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취업 전문가 간담회
지난 12년 동안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지원 프로그램을 거쳐 해외 일자리를 찾아 나간 사람은 1만1289명(2010년 11월 30일 현재). 특히 2010년에만 2000명이 넘어 ‘붐’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가 2013년까지 5만 명의 청년을 해외로 보내겠다고 공언한 만큼 전에 없는 바람이 불 전망이다.하지만 해외취업이 누구에게나 최선의 선택일 수는 없다. 하늘이 내린 일자리를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도에 가방을 싸서 돌아오는 비운의 주인공도 있다. 아무나 세계를 무대로 뛰는 유능한 프로페셔널이 되는 건 아니다.
정부의 해외취업 정책을 담당하는 실무자, 현장에서 지원자들과 동고동락하는 연수 담당자, 중국 베이징의 글로벌 기업에 입사한 능력자를 한자리에 모았다. 그리고 물어보았다. “어떻게 하면 해외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진행) 해외취업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 현장에선 어떻게 느끼는가.
우만선) 해외취업 지원 사업은 1998년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10년 정도는 성과가 미미했다. 거의 홍보가 되지 않았다. 현 정부 들어 ‘글로벌 청년 리더 10만 명 양성’ 프로젝트가 중점 과제로 선정된 게 전환점이다. 2013년까지 해외취업 5만 명, 해외인턴 3만 명을 보낸다는 게 골자다.
만 3년이 지난 지금, 꾸준한 홍보와 연수·교육으로 해외취업 실적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어학연수 등으로 해외 경험이 많은 20대가 특히 적극적이다. 해외 생활에 별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 워킹홀리데이로 해외에서 일해본 사람들은 해외취업의 예비 자원이기도 하다.
김정훈) 하지만 지방 학생들에겐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정부가 지원하는 연수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도 잘 모른다. 해외취업 관련 정보가 많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막연한 환상이나 기대치를 갖는 경우가 많다.
직장 생활은 원래 어디에서 하나 힘든 것이다. 그런데 해외에서 취업을 했기 때문에 유난히 힘들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결국 중도 포기로 이어진다. 중국의 경우 일자리가 풍부하다. 하지만 “사람은 많지만 오랫동안 함께 일할 인재는 없다”고 말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김진현) 피부로 느껴지는 변화는 최근 2~3년 사이 해외취업 연수기관이 2배가량 늘어났다는 점이다. 그만큼 수요(지원자)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특히 중국 전문 연수기관은 2008년에 20개 선에서 지금은 6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진행) 해외취업이 국내 취업난의 돌파구 역할을 하고 있나.
우만선) 해외취업 연수 프로그램은 대학 졸업을 한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한다. 사실 스펙이나 실력이 뛰어난 사람은 국가의 도움이 없어도 원하는 기업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심각한 취업난에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가 더 많다.
이들에게 3~10개월 동안 강도 높은 훈련을 시켜서 해외 일자리로 내보낸다. 영구적인 취업은 아니다. 대개 2년 안팎이다. 경험을 쌓아 한국으로 돌아오면 경력직으로 새로운 출발이 가능하다. 무조건 해외로 밀어내는 게 아니라 일정 기간 동안 역량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이다.
해외로 나간 한국 청년들은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예컨대 호주에선 필리핀 근로자보다 한국인이 2.5배 높은 임금을 받는다. 그만큼의 가치를 창출해내기 때문이다. 무역 비즈니스 등의 직무로 나가는 경우 신입으로 입사하지만 주어지는 일이나 역할은 중간 관리자급이다. 언어뿐 아니라 업무 전문성을 높이고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
김미향)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로 해외취업에 관심을 둬왔다. ‘국내파 10인의 해외취업 성공기’라는 책에서 “국내 기업보다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에 해외취업을 했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해외취업이 늘어나고 정부가 지원을 하는 것은 세계경제의 글로벌화 추세와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싱가포르, 중국에 관심이 많다. 새 학기에 중국 교환학생으로 가게 되어 언어와 문화를 열심히 공부할 생각이다. 이후에는 무역 비즈니스 쪽의 일을 하고 싶다.
김정훈) 한국은 이미 고용 없는 성장을 시작했다. 취업난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부족한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다 보니 탈락자가 계속 쌓인다. 해외취업으로 눈을 돌려야 할 때다. 해외에서 좋은 기회를 잡아 자신을 성장시켜 보라고 말하고 싶다.
진행) 새해 정부의 해외취업 지원 확대 계획은.
우만선 우선 해외에 많은 일자리, 우량한 일자리를 확보하는 데 포커스를 맞추기로 했다. 특히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발굴할 계획이다. 일본은 청년들을 동남아로 보내 시장까지 공략하고 있다. 해외취업의 진출 국가도 다양화해야 한다.
