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

살짝 해진 청바지, 아이폰, 베르사체 뿔테 안경, 데이비드 베컴의 소프트 모히칸 헤어스타일 … 누가 떠오르는가. 20대 초식남? 30대 엣지남? 다 틀렸다. 올해 우리 나이로 환갑을 맞은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의 평소 모습이다.

‘디자인 구루’라 불리는 세계적 산업디자이너인 그에게 나이는 아무 의미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김영세라는 사람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함을 가진 크리에이터(creator)이자 이매지너(imaginer)라는 점.

요즘 그는 젊은이들과 자주 소통한다. 트위터와 강연 덕분이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한 후 팬(?)도 부쩍 늘었다. 이 때문에 이 시대 청춘들이 처한 상황과 진로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상상력, 창의력의 대명사가 된 김 대표를 만나 ‘김영세식 인생 일구기’에 대해 들어봤다.

“스무 살 때 제 계획은 ‘나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었죠. ‘디자인 회사를 창업해 미국에서 성공하고, 그것을 한국에 갖고 들어와 디자인의 뿌리를 내리게 하겠다’는 아주 구체적인 내용이었어요. 그리고 지금 그 계획 그대로 살고 있습니다.”

스무 살의 김영세는 엄청 노는 날라리였다. “공부 빼고 뭐든지 열심히” 했다고. 같은 미대생이었던 김민기(학전 대표)와 ‘도비두(도깨비 두 마리라는 뜻)’라는 듀엣을 결성해 노래를 부른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무작정 놀기만 한 젊은이는 아니었다. 속으로는 수십 년에 걸친 삶의 여정을 그리는 진중함이 있었다. 바로 디자인 회사 CEO로, 산업디자이너로 성공하겠다는 꿈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이 재미있다.

“디자인 회사를 세워서 성공하는 과정이 굉장히 재미나겠다, 쿨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상상을 하면 막 신이 났지요. 그래서 좇아간 것이지, 다른 계기는 없었어요. 만약 시험에 합격하고, 박사 학위를 받고,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면 안 했을 겁니다. 따분한 일은 지금도 싫어하거든요.”

‘세계 10대 디자인 회사’ 만든 스무 살 때 꿈

스무 살 김영세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자청한 것이기에 보람도 크다. 특히 디자인 불모지 출신으로 세계의 찬사를 받는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성공 스토리는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미국 실리콘밸리 팔러알토에 있는 이노디자인 USA는 1986년에 설립했다. 이후 한국과 중국에 법인을 내고 한국인이 설립한 디자인 회사로는 유일하게 세계적인 인지도와 경험을 갖춘 디자인 컨설팅사로 성장했다. 지난해 6월, 일본 닛케이BP는 이노디자인을 ‘세계 10대 디자인 회사’로 선정했다.

김영세라는 이름은 내로라하는 세계 디자인상을 휩쓸면서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그가 디자인한 mp3 ‘아이리버 H10(레인콤)’을 두고 빌 게이츠가 “디지털라이프 시대를 선두에서 열어가고 있다”고 칭송한 일이다.

최근 이노디자인은 제품 디자인뿐 아니라 비즈니스 전반에 대한 토털 디자인으로 컨설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올 하반기엔 자동차 디자인 데뷔도 앞두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김 대표가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꼭 해보고 싶은 일’ 가운데 하나다.

아시나요? ‘잡’과 ‘커리어’의 차이를
“먹고 살려면 잡(job)을 잡아야 합니다. 하지만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려면 커리어(career)를 만들어야 해요. 젊은 친구들이 그 차이에 대해 깊이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김 대표는 잡과 커리어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또 직업을 대하는 태도와 문제점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지적을 이어갔다. 그가 요즘 가장 답답하게 여기는 점이 바로 젊은이들의 진로 선택 태도다.

“왜 직장에 다니느냐고 물어보면 나중에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라고 답하는 사람이 참 많아요. 당장 먹고 살아야 하니까 취직을 하는데, 정작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다는 거죠.
이건 CEO 입장에서 들으면 참 당황스러운 말입니다. 현재 직업과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따로 분리된 사람에게 어떤 재능과 성과를 기대하겠어요? 반대로 처음부터 ‘하고 싶은 일’을 하면 개인과 기업, 사회 전체에 좋은 영향을 주지요.”

그가 말하는 ‘커리어’는 하고 싶은 일, 꿈꾸는 일을 말한다. 그러나 커리어에 도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줄 서서 학교에 진학하듯 20대가 되어서도 줄 서서 취업의 길에 나서는 게 일반적이다. 그는 “이런 사람들이 모인 기업은 경쟁력을 높일 수 없고, 개인 역시 불행한 직장 생활로 시간을 낭비하는 셈”이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갈지자로 걸으면서 꿈을 찾아보라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그가 내놓은 해답은 “갈지(之)자로 걸으며 네 꿈을 찾아라”.

“앞에 놓인 길을 반듯하게 걷는 사람과 갈지자로 가는 사람. 둘 중에서 후자가 멋있는 사람이죠. 남들이 못 보는 걸 갈지자로 걸으면 보입니다. 갈지자로 걸으면서 진짜 하고 싶은 일, 꿈꾸는 일을 찾아보세요. 무엇보다 그걸 먼저 해야 합니다.”

