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찬의 '인문학이 에너지다'

우리 사회에는 성공에 대한 맹목적인 ‘신화’들이 있다. 요즘은 ‘잘생긴 얼굴과 롱다리’에 ‘말 잘하기’가 취업 혹은 성공의 필수 조건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과 말을 어눌하게 하는 사람 중 누가 더 성공할 확률이 높을까.

대부분의 사람이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성공하려면 언변이 좋아야 한다’는 말도 있다. 요즘 특히 말을 잘해야 성공한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물론 대통령이나 정치인처럼 대중 앞에서 자주 연설을 해야 하는 사람인 경우 ‘말 잘하는 능력’은 필수지만 그렇지 않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 아닐 수 있다. 이 역시 잘못된 성공 신화라고 할 수 있다.

공자는 이미 2500년 전에 이를 직시하며 인간관계의 핵심을 짚어냈다. “그래서 내가 말재주 있는 자를 싫어하노라.” 이는 ‘논어’ 선진 편에 나오는 말로 공자는 이를 오부녕자()라고 했다.

‘논어’를 읽으면 몇 가지 핵심적인 문구가 반복해서 나오는데 ‘오부녕자’도 그중 하나다. 녕()은 말재주가 있는 것, 아첨하는 것을 가리킨다. 공자는 말을 잘하는 이를 가장 싫어한다고 제자들에게 말한다.

그런데 공자는 말 잘하는 이를 가장 싫어한다며 ‘오부녕자’를 경계하면서도 언변에 탁월한 자공과 같은 제자를 두었다. 그가 이상적으로 바라는 인간상을 지닌 사람만 제자로 두지는 않았던 것이다.

단점이 장점이 되고 장점이 단점이 되는 이치처럼 장점과 단점을 지닌 수많은 인재를 포진해두었고 그 인재들이 세상에 나가는 데 조력을 해주고 추천을 해주었다. 공자는 말 잘하는 자공을 곁에 두면서도 항상 이를 경계하는 말을 들려주면서 행동보다 말이 앞서지 않게 이끌었다.

특히 많은 제자 가운데 자공을 많이 아끼면서도 혹독하게 대했다. “저는 남이 나에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일을 저 역시 남에게 하지 않는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한번은 자공이 스승에게 이렇게 다짐하는 말을 했다. 공자의 대답은 싸늘했다. “넌 아직 그런 사람이 되려면 멀었다.”
[Humanities] 문제는 '진정성'이야, 바보야!
말 잘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노자의 ‘도덕경’에서도 말 잘하는 이를 경계하고 있다.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모자란 듯합니다. 그러나 그 쓰임에는 다함이 없습니다. 완전히 가득 찬 것은 빈 듯합니다. 완전히 곧은 것은 굽은 듯합니다.

완전한 솜씨는 서툴게 보입니다. 완전한 웅변은 눌변으로 보입니다.” 역자 오강남은 이 부분을 말하면서 함석헌 선생의 예를 주석으로 든다. 함석헌 선생은 무슨 질문이든 받으면 첫마디가 “글쎄요”라는 것이다.

“동서고금의 거의 모든 사상에 통달하다시피 한 그분이 어찌 말을 잘 못하셨을까? 그분은 미리 짜인 각본 같은 대답이나 일차방정식처럼 직선적인 대답을 준비하고 다니지 않으셨다.

진정으로 속에서 우러나는 소견을 그때그때 듣는 사람의 사정에 알맞게 말씀하시려니 청산유수처럼 될 수가 없고 자연히 주저하는 듯, 더듬는 듯한 감을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미리 꾸미고 다듬은 말이 아니라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말, 지극히 자연적인 마음 상태에서 나오는 말, 도에 입각한 말은 이렇게 눌변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보다 듣는 사람의 심금을 움직이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함석헌 선생의 사례는 바로 ‘논어’의 ‘오부녕자’에 적확하게 대입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말은 어눌한 것보다 세련되게 잘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단 여기서 한 가지 전제돼야 할 게 바로 ‘진정성’이다.

