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ities

“스타벅스에 갔는데 00가 너무 맛있었어. 먹고 또 먹고 싶었어. 그런데 너 SKT 멤버십 있어? 그것 좀 빌려줘. 아빠 것 빌려 쓰고 있어? 아웃백에서 이번에는 내가 내야 하는데 40% 디시(할인)해준대. 꼭 좀 빌려줘잉.”

한번은 찜질방에서 남녀 대학생이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 들어오자마자 여학생이 5분 넘게 먹는 이야기만 반복해서 했다. 이 대화가 끝나자 두 남녀는 바닥만 멀뚱멀뚱 보면서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더 이상 대화거리가 없었다. 그들은 7분 정도 앉아 있다 자리를 떴다.

찜질방에 와서 딱딱한 대화를 나눈다는 게 좀 우습겠지만,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대부분 화제가 먹는 것에 대해서다. “난 명동칼국수가 맛이 없더라. 그걸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다니 참 한심해. 바지락 칼국수가 제일 맛있어.”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대부분 회사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중년의 두 남자는 앉자마자 상사에 대해 험담하기 시작했다. “그래 가지고 어떻게 승진했는지 몰라. 그 주제에. 난 걔 때문에 매일 열 받아 죽을 지경이야….”

가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들어 보면 건설적인 화제를 나누는 경우는 거의 없다. 청소년뿐 아니라 대학생, 성인 할 것 없이 대개가 먹는 이야기나 남에 대한 비난이다. 대학생들도 만나면 먹는 이야기나 연예인, 명품 이야기밖에 할 줄 모른다.

이 이야기가 끝나면 대화가 뚝 끊긴다. 요즘 대학생들은 거의 신문을 보지 않는다. 물론 책도 읽지 않는다. 수업시간에 질문이 없어 토론이 되지 않는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영어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다고 한다.

필기한 노트만 외우고 시험을 본다. 그렇게 대학 생활을 보내고 사회에 나간다. 직장에 다니면 더 책 읽을 시간이 없다. 이것이 우리 사회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인 모양이다.
[최효찬의 ‘인문학이 에너지다’] ‘잠자기 전 30분 독서’의 마법
친구·애인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나?

오마에 겐이치는 ‘지식의 쇠퇴’에서 이렇게 분석한다. “지식의 쇠퇴는 좁은 시야 때문에 일어난다. 현대의 젊은이뿐 아니라 모두들 자신의 주위밖에 보지 않으며, 그 결과 사고의 정지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 이 진단은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책을 읽으면 간접경험을 통해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조숙하다는 말은 바로 독서에서 나오는 것이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쓴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은 미국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이 청소년 시절 즐겨 읽은 소설이라고 한다.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명문 사립학교에 다니다 성적이 나빠 퇴학을 당한다. 영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낙제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홀든은 독서광이었다. 학교 성적은 낙제를 면치 못했지만 나름대로 폭넓게 독서를 해온 책벌레였다.

비록 학교 공부를 등한시하더라도 홀든처럼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학생이라면 언젠가는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주변에서 그런 주인공을 가끔 볼 수 있다.

대다수의 부자는 엄청난 독서광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존경받는 펀드매니저였던 존 템플턴 경은 “자기 자신을 살아 있는 도서관으로 만들라”고 충고했다. 빌 게이츠는 어른이 돼서도 정기적으로 책 읽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워싱턴 호숫가에 있는 빌 게이츠의 저택에는 개인 도서관이 있다. 이곳에 그는 1만4000권 이상의 장서를 보관하고 있다.

아시아 최대 갑부인 홍콩의 창장(長江)그룹 리자청(李嘉誠, 홍콩명 리카싱) 회장은 중학교 중퇴의 학력이지만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책을 읽는 것은 정보를 흡수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집중력을 훈련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는 특히 자선 사업과 엄격한 자녀 교육으로 유명하다. 그는 두 아들에게 입버릇처럼 “먼저 인간이 돼라”고 했다. 돈보다 인간의 도리부터 가르친 덕분에 두 아들은 미국 유학 시절 갑부의 아들이란 사실을 드러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하고 골프연습장에서 공 줍는 일을 하면서 학비를 보탰다.

