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_손석호 바리엔유 대표-창업동아리연합 PEUM

지하 창고를 개조해 만든 사무실. 전등 밑엔 옷가지가 수북이 쌓여 있고, 그 앞에 열 명 남짓한 직원이 둘러앉았다.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렸다. 밀린 배송 문의 전화다. 뻣뻣하게 굳어가는 허리를 펼 새도 없이 옷을 접어 박스 안에 담고 또 담았다. 뒷벽에 붙여둔 종이 위에 꾹꾹 눌러 쓴 글자들이 소리 없이 외치고 있었다. ‘우리의 희망은 빛을 보는 것이다.’

바리엔유 손석호 대표가 기억하는 인터넷 쇼핑몰 ‘바가지머리’의 초창기 모습이다.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지하 작업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소원했던 ‘지상 사무실의 꿈’은 1년 뒤 현실이 됐다.

‘바가지머리’라는 이름처럼 친근한 콘셉트와 고객 만족 서비스로 20대 여성 공략에 성공, 단 3개월 만에 매출 1억 원을 넘어선 것이다. 바가지머리는 창업 7년차인 현재 매출 150억 원, 회원 수 40만 명에 달하는 국내 대표 여성의류 쇼핑몰로 자리매김했다. 손 대표를 대학생 창업동아리연합(PEUM) 회원들이 만났다.
[CEO 탐방] “포화 시장에도 틈새는 있다”
PEUM 온라인 쇼핑몰 시장이 과포화 상태라고 한다. 지금 이 사업에 뛰어든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적지 않을까.
[CEO 탐방] “포화 시장에도 틈새는 있다”
손석호 우리가 바가지머리를 오픈한 2005년 당시에도 쇼핑몰 시장은 포화 상태였다. 하지만 준비가 철저하다면 그것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쪽에도 틈새시장이 있다.

소비자의 니즈(needs)를 잘 파악해서 가려운 곳을 긁어줘야 한다. 디자인도 비슷하고, 상품도 비슷하고, 가격도 비슷하다면 소비자는 당연히 기존 쇼핑몰로 간다.

이슈가 될 만큼 파격적인 제안을 해야 사람들이 찾아오고, 물건을 구입한다.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쉽지만 성공하기는 힘든 것이 이쪽 분야다.

PEUM 바가지머리만의 강점은 무엇인가.
[CEO 탐방] “포화 시장에도 틈새는 있다”
손석호 기존의 트렌드를 따르기보다 최초로 시도한 것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인 체형에 맞는 모델을 내세웠다는 점이다. ‘쭉쭉빵빵’한 모델은 사진으로 봤을 땐 멋있지만 현실적이진 않다.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몸매의 모델을 써서 친근함으로 어필했다. 상품 이름을 지을 때도 여성이 좋아하는 감성적 키워드를 이용했다.

단순하게 ‘체크무늬 팬츠’라고 하지 않고 ‘달콤한 코코아 팬츠’라고 짓는 식이다. 여성 특유의 감성으로 소비자와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 바가지머리의 성장 동력이 됐다.

PEUM 공동대표인 김윤경 MD가 직접 샘플을 구입하고 사진 촬영도 한다고 들었다.

손석호 바가지머리만의 특색 중 하나다.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 야외 촬영을 나간다. 김윤경 대표가 촬영을 진두지휘한다. 착장도 세세히 신경 쓰고 사진도 만족할 때까지 찍는다. 물론 스튜디오에서 촬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모델이 카페에서 친구와 차를 마실 때처럼 일상 속의 모습을 보여줄 때 공감한다. 하나의 아이템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착장을 보여준 점, 한쪽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위·아래·앞·옆까지 360도에서 촬영한 점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CEO 탐방] “포화 시장에도 틈새는 있다”
PEUM 김윤경 MD가 아내다. 부부 동반 창업을 하면 어떤 장단점이 있나.

손석호 장점은 회사 일이 곧 우리 가족의 일이기 때문에 앞뒤 재지 않고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퇴근 시간이 늦어져도 큰 문제가 되지 않고, 힘들다는 내색도 잘 하지 않게 된다. 우리 부부의 경우 관리하는 파트가 명확하게 나뉘어 있다.

나는 경영과 관리를 맡고 아내는 패션 파트를 맡아 MD 역할을 한다. 아내는 주로 밤에 일하고 아침에 내가 출근하면 집에 들어가 잔다. 생활 패턴이 달라 잘 보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애틋할 수밖에 없다.

PEUM 온라인 쇼핑몰 대부분이 오픈하고 석 달을 넘기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바가지머리는 석 달의 한계를 어떻게 넘길 수 있었나.

손석호 사훈이 ‘정직’이다. 진심이 묻어나게 고객 관리를 한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 오픈마켓에서 2년간 쌓은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에 소비자 응대 요령을 알고 있었다.

많은 고객이 방문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고객을 감동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상품을 배송할 때도 손으로 메시지를 적어 보내고 고객이 상품을 잘 받았는지 일일이 전화로 확인했다. 때때로 안부 전화도 했다.

일단 충성 고객이 되면 우리가 부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홍보를 해준다. 한 명의 고객을 잡으면 두 명의 고객이 생기고 그 두 명에게 정성을 쏟으면 그들이 다시 네 명을 데려오는 식이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 순간 회원 수가 몇 십만 명으로 늘었다.

PEUM 입소문으로만 마케팅을 했나.
[CEO 탐방] “포화 시장에도 틈새는 있다”
손석호 초창기엔 충성 고객들의 홍보에 의존했다. 인터넷 광고나 홍보는 안 했다. 대신 바가지머리 캐릭터를 탈 인형으로 만들어 거리 마케팅을 했던 것이 효과를 봤다.

특히 캠핑카를 타고 전국 캠퍼스를 돌며 홍보했던 게 반응이 좋았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 앞에서 바가지머리 탈 인형을 쓰고 사진을 찍어보자며 해외 촬영을 기획하기도 했다.

PEUM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많이 시도하는 것 같다.

손석호 엉뚱한 상상을 실현하려다 보니 직원들이 고생하는 경우도 많다.(웃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학생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종이에 메모해두는 습관이 있었다.

할 일을 목록으로 만들고 실행할 때마다 하나씩 지우곤 했다. 아이디어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생각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다. 중요한 건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는 것이다. 실천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PEUM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

손석호 패션과 문화가 결합된 형태의 비즈니스는 한국에 많지 않다. 우리는 바가지머리 외에도 카페(바리 에 맑음), 오프라인 매장(앤드업 바가지머리), 리빙 소품과 가구, 디자인 문구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옷이라는 상품뿐 아니라 ‘문화’를 파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6월에 고향인 광주에 사업체를 하나 오픈했다. 갤러리와 카페, 리빙소품숍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바를 보여주는 1호 공간이 될 것이다.

PEUM 참가자
김대현, 김지혜, 김효일, 박상도, 박정현, 박현욱, 서한빈, 오용훈 (이상 서울과학기술대 ITEM)
이예지 (배화여대 사라능단)
이경민 (동국대 FRONTIER)

글 김보람 기자 bramvo@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