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복사만 하는’ 인턴의 군상을 다룬 이야기는 많았다. 하지만 실습생에 대해서는 좀체 알려진 바가 없다. 대학생에게 실습은 졸업 전 일정 시간 동안 전공과 관련된 일을 실제 체험해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장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실상은 허드렛일만 하다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또 점심식사조차 지원받지 못해 배를 곯아가며 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이슈체크] 대가 없이 허드렛일만 하는 실습생은 학생일까? 노동자일까?
‘대학생 실습생’이 때 아닌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0월 4일 폐막한 인천 아시안게임의 선수촌 식당에선 300명이 넘는 조리학과 실습생들이 월 50만 원을 받으며 매일 12시간씩 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파장이 일었다.

이보다 앞선 9월 30일 청년유니온이 국회의원 장하나 의원실과 함께 발표한 ‘호텔·관광·조리·외식·식품 관련학과’의 실습 현장 목소리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81개 기업과 25개 대학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조사에 따르면 이들 실습생의 평균 시급은 1684원이었고, 심지어 478원을 주는 곳도 있었다.

2013년 대학알리미의 공시자료에 따르면 전국에서 1일 8시간(주 40시간), 4주(160시간)의 현장실습을 운영하는 학교 수는 총 311개(2012년 기준)였다. 그리고 이들 학교에서 배출하는 실습생은 한 해 11만 명에 육박한다.

전공 커리큘럼에 현장 실습이 포함된 경우가 많다. 의학 및 약학계열과 간호계열, 치공학계열, 미용계열을 비롯해 사회복지학, 호텔경영학 등 서비스 업종부터 기업 실험실에 파견되는 공학계열 실습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학교에서나 현장에서는 실습생을 위한 내실 있는 프로그램이나 지원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각 학과의 실습생들은 “배우는 것이 별로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급에 점심 값 지원도 전무… 실습생 ‘이중고’
“실습하느라 휴대전화 요금도 밀렸어요.” 경기 소재 한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재학 중인 장수현(26) 씨의 말이다. 가정형편이 좋지 못해 평소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던 그는 실습을 나가 있는 한 달 동안 일을 쉬어야 했다. 하지만 실습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은 없었다. 한마디로 한 달간 무급으로 일하다 온 셈이었다.

장 씨의 경우처럼 실습생에게 급여를 주는 경우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연협력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의 ‘현장실습을 지식기술의 목적으로 한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기 힘들다’는 조항 때문이다.
[이슈체크] 대가 없이 허드렛일만 하는 실습생은 학생일까? 노동자일까?
점심 값이나 생활비 지원 역시 거의 없다. 실습장까지의 교통비는 말 할 것도 없다. 지방 거주자의 경우 거주지 인근에서는 실습생을 받아줄 만한 여력이 있는 기관을 구하기가 힘든 것이 현실. 특히 간호학과는 ‘인지도 있는 대형 병원에서 실습을 해야 나중에 취업할 때 유리하다’는 인식이 강해 많은 예비 간호사들이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지만 숙박비가 또 다른 난관이다. 학교에서 숙박비를 지원해주는 경우가 드물어 대부분은 근처 저렴한 고시원에 거주해야 한다.

강원도에서 올라온 간호학과생 A양도 최근 서울의 한 고시원에 입주했다. 하지만 벌이도 없는 마당에 지출해야 하는 생활비만 늘어나 걱정이 많다.

“그나마 방학기간이라 방은 어렵지 않게 구했는데 문제는 비용이에요. 실습 기간은 2주인데 최소 한 달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해서 30만 원을 내고 살고 있어요. 실습한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방값까지 내야 한다니 부담이 크죠.”

오히려 실습비를 내고 실습을 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실습비는 실습 기관에 지급되는데 학교나 학과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10만 원 선이다. 하지만 이 비용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쓰이는지 공개하는 곳이 거의 없다는 것도 또 다른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서울 소재 한 대학에서 조교로 근무 중인 K씨는 “실습 비용으로 11만 원을 학생들에게 청구하는데 지출 내역은 공개하지 않으며 대부분은 점심 값이나 회식 비용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방 소재 대학의 사회복지학과 조교인 L씨 역시 “실습비에 대한 책정 기준은 없으며 해당 기관의 담당자 인건비로 지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습하러 갔는데 “허드렛일이나 해!”
돈을 ‘내고’ 실습을 나가지만 정작 배우는 것은 없다는 반응도 많다. 올 초 양로원으로 실습을 나갔던 A군은 그의 기대와 실제 현장은 많이 달랐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학교에서 배운 ‘교감하는 법’을 체험하는 대신 밤샘 가위질을 하거나 식당 보조로 일하는 것으로 한 달의 실습 기간을 마감해야 했던 것.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은 주로 양로원이나 고아원 등을 방문한다. 하지만 현장에 소소한 일이 워낙 많다 보니 실습생들도 봉사활동을 하러 온 고등학생들과 같이 보조업무만 하다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간호학과도 마찬가지다. 흔히 바이탈(vital) 체크라 부르는 활력 징후 측정이나 침상 정리 및 관찰 등의 업무가 대부분이고 그렇지 않으면 단순 문서 작업을 하는 경우도 많다.

간호학과 실습생 B양은 매일 침상 정리로 하루를 시작해 환자의 병명이나 신상을 엑셀 파일에 입력하는 것으로 일과를 마무리했다.

“인턴에게 복사나 청소 같은 단순 업무만 시킨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간호대생들의 실습 현장도 비슷해요. 특히 간호 업무는 기술이 중요해서 실습 시간이 교과과정에 포함돼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병원에서 잡무만 하다 보면 나중에 진짜 간호사가 됐을 때 어떤 도움이 되겠어요.”

C양도 비슷한 환경에서 근무했다. 현장 간호사들이 잡무를 실습생들에게 떠넘기다 보니 힘들게 일하면서도 정작 일다운 일을 배우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는 “현업 간호사들이 업무가 바빠 실제 처치 현장에 참관할 수조차 없었고 궁금한 게 생겨도 물어볼 수 없어 아쉬웠다”고 전했다.


“실습생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라!”
김영경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우선 학교에 최대한 지원을 요구하는 게 급선무라고 조언한다. 비용뿐 아니라 학교 섭외나 거주비 지원 등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 김 위원장은 “실습의 기본 필요조건인 교통비, 식비도 제공되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면서 학생들이 먼저 “경제적 지원을 해달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반값등록금국민본부 공동집행위원장)도 “교육과 노동의 중간 상태에 있는 실습생을 위한 보호제도가 시급하다”며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하는 대학 실습생 문제는 인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하경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위원) 역시 “현재 대학생 실습장은 교육현장이 아니다”라며 “실습은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학원 가서 하루 종일 칠판을 닦는 걸 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유지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많은 병원이 간단한 업무는 인력을 충원하는 대신 실습생으로 대체하고 있다”며 “이는 실습생들의 교육환경 악화는 물론 환자에 대한 서비스 측면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의 제도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 이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