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마추픽추. 해발 2430m에 위치한 이곳은 잉카 문명의 고대 도시로 유명하지만, 오르기가 만만치 않은 곳으로도 이름을 떨치는 지역이다. 그런데 최근 이 험난한 마추픽추 등정은 물론이고 리마, 쿠스코 등을 돌아보는 빡빡한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네 명의 장애 청년들이 화제다. Q. 어떻게 페루까지 다녀올 생각을 했나요?
호종윤 : 다들 자주 보고 친하게 지내요. 그런데 어느 날 다른 장애 청년들이 킬리만자로를 등정한 것을 보고 ‘평생에 한 번쯤은 우리도 저런 거 해보면 어떨까’라고 제안을 했죠. 저도 그렇고 다들 처음엔 ‘우리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지만, 갔다가 그냥 내려오더라도 잊지 못할 추억 하나 만들자는 생각으로 도전하게 됐어요.
안태운 : 힘들었는데 그랬기 때문에 더욱 보람이 있었어요. 이를 계기로 앞으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고요.
진세영 : 시간이 나면 주로 기숙사에 누워 있던 편이었는데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선뜻 페루행에 동의했어요. 다녀온 이후로 확실히 활동 반경이 넓어졌죠.
안태현 : 집에 조용히 있는 걸 좋아했는데 도전하고 나서 성격이 꽤 밝아졌어요. 내년엔 배낭여행을 계획할 정도로요.
Q. 이번 여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안태현 : 고산병이 심해서 일정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평소에 운동을 좀 하는 편이라 잘할 거라 생각했는데도 힘들더라고요. 어지럽고 손발이 찌릿하면서 부어오르고…. 아, 심한 변비로 고생하다 한 번 신호가 왔는데 화장실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30분 내려가서 일을 보고 다시 30분 올라온 적도 있지요.
호종윤 : 아무래도 마추픽추에 올라갔던 게 기억에 남아요.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정도로 장관이에요. 버스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고 3~4일간 계속 걷기만 하는 등 저희들로서는 힘든 여정이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어요.
Q. 고학년이라 학업, 취업 준비 등으로 바쁠 것 같은데요.
진세영 : 2년 전 친형과 함께 실내포차를 창업했어요. 현재도 성업 중이고요. 하지만 이 일을 계속하기보다는 원래 제 관심 분야인 마케팅이나 인사 쪽 업무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학점 관리, 영어, 공모전 등 남들에 뒤처지지 않게 열심히 준비 중이에요.
호종윤 : 정부에서 하는 사회적 기업 육성사업에 참여하고 있어요. 장애청소년이나 저소득층 멘토링 사업,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토크콘서트 등을 진행하는 일이죠. 사실 최근 내로라하는 한 대기업에 합격했어요. 바라던 기업이기도 해서 기쁘지만, 장기적으로는 마케팅과 CSR을 접목한 업무를 하며 사회적 기업가로서 성장해 나가고 싶어요.
안태현 : 학업 연장, 취직, 사업 등 여러모로 고민을 하고 있어요. 비장애인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고민이라 할 수 있겠지만, 성인이 된 후 후천적 장애를 겪은 터라 제겐 심사숙고할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Q. 부모님과 주변에서는 어떤 조언들을 해주나요?
진세영 : 부모님은 저를 믿어주시고 제 선택을 지지해주시는 편이에요. 취업이든 창업이든,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 저를 지켜봐주시는 거죠. 주변에서도 제가 장애가 있다고 해서 특별히 조언을 해주는 것은 없어요. 오히려 그런 게 더 이상하죠. 사실 각자의 꿈을 이뤄가는 데 다를 게 뭐가 있겠어요.
안태현 : ‘남들은 어디에 취업했다더라’, ‘연봉이 얼마더라’ 등의 주변 얘기에 부모님도 점점 걱정을 하시긴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 잘 해낼 거라는 믿음으로 저를 대해주세요. 그리고 건강이 제일이라고 등을 두드려주시고요.
Q. 기업이나 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호종윤 : 인턴과 대외활동, 봉사단 등 비교적 많은 경험을 해봤어요. 기업들의 성향 차이가 확실히 존재하더라고요. 그런데 ‘내부 구성원들이 말하는 회사’가 그 회사의 본 모습에 가장 가까운 것 같아요. 이런 정보가 장애인·비장애인 구분 없이 모두에게 쉽게 공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또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울타리가 되어주면 좋겠어요. 한 번 실패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패자부활전’이 활발히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 말이에요.
안태현 : 요즘 취업 재수·삼수생들이 많은데 안타깝게도 대부분 인문계 전공자들이에요. 기업 입장에서는 이공계 출신들을 뽑아야만 하는 상황이 있겠지만 인문 소양을 강조하는 만큼 인문계 학생들에게 취업문을 넓혀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안태운 : 기업 인턴 합격자들이나 신입사원 서류 합격자들끼리 만나보면 열에 일곱은 이공계 학생들이에요. 남은 세 명 중 두 명은 상경계고요. 저는 비록 상경계지만 인문계 학생들에 대한 취업 지원이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장애인들의 상황이 이런데 장애인들은 어떻겠어요.
Q.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호종윤 :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에요. 취업에 있어서도 그저 다른 것일 뿐이죠.
안태현 : 너무 조급해하지 말았으면 해요. 또 아무리 취업이 급해도 하루하루 행복하게 사는 것을 절대 가볍게 여기지 않았으면 하고요. 솔직히 장애를 겪지 않은 사람들이 힘들다고 쉽게 좌절하는 걸 보면 화가 날 때도 있어요.
진세영 : 저학년 때 공부를 열심히 안 했어요. 그래서 지금 바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현실적으로 대학생들에게 최고의 화두는 취업이잖아요. 남들이 하는 건 나도 해야 하는 거예요. 1학년 때부터 학점 관리, 공모전, 영어점수, 인턴 등 차근차근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뭐든지 적극적으로 나서서 했으면 좋겠어요.
안태운 : 장애 청년들은 자신만의 아픔이 있어서 소극적인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밖으로 나왔으면 해요. 찾아보면 장애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굉장히 많아요. 나와서 같이 어울리다 보면 사회에 조금 더 부드럽게 융화될 수 있어요.
글 박상훈 기자 | 사진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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