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은의 달콤살벌 연애 코치

한창 연애 중인 커플들이 서로에게 전화를 하면서 빼놓지 않고 하는 질문 중 하나는 “지금 어디야?”라는 말일 것이다. 보고 싶은 사람이 곁에 없으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한 건 당연한 일.

하지만 연애 초반의 설렘이나 서로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조금씩 사그라질 때쯤엔 이 문장이 사뭇 다른 뉘앙스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서로에 대한 콩깍지가 벗겨진 다음에는 그저 한없이 갑갑한 통제와 구속으로 느껴진다는 거다.

때로는 이 한마디가 빌미가 돼 큰 싸움을 하고, 그러다 결국 헤어지는 커플도 심심찮게 있으니 “지금 어디야?”라는 말 한마디의 위력이란 결코 가볍지 않다.
[Love] 사랑이란 이름으로 구속하고 있나요?
하지만 초반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가 중반이 되면 문제가 되는 말이라면, 애초에 해서는 안 되는 무엇을 우리가 하고 있었다는 증거는 아닐까. “지금 어디야?”라는 말은 그저 뜨거운 관심의 표현일 수 있지만, 사실은 그 안에 ‘내 눈앞에 없으니 네가 지금 어디서 누구와 뭘 하는지 나한테 모두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결코 지고지순하게 한 사람을 바라보도록 프로그래밍돼 있지 않다. 그 사실을 우리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우리는 상대방이 정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끊임없이 물어보고 싶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이에게 ‘무한 자유’를 허하라

하지만 슬프게도 내가 사귀고 있는 그 사람이 나 몰래 어떤 일을 꾸미고 있는지, 내가 없을 때 다른 이성들 앞에서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100% 확인할 방법은 없다. “지금 어디야?”라고 물었다고 해서 상대방이 온전히 진실만을 답할 리도 없고, 제아무리 화상통화나 ‘오빠 믿지’ 애플리케이션 같은 첨단 장비를 동원한다고 해도 마음만 먹는다면 빠져나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침대에 누워서 한 시간씩 통화하고 전화로 진하게 뽀뽀까지 나눈 내 남자친구가 전화를 끊자마자 옛 연인의 전화를 받고 술 마시러 갈 수도 있고, 지하철 타기 전에 살갑게 포옹하고 헤어진 내 여자친구가 지하철에 오르자마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섬뜩하겠지만 모두 실화다).

둘이서 함께 지리산 중턱에 초가삼간 짓고 들어가 자급자족 라이프를 꾸리며 24시간 붙어 지내지 않는 이상 언제든 내 애인이 다른 이성과 ‘사고를 칠’ 가능성에 대해 절대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결론은 이미 나온 것 같다. 지구 위에 다양하고 매력적인 이성이 넘쳐나는데, 내 애인이 나만 바라보고 나만 사랑해 마지않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과한 욕심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 중에 나를 선택했고,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위대하고 고마운 일 아닐까. 시시때때로 상대의 위치를, 귀가 시간을, 저녁식사의 동석자를, 주말 스케줄을 파악하는 것이 애인의 권리라고 믿는 순간부터 그 관계는 조금씩 멀어진다.

지금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무엇을 하는지 절대 묻지 마라. 묻지 않는다면 오히려 상대방이 먼저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싶어할 것이다. 어디냐고, 왜 이 시간까지 밖에 있느냐고 물을수록 ‘난 너를 못 믿겠어’ ‘난 내 사랑에 자신이 없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진다.

눈앞에 없으면 없는 대로 자신만의 충실한 시간을 가지는 사람이 되어야 둘의 관계가 풍요로워진다. 이제부턴 사랑하는 이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는 통 큰 연애를 하자. 당신이 준 무한한 자유를 못되게 사용하는 사람이면 어차피 구속해도 떠나갈 사람이다.
[Love] 사랑이란 이름으로 구속하고 있나요?
곽정은

‘코스모폴리탄’ 피처 에디터이자
연애·성 칼럼니스트.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는 전략이었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