월드잡에 올라 있는 2만여 명의 구직자 풀(pool)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문제도 고민하고 있다. 내보내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사후관리까지 제공할 것이다. 이와 함께 연수비용 지원도 증액된다. 1인당 최고 360만 원에서 400만 원으로 높아진다. 경제 취약 계층을 위한 지원도 늘어난다.
진행) 국내 채용시장의 과제인 미스매칭이 해외취업 현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어떻게 풀까.
최기원) 해외취업의 필수 조건인 언어 능력을 갖춘 학생들은 해외취업보다 한국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을 선호한다.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 해외 리크루팅 업체가 대학을 찾아오는 경우가 있는데 생각보다 학생들의 관심이 높지 않다.
업종별·국가별 구인·구직 불일치 현상, 즉 미스매칭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외국 기업에서 뽑으려는 인재의 조건과 해외취업을 원하는 이의 조건이 맞지 않는다. 한국 기업이 한국에서 일할 중국인을 뽑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정부 지원 프로그램의 포커스가 국내에서 취업이 쉽지 않은 이들에게만 맞춰져 있는 것도 문제다. 상위권의 우수한 인재를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우만선) 미스매칭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금전 문제다. 미국, 호주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든다. 임금으로 충당하기 힘든 경우가 생긴다. 연수 기간에는 자비로 생활해야 한다. 이는 다양한 구인처 풀(pool)을 확보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언어 문제도 크다. 언어 능력과 별 관계가 없는 직종을 확보하려고 하면 취업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언어 능력은 해외취업을 위한 기본 조건이다.
최기원) 미스매칭은 전공이나 직무의 연관성에서도 발생한다. 인문계 전공자는 특정 기술직군에서는 일을 할 수 없다. 언어에다 직무 능력까지 갖춰야 하기 때문에 해외취업이 쉽지 않은 것이다. 언어 능력뿐 아니라 직무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한국에는 1만 개의 일자리가 있지만 미국엔 10만 개가 있다. 직무 중심의 사회로 바뀌지 않고서는 미스매칭을 해소하기 어렵다. 대학과 머리를 맞대고 이런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 강좌 개설도 좋은 방법이다.
김진현) 캐나다에선 취업 연수를 통해 하이레벨의 일자리를 잡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취업한 후 현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다. 그 나라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경쟁력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일을 하며 학교에 다니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졸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캐나다 이민법의 특징이 대학을 졸업하면 3년 취업 비자가 나오고 1년만 일하면 영주권을 준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잘 활용하면 수준 높은 일자리로 점프를 할 수 있다. 천천히 스펙을 올리며 현지에 적응하는 게 현명하다.
김정훈) 한국 청년들은 화이트칼라를 선호한다. 영어권 국가는 그렇지 않다. 연봉 1억 원을 받는 배관공이 수두룩하다. 기술 관련 직종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경쟁이 치열한 직종의 전문 기술자를 해외로 보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고소득과 함께 영구 정착도 가능하다.
진행) 해외취업 지원 제도의 개선점은 없나.
김진현) 공단의 연수 프로그램이 국내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언어 교육은 해외와 국내의 차이가 아주 크다. 하지만 비용 등의 문제로 해외 중심의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기원) 우선 해외취업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이다. 정보 없이 어떻게 비전을 펼칠 수 있는가. 특히 남학생은 군대에 다녀와 취업을 하자면 결혼 적령기에 들어간다. 해외취업이 비전의 실현이 아니라 스트레스로 다가갈 수 있다.
중장기 비전을 심어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대학에 해외취업의 ‘문화’를 만들어주는 게 시급하다.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도 꿈을 펼칠 수 있다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마인드 트레이닝이 있어야 한다.
우만선) 사실 물량 채우기식 밀어내기가 걱정될 때가 간혹 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청년들이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경우가 그렇다. 대학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본다. 각 대학의 취업률에 해외취업도 포함시켜야 한다.
지자체의 관심도 필요하다. 대학, 지자체, 공단이 힘을 합친다면 해외취업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미 공단은 연수비 지원, 지자체는 체재비 일부 지원, 대학은 항공료 일부 지원 등의 형태로 협업이 이뤄지고 있다. 경기도, 대전, 부산 등이 참여 중이다.
김정훈) 비용이 큰 문제다. 해외취업 연수에 지원하는 이들 중 항공료, 체재비 등 모든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고 오해하는 이가 적지 않다. 교육비만 지원된다는 걸 알고 포기하는 이도 있다. 대학과 지자체의 지원 규정도 까다롭다.
