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에는 인쇄돼 있지 않지만 그 어느 때보다 의미 있는 날들이 있다. 밸런타인데이(2월 14일), 화이트데이(3월 14일), 크리스마스이브(12월 24일)가 대표적이다. 이날들은 사랑·연인·선물처럼 따스하고 아름다운 단어가 어울린다는 특징이 있다.

물론 본 기자처럼 이런 날들이 고독·외로움·분노로 점철된다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위한 것일까. 장난·골탕·괴롭힘 등으로 ‘스트레스 발산하는 날’이 있으니 바로 만우절이다.

작년 만우절 이야기 하나. 밝은 햇살 아래 서로 팔짱을 끼고 걷는 커플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거리를 수놓은 진달래와 개나리는 그들을 축복하고 있었고, 커플들의 사랑으로 피어난 봄의 새싹들은 ‘우리 강산을 푸르게 푸르게’ 덮을 기세였다.

‘저걸 다 밀어버릴까’ 하는 심정으로 낫을 찾으러 가려던 찰나, 그날이 만우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침 애인이 있던 한 친구에게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그와 함께 친했던 또 다른 친구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거짓말을 급박한 목소리에 실어 전한 것. 결국 그 친구는 1시간 거리의 신촌 모 병원까지 왔고, 본 기자는 배가 아파서 데굴데굴 굴렀다. 왜냐, 그 친구에게 배를 엄청 맞아서.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고약한 거짓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거짓말도 있으니, 소설 ‘마지막 잎새’에서 늙은 화가가 환자에게 가짜 잎사귀를 그려줬던 것, 어머니가 자장면이 싫다고 하신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거짓말은 오히려 듣고 싶다. 작금의 현실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거짓말을 통해서라도 위안을 받으려는 것이지만,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듣기 좋은 거짓말로 마음이 안정된다면 뭐 어떤가?

그래서 물어봤다. “이번 만우절에 들어보고 싶은 거짓말은 무엇입니까?”

외모에 집착하는 두 남자

지난해 9월 1차, 올해 2월 2차의 진중권(@unheim) 교수와 가수 윤종신(@MelodyMonthly) 씨, 그리고 뮤지션 유희열의 ‘외모 논쟁’을 기억하는가? 아직 논쟁의 열기가 식지 않았는지 진중권 교수는 이 질문을 이용, 윤종신 씨를 향해 먼저 포문을 열었다.

“딱히 생각나는 것은 없네요. 다만 윤종신 씨라면 있지 않을까요? 가령 ‘윤종신이 진중권보다 잘생겼다’ 뭐 이런 얘기. 비록 거짓말일지라도 듣고 싶어할 거예요.”

당연히 질문의 화살은 윤 씨에게 돌아갔고 질문 말미에 진 교수의 답변을 전했다. 윤 씨는 웃으며 답했다. “이런 건 어떨까요. ‘윤종신, 진중권의 외모를 비슷한 수준으로 결국 인정. 진중권, 부단한 노력으로 끝내 미남 대열에’.”

윤 씨는 답변 말미에 “하루 만이라도 대인배가 되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 답변을 본 진 교수의 한마디. “거봐요. 되게 좋아하잖아요.” 논쟁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날의 논쟁은 “차별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화합의 만우절이 될 것 같다”는 윤 씨의 멘션으로 마무리됐다.

외모와 관련한 답변은 이들뿐이 아니었다. 활발한 트위터 활동을 보이고 있는 CEO 중 한 명인 정용진(@yjchung68) 신세계 부회장은 “미남이다”라는 거짓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정 부회장 역시 몇 번의 트위터 논쟁을 벌였던 것으로 유명한데 대표적으로 지난해 SSM 규제 논란을 심화시킨 문용식 나우콤 대표와의 ‘한밤의 설전’이 있다.

개인적인 소망을 드러낸 사람은 정 부회장뿐만이 아니었다. 가수 박혜경(@parkheykyung) 씨는 짝사랑하는 그에게서 “결혼해줘”라는 말이 듣고 싶다고 했다.

‘폐인가족’으로 유명한 만화가 김풍(@kimpoong) 씨는 재치 있고 기발한 그의 만화에 걸맞은 답변을 했다. 그가 듣고 싶은 거짓말은 “네게 1억을 줄게. 만약 거짓말이면 보태서 2억을 주겠어”. 일단 숫자 0을 8개 깔고 들어가는 그의 ‘탐욕스러움’에 본 기자는 혀를 내둘렀다.

재즈 드러머 남궁연(@NamgoongYon) 씨는 음악 산업과 관련한 뉴스를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기사 제목 형식을 차용한 그의 답변은 “한국 이통사 음원 서비스 이익을 아티스트에게 대폭 돌려주기로!-아이튠즈보다 건강한 유통구조 전격 선언”이었다.

