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 좇다 보니 백전백승이더라


“취업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글쎄요. 별다른 준비를 안 한 것 같네요.”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얘기인가. 고연봉 직종으로 소문난 정유사. 그 좁은 문을 뚫고 들어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가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데!

기자를 당황케 한 주인공, 김민철 씨의 이력을 한번 살펴보자. SKY 출신에 학점도 좋은 편이다. 인턴십 경험도 있고 봉사활동도 했다. 대학생 기자 라는 특이한 경력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스펙이 아닌 즐기며 사는 삶 그 자체였다.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처럼 즐거운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 경쟁력이라는 보너스가 붙었다.
[취업문 이렇게 뚫었어요]스펙을 위한 스펙 NO!
GS칼텍스김민철 씨
* 김민철 씨는?
입사 2010년 12월 20일
직무 GS칼텍스 소매기획팀
학력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학점 3.9점(4.5 만점)
토익 855점
군대 특수전사령부
인턴십 GS칼텍스
자격증 태권도 2단, 합기도 2단, 검도 1단, 특공무술 1단, 스킨스쿠버 다이빙, 윈드서핑 등
기타 활동 조선일보·중앙일보 대학생 기자


GS칼렉스 인사팀에서 인터뷰이로 적극 추천한 신입사원 김민철 씨를 서울 역삼동 GS칼텍스 본사에서 만났다.

“제가 할 말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겸연쩍은 듯 얘기를 꺼내는 김 씨는 첫 인상부터 유쾌한 느낌을 주었다. 시종일관 잘 웃어서 주변 사람들까지 기분 좋게 만든다..

“사람들을 만나는 걸 정말 좋아했어요. 대학 새내기 때 학교 총장님이 ‘대학 시절에는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는 체력을 길러야 한다’며 ‘사람도 많이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제 대학 생활의 큰 지침이 됐어요. 정말 그대로 살았거든요.”

군대에 가기 전까지 2년간 눈에 보이는 활동은 거의 다 했다고 한다. “금융권에 관심은 없었지만 은행 홍보대사를 하고, 아프리카 박물관에서 도록도 만들고, 문화원에서 장애인 안내하는 봉사활동도 기획하고, 중국에 태권도 시범도 다녀왔어요. 활동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또 다른 활동을 소개시켜 주기도 하고, 자체적으로 모임을 많이 만들어서 꾸준히 연락도 했어요. 모임에선 거의 제가 대표를 했던 것 같아요.”

리더십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실제로 리더가 돼보는 것. 김 씨는 회사 입사 동기 대표를 비롯해 현재 20여 개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더 많은 것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대표가 좋더라고요. 조선일보에서 대학생 기자를 할 때도 대표를 하니 사장님을 직접 옆에서 볼 수 있었어요. 책임감도 더 생기고요.”

군 제대 후에는 기자 지망생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두 개 신문사에서 대학생 기자를 하며 취재의 재미를 만끽했다고.

“일부러 힘든 취재를 자처했어요. 체력이 좋아서 현장에서 뛰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어요. 불법체류자, 일용직 노동자, 촛불시위 현장, 새벽시장 등을 찾았고 취재도 잘했던 것 같아요. 남들이 기사 한 개도 못 쓸 때 저는 6~7개씩 쓰곤 했어요.”

대학 4학년 때도 오로지 언론사 입사만 꿈꿨다. 김 씨에게 대기업 취업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가 매진했던 것은 운동과 신문 읽기 단 두 가지.

“친구들이 너처럼 하면 사법고시를 2년 만에 붙겠다고 할 정도로 도서관에 출석 도장을 찍었어요. 8시 이전에 가서 신문 두 개를 꼼꼼히 보고 필사도 했고요. 하루에 두 시간씩은 꼭 운동을 했어요.”

그렇게 한 방송사에 신입 기자로 입사를 했다.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지만 문제는 꿈꿨던 일이 생각과는 너무 달랐다는 것.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다르더라고요. 운동할 시간도 없이 바쁘고, 문화도 맞지 않아서 고민 끝에 사직서를 제출했어요.”

입사 3개월 만에 다시 취업준비생으로 돌아온 김 씨.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그는 4학년 2학기 재학생 신분이었다. 경찰서를 도는 수습 생활을 하면서 마지막 학기에 F학점을 받아 졸업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재학생으로서 다시 원점에서 취업을 생각할 수 있었어요. 여름방학 때 GS칼텍스 인턴십을 하고, 곧바로 취업 원서를 넣기 시작했어요.”

당시 김 씨에겐 이렇다 할 토익 점수도 없었고 자격증은 운동 관련 자격증만 가지고 있었다. 기자 준비만 하다가 대기업에 취업하는 일이 불안하진 않았을까.

“이상하게 걱정이 없었어요. 스펙은 부족할지 몰라도 스토리가 많다고 생각했고요. 기자만큼은 아니어도 평균 이상은 글을 쓸 줄 알았고 신문을 열심히 읽어서 똑똑하다고 생각했어요.”

서류 전형에서는 최대한 솔직하게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기업 입사에 큰 관심이 없었다는 것도 밝혔다. 면접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왜 지원했느냐고 물으면 ‘기업에 대해 잘 모른다’고 시작을 했어요.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을 예로 들며 어떤 일이든 닥치면 다 열심히 잘한다고 강조했어요. 특전사로 군 생활을 하면서 잠을 쪼개 공부했던 것, 서울 시내 경찰서를 돌며 하루 4시간씩 잤던 것 등을 얘기했죠.”

놀랍게도 결과는 대성공. 20여 개 기업에 원서를 넣었는데 단 한 군데를 제외하고 모두 합격했다고 한다. 심지어 전혀 관심이 없었던 금융권에서조차 러브콜을 보내왔다고.
[취업문 이렇게 뚫었어요]스펙을 위한 스펙 NO!
“신입사원에겐 전문성을 바라는 게 아니니까 가능성에 대해 어필하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취업을 목적으로 스펙을 쌓은 적은 없어요. 그냥 어떤 분야든 하고 싶은 일을 했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즐겁게 생활하다 보니 그게 다 스토리가 됐던 것 같아요. 결국은 기본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취업 성공 후, 학교 게시판에 후배들에게 글을 한 편 남겼다. 높은 조회 수와 공감 댓글을 받았다는 그 글의 한 토막을 소개한다.

“스펙은 영어 점수 기본만 만들고, 신문 열심히 읽고 나머지는 대학 생활을 즐겁게 하세요. 취업에 얽매여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운동 열심히 하고 긍정적으로 성격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해요. 스스로 자신감이 있어야 면접에서도 성공해요. 회사에서는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을 뽑는 거지 똑똑한 사람을 뽑는 게 아니에요. 한두 번 떨어졌다고 주눅들 필요 없습니다. 제 말이 100% 정답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 한량이라 행복해요. 행복했었고요.”


글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