지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대학 졸업 2년 이내인 자, 해당 지역에 주소지가 등록된 자여야 한다. 지원 범위를 좀 더 확대했으면 좋겠다. 체류 비용이 덜 드는 방안도 연구가 필요하다. 미국, 일본, 캐나다, 호주 등은 한국보다 체재비가 많이 든다.
김미향) WEST(한미 대학생 연수취업)나 해외취업 연수 프로그램을 보면 질적인 면보다 양적 지표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 내실을 다질 수 있는 정책을 추진했으면 한다. 해외취업 연수를 선착순 개념으로 지원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어학 점수, 자격증 등 지원자의 노력이 선발에 반영됐으면 한다.
홍경환)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지원자 중에는 연수기관이 당연히 취업을 시켜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가 많다. 직장 경력자 중에서 나이 제한을 두고 선발하는 건 어떨까. 또 연수기간 중에 언어 능력만 배우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직무 능력은 뒷전이다. 개선이 필요하다.
김진현) 불성실한 태도나 준비가 안 된 지원자에게 패널티를 주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연수생은 국민 세금으로 수백 만 원의 교육비를 지원받는다. 그런데 당연히 취업까지 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가 꽤 많다.
어렵게 잡은 면접조차 펑크내는 사람을 취업시키는 재주는 없다. 그런데 연수기관은 이런 사람을 제재할 권한이 없다. 가령 전체 인원의 5%를 탈락시킬 수 있는 통제권만 있어도 무개념 지원자는 줄어들 것이다.
김정훈) 연수를 하다 말고 ‘그만둔다’는 사람을 잡을 방법이 없다. 해외취업이 목적인데 결국 아무것도 아닌 셈이 된다. 세금을 환수할 방법도 없다.
진행) 성공적인 해위취업을 위한 조건이 있다면.
홍경환) 원하는 직무, 일하고 싶은 나라에 대한 정보와 방법만 알고 있다면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에는 1~2년 국내 기업에서 일한 후 해외의 글로벌 기업을 경험하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가 많다. 나도 대학 때부터 중국을 염두에 두고 언어 공부 등을 해왔다.
계획을 세워서 차근차근 준비하면 어려울 게 없다. 문제는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다.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할 때도 느꼈는데, 스스로 준비를 하지 않고 남이 무언가 해결해주길 바라는 사람이 꽤 있었다. (홍경환 씨는 건국대 전자공학과 졸업 후 LG디스플레이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한국산업인력공단 해외취업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연수를 마친 후 오라클시스템 차이나에 지원, 테크놀로지 애널리스트로 입사가 확정됐다. 1월 중 베이징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김진현) 캐나다, 호주, 미국 등 영어권 국가를 선호하는 것은 임금 수준이 높고 영어라는 언어의 가치 때문이다. 하지만 취업의 여건은 그리 좋다고 볼 수 없다. 캐나다의 경우 글로벌 경제위기 전까지만 해도 단기 취업자들도 80% 이상 장기 취업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렵다. 대신 이민법이 바뀌었다. 젊은 유학생이 공부를 하면 취업의 기회를 주고, 이어서 이민까지 허용하는 프로세스다. 게다가 최근 ‘오일샌드’가 각광받으면서 일자리가 크게 늘고 있다. 캐다나 취업은 크게 두 가지 목적으로 보면 된다.
첫째는 캐나다에 정착하기 위한 목적이다. 예컨대 캐나다의 유치원 교사는 한국보다 좋은 대우를 받는다. 캐나다에서 각광받는 직업으로 일하며 영주권을 받아 정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두 번째는 스펙 업그레이드 차원이다. 영어 능력과 함께 커리어를 향상시키겠다는 계획도 좋다. 다시 국내로 돌아가 큰 기업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진행) 해외취업을 원하는 청년들에게 조언 한마디.
홍경환) 먼저 취업에 성공한 선배들을 찾아가볼 것을 권한다. 인터넷 정보보다 선배에게서 받는 멘토링이 훨씬 값지다.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한다는 자세도 필요하다. 발로 뛰는 노력을 해야 한다.
김정훈) 해외취업이 탈출구가 아니다. 도전한다는 자세가 아니면 십중팔구 실패한다. 능력이나 열정이 동반되지 않으면 다시 보따리를 쌀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취업이 힘든 사람은 해외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철저한 준비와 적극적인 마인드가 필수다.
우만선)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목표를 세워서 준비해야 한다. 국가 정보는 물론 원하는 직종에 대한 지식 등을 미리 갖추고 지원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언어 능력이 중요하다. 기본이다. 정부가 청년들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만큼 철저한 준비로 모두 성공적인 취업을 했으면 한다.
진행 박수진 기자 sjpark@hankyung.com│정리 이재훈 인턴기자│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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