄풍 자랑을 해주신다면요?

김형섭 일단 저희 같은 팀을 본 적이 없어요. 같은 청국장이라도 저희같이 특이한 청국장을 만드는 팀은 없는 것 같아요. 같은 청국장 내에서는 가장 맛있고 독특한 청국장을 만들 자신이 있어요.

강인봉 끈질기게 오래 버틸 수 있는 힘이 자랑인 것 같아요. 기획사 팀들이 아니면 음악만으로 생활하기 힘든 현실이에요. 10년 넘게 음악에만 전념하면서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 자랑입니다.



젊은 세대를 위한 조언 부탁드릴게요.

강인봉
뭐가 됐건 뿌리를 뽑을 때까지 해보길 권해요. 요즘에는 이것저것 하는 것이 트렌드 같은데, 어떤 분야든 10년 20년 하면 전문가가 되지 않겠어요? 그것이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되고요.

송봉주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인터뷰 때마다 마지막으로 드리는 질문이에요. 행복하신가요.

강인봉 행복합니다. 세상에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죠. 생각하기 나름이기도 해요. 지금 상태를 긍정적으로 보면 행복한 것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끝도 없이 불행할 수도 있죠.

송봉주 저는 행복이 뭔지 몰랐어요. 피곤하고 짜증나고 그랬는데, 지금은 굉장히 행복해요. 편안해요. 술이 즐거워서 마시는 술로 변했어요. 작은 것에 감사하고 행복해하면 10가지의 또 다른 행복한 것이 생겨요. 가진 것에 감사하면 행복해집니다.

김형섭 답을 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무궁무진하게 고민하면서 답을 구하는 일이 행복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 역시 행복합니다.


글 양충모 기자 gaddjun@hankyung.com│사진제공 윈원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