진정성이 없다면 아무리 말을 잘해도 한낱 공허한 언변으로 들릴 것이다. 특히 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감이 넘쳐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즉 ‘경청’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좋은 인상을 줄 수 없다. 특히 영업이나 홍보, 마케팅 담당자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말을 어눌하게 하는데도 영업의 달인이 된 사람이 많다. ‘보험왕’을 10년 정도 한 정태웅(전 한국재무설계 팀장) 씨도 바로 그런 사람이다. 흔히 내성적이고 말을 잘하지 못하면 영업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단정한다.

이런 고정관념을 갖고 정 씨를 보면 영업에 적합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말이 없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저런 사람이 어떻게 10년 동안 보험왕에 올랐는지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정 씨는 영업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깨뜨린 인물이다.

영업 전문가를 꿈꾼다면 그의 비결을 가슴속에 새겨볼 만하다. 정 씨가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1992년 보험회사에 취직할 때 부모님은 ‘3대 불가론’을 들어 반대했다고 한다.

첫째 친척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보험을 들어주며 도와줄 사람이 없다, 둘째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성격이 외향적이고 사교적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고지식하고 내성적이기 때문에 너에게는 맞지 않다, 셋째 영업을 잘하려면 상황에 따라서 손바닥 뒤집듯이 임기응변을 잘해야 하는데 그런 것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

그러나 정 씨는 보란 듯이 영업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했고 영업에 대한 기존 관념을 깨뜨렸다. 그는 오히려 주변에 부자가 많아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면 이 일을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지속적으로 고객을 만들면서 힘들게 성장한 것이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멋은 짧고 성실함은 길다”

부모님이 지적한 내성적인 성격에 대해서도 역시 다른 진단을 내놓는다. 그는 외향적이고 사교적이어야 친구가 많은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신뢰’라고 그는 말한다.

성격이 내성적이든 외향적이든 고객의 신뢰를 얻는 것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더 나아가 한결같은 모습으로 거짓말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신뢰와 진정성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말을 화려하고 멋있게 잘하는 사람이 친구들도 많고 사회에서 성공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는 것처럼 영업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때로는 어눌하고 버벅거리면서 얼굴이 빨개져도 신뢰를 주면 물건을 팔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어느 해 봄날 아내와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광양으로 매화꽃 구경을 간 적이 있다. 관광버스로 가면 ‘영업맨’들을 항상 만나게 된다. 그날도 이른바 ‘무진장(전북 무주, 진안, 장수를 합친 말)’ 구간에 이르자 한 아저씨가 버스에 올라탔다.

자신이 직접 재배한 도라지를 분말로 만들어 파는 ‘사장님’은 언뜻 보기에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패션에 영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믿음’을 더 주었다. 직접 도라지를 재배해서 분말을 만든다는 말에 관광객이 모두 신뢰하는 눈치였다.

어눌한 말솜씨와 허름한 옷차림의 농군이었지만 도라지 분말 영업에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영업의 기본은 말솜씨가 아니라 진정성에 달려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세계 최고 부자 워런 버핏은 성공의 최고 덕목으로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성실’을 꼽는다. “멋은 짧고 성실함은 길다.” 이는 카네기멜론대 교수로 재직하다 2008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마지막 강의’의 저자 랜디 포시가 한 말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품생폼사’로는 일시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라도 장기적으로는 큰 성공을 이룰 수 없다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폼생폼사’형과 말을 번지르르하게 잘하는 ‘오부녕자’형은 단기적으로는 성공에 도취할 수 있을지라도 장기적으로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빌 클린턴 식의 표현을 빌면 “문제는 진정성이다, 바보야!”가 아닐까.
[Humanities] 문제는 '진정성'이야, 바보야!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비교문학 박사

기자를 거쳐 현재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 겸 자녀경영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한국의 1인 주식회사’ 등 다수의 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