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PD

2007년 KBS ‘인사이트 아시아-차마고도’, 2009년 MBC ‘아마존의 눈물’, 2010년 SBS ‘최후의 툰드라’, 2010년 MBC ‘아프리카의 눈물’….

각 방송사의 손꼽히는 다큐멘터리다. 모두 큰 스케일과 화려한 영상으로 ‘명품 다큐’라고 불렸다. 인기몰이에 성공해 극장판으로 다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을 진두지휘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다큐멘터리 PD다. 다큐의 기획부터 취재, 촬영, 편집을 총괄한다.

제작 과정은 눈물겹다. 밤샘 작업은 기본, 위험과 위협에 부딪히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현장에선 사람 사이, 문화 사이에서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아마존의 눈물, 아프리카의 눈물, 남극의 눈물과 같은 ‘지구의 눈물 시리즈’를 기획한 정성후 MBC 시사교양1부장을 만나 다큐멘터리 PD의 세계를 들어봤다.
[멘토에게 듣는 직업세계] 사서 고생한다? “힘들기 때문에 보람 있는 직업”
요즘 인기 절정을 달리고 있는 남자, 현빈이 나지막하게 말한다. “몸과 영혼을 맑게 해준다는 약즙, 효과는 바로 나타난다.” 화면엔 물을 분수처럼 뿜어내는 원주민의 모습이 이어진다. 다큐멘터리 ‘아프리카의 눈물’의 한 장면이다.

이처럼 낯선 문화를 접하면 때론 충격에 사로잡힌다. 그러다 이내 국경을 넘어 하나로 통하는 휴머니즘을 접할 때면 감동을 느낀다. 시청자를 울리고 웃기는 다큐멘터리의 묘미다.
[멘토에게 듣는 직업세계] 사서 고생한다? “힘들기 때문에 보람 있는 직업”
25년간 시사교양 부서에서 일한 정성후 부장은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정의 내리고 있을까.

“세상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하는 장르죠. 이미 일어난 일이나 현재 있는 일을 영상으로 기록을 남기는 작업이에요. 거기에 PD의 시각이나 해석을 곁들이는 거죠.”

우리 모두는 소통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기질과 자질을 살려 글이나 그림, 말, 음악 등으로 표현한다. 다큐멘터리 PD는 영상이라는 매체를 선택해 세상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MBC는 제작본부 안에 시사교양1부의 PD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데요, 방송국이든 외주제작사든 시사교양 PD를 하면 최종적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 다큐멘터리라고 봐도 돼요.”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자연, 역사, 인물 등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담을 수 있다. 주제에 따라 시사 다큐멘터리, 역사 다큐멘터리, 휴먼 다큐멘터리, 환경 다큐멘터리 등으로 불린다.

“엄마가 아기의 성장을 기록한 것도 다큐거든요. 누구나 만들 수 있고 그래서 만들기 어려운 장르이기도 해요.”

다큐멘터리 PD가 일할 수 있는 곳은 크게 3곳으로 나뉜다. 방송국, 외주제작사, 1인 시스템인 독립제작사가 그것이다. 통상 조연출 과정을 거쳐 8년 정도 일하면 독립 다큐멘터리스트로 일할 수 있다.

어디에 소속되는지에 따라 업무 영역은 조금씩 다르다. 방송국에서 일을 하면 카메라맨이나 작가가 따로 있다. 1인 시스템인 곳에선 모든 제작을 혼자서 하기도 한다. 하지만 크게는 기획, 취재, 촬영, 편집으로 나눌 수 있다. 때에 따라 제작 지원을 받는 펀딩을 하기도 한다.

“구상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책도 보고 자료도 찾아보면서 사전 취재를 해요. 스케줄을 잡아서 촬영을 가고 다녀와서는 편집도 하고요. 시간적으로 보면 촬영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고 편집하는 데도 공이 들어가죠.”

방송사의 경우 카메라 촬영은 카메라맨이 담당하지만 상황을 보면서 무엇을 찍을 것인지 중요한 것을 판단하고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PD의 몫이다. 따라서 다큐멘터리 PD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자질은 ‘공감 능력’이라고 정 부장은 꼽았다.