현재 모바일 서비스에서 음원 생산자에게 배분되는 수익은 전체 매출의 25% 정도. 여기에 수수료까지 빼면 20% 미만으로 떨어진다. 이에 반해 아이튠즈는 전체 수익의 70%를 음원 생산자에게 주고 있다.

“어서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반세기 이상 풀리지 않는 숙제, 남북 관계에 관한 답변도 많았다. 만화가 이우일(@i00111) 씨는 “북에서 드디어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대!”라는 거짓말이 듣고 싶다고 했다. 최근 북한의 민심이 이탈하고 있다는 뉴스가 많고 MENA(중동·북아프리카 지역) 민주화 열풍도 불고 있어 ‘거짓말이 현실이 되는’ 일이 빨리 올지도 모르겠다.

김충환(@kimcw21) 한나라당 의원은 강력한 어조로 답했다. 그가 듣고 싶은 거짓말은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천안함 사고에 대해 책임자를 문책하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유감을 표시했다. 앞으로 재발 방지 약속을 하고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로 했다”라는 내용의 뉴스.

조현정(@ChoHyunJung) 비트컴퓨터 회장 역시 뉴스 형식을 빌려 답했다. “북한이 4월 1일 새벽 0시를 기하여 중대 발표를 하다. 조건 없이 핵을 포기하고 인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3통(통행·통신·통관)을 위해 김정일 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발표했다.”

17대 민주당 국회의원이었던 최재천(@your_rights) 변호사는 “우선 ‘남북통일’, 그것이 안 되면 ‘남북 화해 협력 교류’라는 소식을 거짓이라도 좋으니 듣고 싶다”고 했다.

에너지 걱정 없는 그날까지

유가가 급등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답변도 있었다. 전병헌(@BHJun) 민주당 의원은 “독도 앞바다에서 세계 최대매장량 해저유전이 발견됐다”는 말을 듣고 싶어했다. 기타리스트 한상원(@drfunkmaster) 씨는 “지구 속 마그마의 열에너지를 이용해 전력 발전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을 기다린다고 했다.

사실 마그마 발전(Magma Power Generation)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아직 실용화되지는 않은 상태다. 이 거짓말이 현실화되면 인류 전체가 평생 에너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마술사 이은결(@eun_gyeol) 씨는 “사람과 동물이 서로 언어 소통이 가능해진다”는 거짓말을 듣고 싶어했다. 이 답변은 개인적으로 반대다. 본 기자가 기르고 있는 고양이가 대놓고 본 기자를 욕하는 것은 듣고 있을 수 없다.
[140자 인터뷰] 이런 거짓말은 돈 주고라도 듣고 싶다!
진중권, 윤종신, 그리고 유희열의 외모 논쟁 역사

1차 논쟁 : 작년 9월, 평소 ‘묘하게 닮은꼴’로 평가받던 진중권 교수와 윤종신 씨가 서로 자신의 외모가 낫다는 논쟁을 펼쳤다. 윤 씨는 얼굴 인식 결과를 근거로 “나는 정우성과 80% 닮았다”고 했고 이에 진 교수는 “정우성이 나와 얼마큼 닮았느냐에 따라 미남의 기준에 삼는다”고 답했다.

당시 유희열 씨는 자신이 진행을 맡고 있는 KBS FM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서 이 논쟁에 대해 “전파 낭비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진 교수와 윤 씨는 입을 모아 “이게 웬 하수의 기웃거림인가” “우린 정우성을 얘기하고 있는데 유희열 씨가 왜 끼어드나. 이 사안에 관한 한 그분은 2부 리그”라며 발끈했다.

2차 논쟁 : 포문은 유희열 씨가 열었다. 청취자들에게 “누가 빼어난 외모로 제일 손해를 많이 본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하며 윤종신, 진중권, 유희열 등을 후보로 제시했다. 여기에 한 청취자가 “우리 진사마(진중권)한테 웃다니 아무리 희열님이라도 참을 수 없다. 당연히 외모는 진사마다”라는 답을 보냈고 유 씨는 “진중권 교수님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요?”라며 비판 섞인 의문을 제기했다.

청취하던 어느 트위터리안이 진 교수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진 교수는 “종신 옹이 그러는 건 이해라도 가지(날 좀 닮았으니까). 근데 이분은 왜 그러신대요”라고 받아치며 “유희열 씨는 그냥 음악에만 매진해야 할 외모다. 가련한 중생. 다음 생에서나 노려봐야 할 일에 왜 집착이 그렇게 강한지”라고 답해 트위터리안에게 깨알 같은 웃음을 주었다.

글 양충모 기자 gaddjun@hankyung.com·@herejun(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