김 대표는 ‘안전한 길’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라는 주문도 덧붙였다. “튀지 마라, 앞장서지 마라”는 부모의 당부를 떨쳐버리라는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잡(job)에 집착할 게 아니라 넓은 세상에서 큰 꿈을 꾸어보라는 조언이다.
“취업 준비 때문에 바쁘다는 소리 들으면 정말 안타까워요. 그렇게 준비해서 하려는 일이 10년, 20년 후에도 하고 싶은 일인가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그렇게 공들여 준비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도전은 그 자체로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건 과거의 사고방식이죠. 앞으로는 창의적인 일에 도전하는 사람이 큰 성공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가 이렇게 역설하는 배경에는 세계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2000년 이후 양적 성장 중심의 한국형 경제발전 모델은 끝났다고 보는 게 그의 시각이다. 세계 경쟁력 게임에서 살아남으려면 창의적인 역량,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땀 흘려 일하는 것과 미친 것처럼 일하는 것. 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미 세상 곳곳에서 답이 쏟아지고 있잖아요? 스티브 잡스, 제임스 카메론, 김영세가 답이죠.”

평생을 20대로 사는 남자

그는 올 초부터 트위터(twitter.com/youngsekim)를 시작했다. 아이폰으로 글 쓰고 피드백을 접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5월 24일 기준 팔로어(followers) 수는 7156명. 주말에는 트위터로 시간을 보낼 만큼 열성이 대단하다.

“재미만 있는 게 아니라 보람을 느껴요. 누군가 저에게 트위터가 뭐냐고 물었는데 ‘트위터는 강연장’이라고 답했어요. 1 대 다수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이라는 의미죠. 생생한 교감이 있어서 참 좋습니다. 배우는 게 많아요.”

김 대표의 트위터에선 다양한 주제의 소통이 이뤄진다. 디자인 이야기는 기본. 최근에는 잡, 커리어, 경영, CEO 컨설팅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트위터를 통해 그의 관심 분야가 계속 커지고 있는 셈이다.

그의 트위터는 20~30대 팔로어 비중이 높다. 다양한 질문과 답이 오가면서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이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세대 차이는 전혀 못 느끼는 눈치다. 아니, 그는 자신이 지금 20대를 살고 있다고 ‘고백’했다.

“20대의 김영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아… 제가 벌써 20대를 다 보냈나요?”

농담 같은 그 말에 많은 의미가 포함돼 있음을 인터뷰 말미에 알 수 있었다. 그가 가진 창의력과 패기, 도전 정신은 20대의 그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김영세

1950년 생
서울대 산업디자인학과 졸업
미국 일리노이대 산업디자인과 석사
미국 두퐁(Du Pont) 디자인 컨설팅
미국 일리노이대 산업디자인과 교수
1986년 이노디자인 USA 설립
1999년 이노디자인 코리아 설립
2004년 이노디자인 베이징 설립

수상 : 미국산업디자이너협회(IDSA), 레드닷디자인어워드(독일), iF디자인어워드(독일), 한국산업디자인상(KAID), 굿디자인어워드(일본) 등 다수
저서 : ‘12억짜리 냅킨 한 장’ ‘트렌드를 창조하는 자, 이노베이터’ ‘다음 세상을 지배하는 자, 이매지너’ 등 다수


김영세의 새로운 프로젝트


전기자동차·자동차 공장 디자인에 도전
범위의 제한 없는 전방위 디자인 컨설팅을 선보이고 있는 이노디자인이 요즘 공을 들이는 프로젝트는 전기자동차다. 전기차 전문업체인 CT&T(대표 이영기)가 1990년대 출시된 스포츠카 엘란을 전기차로 부활시키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 내년 출시가 목표다.

이와 함께 하와이에 추진 중인 전기차 공장 설계와 디자인에도 참여한다. CT&T 하와이 전기차 공장은 10만 평방피트(2810평) 규모의 전기차 조립공장과 쇼룸, 리조트 단지가 포함된 친환경 공장이다. 김 대표는 “기존 자동차 제조 시설과 전혀 다른, 혁신적인 시도를 선보일 것”이라며 “하와이 관광객이라면 모두 한 번씩 찾는 랜드마크로 만들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남다른 아버지 김영세. 두 자녀는 무슨 일을 할까?
“부모님이 아무리 하지 말래도 그만둘 수 없는, 신이 나서 미친 듯이 할 수 있는 일. 그 일을 찾는 게 우선이다.”

김영세 대표는 ‘가장 재미있게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말한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산업디자인을 하겠다고 할 때 그의 부모는 강하게 반대했다. “그거 해서 먹고 살겠냐”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그때 구상(?)했던 그대로의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두 자녀는 어떨까? ‘역시나’ 그 아버지의 그 자녀다.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냈고, 그 결정에 부모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큰딸 김수진(30) 씨는 나이키의 ‘세계 요가 홍보대사’로 활동 중이다. 전직은 금융 전문가. 미국 UCLA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LA에 있는 투자관리회사에서 남부럽지 않은 경력을 쌓다가 ‘진정 원하는 일’ 요가를 만나 인생의 항로를 바꾸었다.

둘째 김윤민(26) 씨도 자신이 원하는 뮤지션의 길을 걷고 있다. ‘MYK(마이클 윤민 킴)’라는 예명으로 인기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명예 멤버로 활동 중이다. 랩 실력이나 악기 연주 실력이 출중해 마니아 팬이 적지 않다.

그는 두 자녀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을 숨기지 않았다.

“멀쩡한 직장 버리고 대중음악 하겠다는 걸 어떻게 허락할 수 있느냐는 반응이 많아요. 제겐 정말 기쁜 일인데 이해를 못하더군요. 정말 비극은 ‘아빠, 나 뭐하면 될까요?’라고 묻는 거예요.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만큼 축하할 일이 어디 있어요?”

박수진 기자 sjpark@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doon1549@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