“사람과 사회에 대한 공감 능력이 필요해요. 일을 오래하면서 더 느끼는 부분인 것 같아요. 특히 휴먼 다큐는 공감하고 이야기를 듣는 게 중요하죠. 자연 다큐도 동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요.”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은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 작업이기도 하다. 외부 취재원과 내부 스태프진, 방송 후에는 시청자와의 교류가 필요하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계속 확인할 필요도 있다.

다큐멘터리 PD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 하나. TV에 보면 프롤로그에 취재진의 고생담(?)이 따로 나올 정도인데 실제로 얼마나 고생하느냐는 것이었다.

“자연이 주는 위협이 있죠. ‘북극의 눈물’ 촬영 중에는 조연출이 빙하 사이 절벽 앞에 딱 멈춰서 모두가 아찔했던 적이 있고, ‘아마존의 눈물’에서는 밤에 강을 건너다가 배가 뒤집힌 적도 있고 ‘아프리카의 눈물’ 때는 차가 뒤집혀서 조연출 중 한 명이 척추에 금이 가기도 했어요. 전해 들을 때마다 섬뜩하고 ‘무사히 살아서 돌아오는 게 최고다’라고 생각해요. 가장 염려되는 것이 바로 안전이죠.”

그중에서도 가장 큰 위협은 ‘인간’이 주는 것이라고 한다.

“촬영 중에 총알이 취재진의 머리 위로 날아간 적이 있어요. 특히 르포나 고발 다큐는 그 프로그램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 생각하는 층에서 여러 형태의 협박을 하기도 해요. 그 밖에 몸이 고되거나 밤샘 작업을 하는 것은 능력 안에서 겪어내는 일이고요.”

그럼에도 왜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일까. 바로 “힘들기 때문에 보람 있고 매력 있는 일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만든 프로그램이 시청자나 세계 평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또 출연자들이 방송을 통해 인생에 행복한 변화가 생겼을 때 뿌듯하다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세계 어디든지 접근할 수 있다는 것도 다큐멘터리 PD를 권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예요.”

다큐멘터리 PD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 정 부장은 먼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출 것을 조언했다.

“세상에 대해서 할 얘기가 있으려면 인간에 대한 관찰, 세상에 대한 자기 판단이 있어야 해요. 인문학적 소양은 책을 읽어서 터득되기도 하고 개인적 체험이나 현장 경험 등을 통해서 얻어지는 거죠. 다큐멘터리는 테크닉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것을 통해서 얘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개인의 인간적인 깊이에서 나와요.”

실제로 다큐멘터리 PD 중에서는 꽤 ‘진지한 사람’이 많다고 한다.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 PD로 일하기 위해선 일정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때도 인문학적 소양이 중요한 평가 요소다. 마지막으로 대학생에게 도움이 될 만한 팁을 요청했다.

“계속 ‘왜’라는 질문을 해야 해요. 원래 그런 것은 절대 없어요. 모든 것은 언제든 뒤바뀔 수 있어요.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면 중학교 때 어느 날 버스를 탔는데 안내양이 없어지고 앞문으로 승차를 하는 거예요. 버스를 뒷문으로 타지 않는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사회 시스템은 누가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느꼈죠. 작은 일 하나에 숨어 있는 가치를 읽어내는 능력을 길러보세요.”
[멘토에게 듣는 직업세계] 사서 고생한다? “힘들기 때문에 보람 있는 직업”
정성후

MBC 시사교양국 시사교양1부장(Chief Producer)
1964년 생
1987년 2월 서울대 신문학과 졸업
1987년 11월 MBC TV PD 입사
‘PD수첩’ ‘성공시대’ ‘와e 멋진 세상’ ‘MBC 스페셜’ 등 연출
‘지구의 눈물 시리즈’ 및 중장기 특집 다큐멘터리 기획

수상
1996년 올해의 프로듀서상(공동 수상)
2001년 아시안TV 어워즈 다큐멘터리 부문상
2010년 여의도클럽이 주는 올해의 방송인상


글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