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두 가지 일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일단 능력이 뛰어나야 하고, 열정 또한 필요하다. 특히 두 가지 분야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하지만 이런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날려버린 인물이 있다.
[인터뷰] ‘마법의 성’ 김광진을 만나다
바로 ‘마법의 성’ ‘여우야’ ‘편지’ ‘동경소녀’ 등 히트곡을 부른 김광진(46)이다. 하지만 그가 여의도의 이른바 ‘잘 나가는’ 펀드매니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동부자산운용의 투자전략본부 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가 본격적으로 음악의 길에 뛰어든 시점이 증권가에 입성한 후라는 것이다.

국민 노래라고 불릴 만한 ‘마법의 성’도 그가 삼성증권에서 일하고 있을 당시 부른 것이다. 한 가지 분야에서 성공하는 것도 힘든데 그는 증권맨으로서 음악인으로서 모두 성공 가도를 달렸고, 현재도 그러하다. 지금은 재충전을 위해 잠시 음악 활동을 쉬고 있다는 김광진. 그를 서울 여의도 동부자산운용 본사에서 만났다.

Q. 언제부터 음악에 가까워졌는지요.

[인터뷰] ‘마법의 성’ 김광진을 만나다
A.
어렸을 때 7남매로 자랐는데, 어머니가 음악 쪽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모두가 악기를 다룰 수 있었고요. 형이나 누나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자주 들었던 게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저는 악기를 잘 다루지는 못했는데, 대중음악 쪽에 관심이 많아 기타를 배웠어요. 중학교 때 가수나 작곡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당시에는 실용음악과가 없었으니까 혼자서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저 노래를 많이 듣고 노력했죠.

대학에 들어와서는 학교 앞 카페에서 노래 발표회를 갖기도 했어요. 하지만 가수가 될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죠. 연세대 상경대 가요제에서 1등을 하고, 3학년 때 전체 가요제에서 1등을 했어요. 4학년 때 백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행사에서도 1등을 했어요. 2등을 한 사람이 김창기(그룹 ‘동물원’·의사)였고, 3등이 안치환이었어요. 신기하게 3명이 나중에 모두 가수가 됐죠.

Q. 연세대 경영학과 82학번으로 알고 있는데요.

A.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사실 목표를 정해놓고 가기도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가기도 하잖아요. 형님 중 한 분이 연세대 출신이었는데 그 형님이 연세대에 가라고 해서 갔던 거예요. 지금 생각해도 많은 대학 가운데 연세대가 제일 어울리는 것 같아요.

Q. 대학생 시절 학회나 스터디 모임을 했었나요.

A. 학회에서 잠깐 활동한 적은 있어요. 그런데 저와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그만뒀어요. 영어회화 동아리에도 들어갔었는데 여기서 문단열(성신여대 교수) 씨를 만나기도 했어요.

Q. 대학 때는 주로 어떤 고민에 빠졌었는지요.

A. 항상 음악에 대한 생각이 많았어요. 어떻게 하면 음악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했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어요. 대학가요제에 나가기도 했지만 항상 예선에서 탈락했죠. 유학도 고민이었는데 석사를 공부하고 싶은 생각에 준비를 했고 좋은 결과가 나와서 MBA(미시간주립대 경영학)에 갈 수 있었죠.
[인터뷰] ‘마법의 성’ 김광진을 만나다
Q. 증권맨의 길을 걷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A. 아무 생각 없었어요(웃음). 증권이나 파이낸스 계통에 대해 특별한 목적의식은 없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마케팅이나 광고 쪽이 저한테 어울리는 직업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당시에는 증권 쪽이라고 하면 왠지 멋있어 보이고 돈도 잘 벌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시작했고 계속 하고 있는 거죠.

Q. 펀드매니저로서 또 뮤지션으로서 모두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데, 제한된 시간 안에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A. 점점 게을러지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여러 일을 함께하다 보면 산만해지는 경우도 많은 것 같고요. 하지만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유학생활 때 공부할 것이나 과제가 많았는데 잠을 줄여서 하기에는 체력이 많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잠은 충분히 자고 깨어 있을 때 집중하려고 노력했죠.

가수로 성공한 것에는 운도 조금 작용했던 것 같아요. 가수로 성공했을 때가 삼성증권에 다니고 있을 때인데, 당시 일을 하면서 가수를 한다는 것이 쉽게 통용되는 사회 분위기는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마침 ‘삶의 질’ 이야기가 나왔고, 앨범도 히트하면서 회사에서도 인정해주는 분위기였어요.

Q. 1998년도에 잠시 증권가를 떠나기도 했는데요.

[인터뷰] ‘마법의 성’ 김광진을 만나다
A.
그때 터졌던 외환위기 탓에 사회가 전체적으로 어려웠었어요. 그래서 저도 좀 힘들었고, ‘차라리 다 접고 음악만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여의도에서 나왔는데, 결과적으로 그리 좋진 않았어요. 그래서 다시 여의도로 돌아왔죠.

Q. 펀드매니저와 뮤지션을 병행하는 이유가 있는지요.

A. 두 가지 다 잘될 수 있고 안 될 수 있는데요, 포트폴리오 차원이 조금 있는 것 같아요(웃음).

Q. 두 가지 일의 공통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A. 일단 대중의 생각을 읽어야 한다는 부분이 닮은 것 같아요. 주식 같은 경우 정말 좋은 회사라도 사람들이 이 회사를 좋아해줘야 하는데, 뮤지션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저는 음악을 할 때 대중의 생각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주관을 많이 관철하는 편이에요.

Q.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

A. 많은 사람, 특히 음악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저보고 좋아 보인다고 말씀을 하세요. 그런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에 감사하다는 마음이 가끔 들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길이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거든요.

‘마법의 성’으로 성공하긴 했지만 그 이후 실패한 적도 많고, 그러면서 음반 판매량도 계속 신경 쓰게 됐고요. 또 직장생활에서도 성과를 많이 내고 열심히 했어도 ‘쟤는 언제든 가수를 하지 않을까’ 하는 주변 인식 때문에 약간 불이익을 받았던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일을 해서 좋았던 것 같아요. 관심 있는 것들을 해나가면서 얻는 경험들도 소중한 것이죠. 그러다 보면 기회를 얻는 경우도 많고요. 음악을 예로 들면 충분히 좋은 실력을 가진 뮤지션이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언젠가 좋은 음악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 해나가다 보면 기회가 꼭 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김광진

1964년 인천 출생. 1982년 연세대 경영학과 입학. 1989년 장은투자자문 입사. 1991년 한동준의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로 작사 및 작곡가 데뷔. 1992년 솔로 앨범 ‘Virgin Flight’ 발표. 1994년 삼성증권 재직 시절 더 클래식 결성, 1집 ‘마법의 성’ 발표. 1995년 더 클래식 2집 ‘여우야’ 발표. 2002년 4집 ‘Solveig’ 발표, 동부자산운용 입사. 2008년 5집 ‘Last Decade’ 발표. 현재 동부자산운용 투자전략본부 본부장.

양충모 대학생 기자 gaddjun@gmail.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