리카싱의 집 서가에는 중국 고전들이 채워져 있다. ‘시경’과 ‘논어’ 등 사서삼경을 비롯해 당시(唐詩), 송사(宋詞), 원곡(元曲) 등 중국의 고전문학이 고스란히 서재에 진열돼 있다. 리카싱은 어린 시절부터 한시를 외웠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서재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 출신으로 아들에게 “책에서 길을 찾으라”고 강조했다.

매일, 두 달만 읽으면 평생 습관된다

리카싱은 매일 ‘잠자기 전 30분’ 이상 책을 읽는 습관을 60년 넘게 지켜오고 있다. 아버지의 책 읽는 습관은 아들에게 이어져 큰아들 리쩌쥐는 자신의 전공인 건축 관련 책을 읽는다. 독서 습관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뭔가 결심한 것이 있다면 최소 66일 동안 실천해야 반사적인 습관으로 굳어질 수 있다고 한다. 영국 런던대에서 같은 행동을 얼마 동안 반복해야 언제든지 자동적으로 반사행동을 하게 되는지 실험했다. 그 결과 평균 66일이 돼서야 생각이나 의지 없이 행동하는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된다고 밝혔다.

누구나 두 달 동안만 매일 실천한다면 평생 습관으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잠자기 전 30분 독서’를 두 달 동안만 실천한다면 평생 습관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잠자기 전 30분 독서 습관을 들이면 그게 자기경영의 시작이다.

더욱이 요즘 직장인들에게 요구하는 독서경영에 적극적인 주도자가 될 수 있다. 직장에서 독서경영을 위해 임직원에게 필독서 리스트를 만들어 독서를 ‘강요’하고 있는데, 독서경영의 성공은 직장인 개개인의 독서 습관에 달려 있다. 즉 독서경영은 필독서 읽기를 강요하기보다 먼저 독서 습관을 들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독서 습관을 더 잘 들이려면 생산적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책을 읽을 때는 다산 정약용처럼 반드시 ‘초서’를 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초서란 책을 읽으며 자신에게 필요한 문장을 발췌해 메모해놓는 것이다. 필자는 수년 전부터 초서하는 습관을 들였고 글을 쓸 때는 언제나 ‘초서’ 파일을 참고한다. 이게 나만의 생산적인 독서법이다.

누구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라고 하면 부담감을 가질 것이다. 이때 책을 읽으면서 혹은 읽은 후에 인상 깊은 구절을 10개 정도 쓰게 하고 이를 서로 비교해본다면 개성적인 독서를 서로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원들과 초서를 공유하면 책의 내용을 절로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이 활성화되면 독서경영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지 않을까.

독서를 통해 꼭 성공해야겠다는 거창한 다짐을 하며 읽을 필요는 없다. 책을 읽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감성이 되살아나며 풍부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고 울분으로 감정이 격한 날을 옛 사람들은 ‘강한 날’이라고 했는데 이런 날 밤에는 ‘논어’와 같은 경서를 읽으라고 한다.

마음이 차분해지기 때문이다. 반면 마음이 울적하고 비관적이고 가라앉는 날은 ‘부드러운 날’이라고 한다. 이런 날에는 ‘로마인 이야기’와 같은 역사서를 읽으면 투지가 살아나고 다시 살아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현재를 충실하게 살고자 한다면 그 시작은 독서라고 할 수 있다. Carpe Diem(라틴어: 현재에 충실하라.)!
[최효찬의 ‘인문학이 에너지다’] ‘잠자기 전 30분 독서’의 마법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비교문학 박사

기자를 거쳐 현재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 겸 자녀경영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한국의 1인 주식회사’ 등 다수의 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