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보는 스포츠 영웅 이야기

[Milestone] 순박한 그, 야구장에선 ‘헐크’였다
컬러 TV가 보급된 80년대,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지금의 눈으로 보면 조악하기 그지없지만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외화 시리즈가 있었다.

평소에는 ‘이보다 더 훈남일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멋지고 순수한 닥터 데이빗 브루스 배너가 초록 괴물인 ‘헐크’로 변신해 악당을 쳐부순다는 권선징악적 주제를 담은 드라마다.

컬러 TV 덕에 히트 친 것은 ‘두 얼굴의 사나이’ 외에도 ‘야구’가 있다. 1982년 프로 출범과 함께 TV에서는 프로야구를 연신 중계했다. 자연스레 동네 아저씨들의 술자리 주제도 정치에서 야구로 옮겨갔고 야구 선수들은 스타 중의 스타로 발돋움했다.

당시 삼성 라이온스의 톱스타는 단연 이만수였다. 경기장 밖에서는 순박하고 사람 좋은 닥터 데이빗 브루스 배너였지만 경기장에만 들어서면 무서운 타자로 변신해 홈런을 펑펑 쳐댄 그에게 팬들은 ‘헐크’라는 애칭을 붙였다. 이 별명은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의 이름 앞에 붙는다.


1 프로야구 사상 첫 안타·첫 홈런·첫 타점
[Milestone] 순박한 그, 야구장에선 ‘헐크’였다
1982년 3월 27일,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시구에 이어 한국 프로야구 첫 번째 경기인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의 대결이 펼쳐졌다.

1회 초, 4번 타자 이만수가 첫 타석에 들어섰다. 상대 투수는 이길환. 주자는 1루수 실책으로 출루한 함학수였다. 이만수의 스윙은 ‘딱’ 소리와 함께 2루타를 만들어냈고 함학수는 홈인.

이만수는 첫 타석에서 프로야구 첫 안타와 첫 타점의 주인공이 됐다. 이어진 5회 초, 세 번째 타석에 들어선 이만수는 또 하나의 깨지지 않을 기록을 만들어냈다. 여전히 마운드에 있었던 이길환을 상대로 좌월 솔로 홈런을 쳐낸 것. 프로야구 사상 첫 홈런이다. 이만수라는 친근한 이름을 공포의 ‘헐크’ 타자로 각인시킨 순간이었다.


3 영광의 트리플 크라운

이만수의 최고 시즌을 꼽으라면 1984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해의 이만수는 헐크 본능을 한반도 전역에 떨쳤다.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기록이 바로 ‘트리플 크라운’이다. 트리플 크라운이란 타율-홈런-타점의 공격 세 부문을 모두 석권하는 것이다. 30년 프로야구 역사에서 단 3회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이 기록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보여주는 방증이다.

이만수는 타율 0.340, 홈런 23개, 타점 80점의 기록으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트리플 크라운을 따냈다. 요즘의 시선으로 보면 홈런과 타점이 그리 높지 않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한 시즌 100경기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대단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또 체력 소모가 많은 탓에 출장 기회가 다른 포지션보다 적은 포수가 트리플 크라운을 따낸 것은 140여 년 역사의 미국 메이저리그에도 없는 기록이다.

"만수 왔습니다"
(대구=연합뉴스) 이재혁 기자 = 은퇴 후 10년만에 SK의 수석코치로 대구구장을 밟은 이만수가 경기 종료 후 열화와 같은 고향 팬들의 환호에 모자를 벗고 인사하고 있다.
yij@yna.co.kr
(끝)
"만수 왔습니다" (대구=연합뉴스) 이재혁 기자 = 은퇴 후 10년만에 SK의 수석코치로 대구구장을 밟은 이만수가 경기 종료 후 열화와 같은 고향 팬들의 환호에 모자를 벗고 인사하고 있다. yij@yna.co.kr (끝)
22 영원히 빛날 그의 백넘버

2003년 7월 3일은 이만수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당시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불펜 포수코치로 재직 중이던 그에게 삼성 라이온즈가 뒤늦게 영구결번을 제정, 축하 행사를 열었던 것. 그의 현역 시절 백넘버였던 22번은 앞으로 삼성 라이온즈 소속 선수 그 누구도 사용할 수 없다.

현역 시절의 이만수가 한국 야구사에 남긴 족적은 쉽사리 잊혀지기 힘들다. 통산 1449게임에 출장해 5034타석, 625득점, 1276안타, 252홈런, 861타점, 통산 타율 0.296을 거뒀다. 20세기 최고의 타자로 그의 이름이 거론되는 이유다. 공격 부문에 가려 수비 능력은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그의 통산 도루 저지율이 0.380(744회 허용, 456회 저지)로 역대 6위인 것을 보면 현역 시절 ‘안방마님(포수)’역할도 톡톡히 해냈음을 알 수 있다.

글 양충모 기자 gaddjun@hankyung.com·@herejun(Twitter) 사진 한국경제신문DB·삼성라이온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