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 발달 정도를 나타내는 IQ. 감성 지수를 나타내는 EQ. 그리고 꼴통 지수를 나타내는 ‘꼴Q’. 흔히 ‘꼴통’은 머리가 나쁜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지만, 이 페이지에서만큼은 ‘평범한 것을 거부하며 자신만의 올곧은 신념으로 살아가는 이들’이라 정의하도록 한다. 용기, 패기, 똘끼로 단단하게 굳어져 남들의 비웃음이나 손가락질에도 흔들림 없는 이 시대의 진정한 ‘꼴Q'를 찾아서…. 당신의 ‘꼴Q’는 얼마인가요?


‘이번 삶은 비정규직’이라며 이불 속에서 하이킥을 날리던 그녀들. 더 이상 꽃다운 청춘을 이렇게 낭비하지 않기 위해, 한 번 사는 인생을 재밌게 살기 위해 반기를 들었다. ‘잼있는 인생’을 위해 ‘잼’을 팔기 시작한 그녀들의 웃픈 이야기.
[꼴Q열전] 인생이 노잼이라 잼을 만들기 시작했다. 잼있는 인생
“내 인생은 항상 잼처럼 쳐 발리지만 퍽퍽한 식빵 같은 인생에 달달함을 더해주는 거겠지. 역시 잼있는 인생이 잼이지지. 이런 잼장”(이예지, ‘잼있는 인생’)

비정규직 삶에 회의를 느끼던 이예지(서울여대 경영 졸) 씨가 서러움과 한을 담아 끼적였던 자작시. 이 한 편의 시가 그녀는 물론, 얌전히 취업 준비하던 최만득(동국대 국제통상 08) 씨의 인생까지도 몽땅 바꿔버리는 사단을 내고야 말았다는데….

“인턴, 인턴, 인턴. 이번 생은 비정규직의 연속이더라고요.(웃음) 답답한 마음에 ‘잼있는 인생’이라는 시 한 편을 썼죠. 만득이에게도 이 시를 들려줬어요. 그랬더니 ‘우리가 잼을 만들면 재밌겠다’며 바로 잼을 만들고 SNS에 인증 샷을 올리더라고요.”

취업 준비에 지쳐 있던 예지 씨와 만득 씨는 그렇게 삶의 소소한 재미를 찾아 ‘잼’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만든 잼을 지인들에게 선물이나 하고 말려 했다. 하지만 달콤한 과일 향 가득한 잼을 만들면서 취업 준비에 우울해진 기분이 풀리니 잼 만들기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만득 씨가 “나는 이제 잼을 팔 거다”라며 면접장을 박차고 나오면서 둘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던 ‘비정규직 인생’의 막을 내리고, 본격 명랑모험활극 ‘괜찮아, 사장이야’의 서문을 열게 된 것이다.

“만득이가 예전에 인턴으로 근무했던 회사에서 오퍼가 왔는데, 비정규직으로 채용을 하겠다는 거예요. 제가 그 얘길 듣고 분노하면서 ‘하지마! 잼 팔아!’라고 했는데 정말로 면접장에 가서 잼을 팔 거라고 했대요.(웃음) 그래서 ‘내가 만득이 인생을 망쳤구나’라는 생각에 책임감을 갖고 본격적으로 잼을 만들어 팔기로 결심했죠.”
[꼴Q열전] 인생이 노잼이라 잼을 만들기 시작했다. 잼있는 인생
‘피치 못할 복숭아잼’, ‘자두자두졸려 자두잼’
처음에는 자신감 가득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고 보니 식품 사업이라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제조장, 시설 등 각종 허가를 받는 것이 꽤 까다로웠고 구청, 식약청에서 받아야 할 검사도 상당했다. 두 명의 여대생이 돈 없이 헤쳐 나가기에는 무시무시한 관문들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평소 알고 지내던 ‘청년장사꾼(청년들의 창업을 돕고 상행위를 통한 지역 활성화를 이루기 위해 조직된 모임)’ 대표가 이들을 돕겠다고 나섰고, 이태원에 위치한 ‘청년장사꾼 감자집’ 매장 한편에 제조장을 만들면서 본격적인 사업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잼 공부도 엄청 열심히 했어요. 아마 이렇게 수능 공부를 했으면 하버드대를 갔을 거예요. 학교 도서관에 있는 ‘잼’ 관련 책은 모두 읽었죠. 외국 유명 요리 블로그도 참고하고, 시중에 나와 있는 브랜드 잼은 다 먹어봤어요.”

다양한 잼을 개발하기 위해 각종 과일이나 눈에 띄는 제철 음식은 모두 잼으로 만들어보고, 잼 만드는 법을 전수받기 위해 험한 산길을 뚫고 직접 전문가를 찾아가기도 했다. 그렇게 다양한 시도 끝에 이들은 저당도 기술을 활용해 설탕 함량을 낮추고 과일 맛을 최대한 살린 ‘잼있는 인생’만의 특급 잼을 개발했다.

여기에 그녀들만의 ‘드립력’이 더해졌다. ‘우유부단한 블루베리잼’, ‘맘고생 고망 망고잼’, ‘녹록치 않은 그린라이트 녹차라떼잼’, ‘피치 못할 복숭아잼’, ‘자두자두졸려 자두잼’ 등 웃음이 피식 나오는 재밌는 제품명을 완성한 것. 센스 있는 작명 덕에 이들의 잼은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품 포장에도 나름의 의미를 담았다.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삼각 플라스크를 모티브로 잼 병을 만들고, 박스 포장 겉면에는 ‘처방잼’이라는 프린트를 넣었다. 인생이 재미없는 이들에게 ‘잼’을 처방해준다는 깊은 뜻. 때문에 이들은 약사 혹은 의사처럼 흰 가운을 입고 잼을 판매한다.


“우리의 드립이 누군가에겐 웃음이 되길”
얼마 전 이들은 ‘2014 서울시 사회적 경제 아이디어 대회’에서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으며 362만 원의 예산을 지원받았다. 예지 씨는 “우리의 드립을 있어 보이게 포장해서 돈을 받은 사례”라며 웃음을 지었다. 지원받은 예산으로 이들은 이제 본격적인 제품 판매에 돌입할 예정. 그 동안은 이태원 계단장, 광화문 사회적 경제장터 등에서 시범적으로 판매했지만, 10월 중에는 온라인 몰과 자제 홈페이지 등을 오픈해 적극적인 판매에 나설 계획이다. 모양이 예쁘지 않아 상품성이 떨어지는 낙과, 못난이 과일을 활용해 제품을 만들어 보는 방법도 구상 중. ‘날 우롱하지 마 우롱차’, ‘아, 머랭~ 머랭쿠키’ 등 각종 차, 청, 쿠키 등 상품을 늘릴 준비도 하고 있고, 잼을 다 먹고 빈 병을 활용할 수 있는 ‘이런 잼병, 애프터 잼병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의 꿈이요? ‘생존’했으면 좋겠어요.(웃음) 처음에는 취업을 했으면 굳이 겪지 않았을 책임의 무게 등에 좀 힘들긴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저희의 선택이 오히려 취업보다 더 나았다는 생각을 해요. 인생에 있어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 느낌이거든요. 이 안에서 많은 것을 해보고 싶어요. 또 저희의 드립이 메마른 사람들의 마음에 모이스춰라이징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글 박해나 기자
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