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내가 있어야 할 곳, 청춘 보내기 아깝지 않아”

[캠퍼스 비정상회담] 한국에서 영그는 이방인의 꿈
현재 한국에 있는 외국인 유학생들은 8만5000여 명. 해마다 한국과 한국어, 한국 문화 등을 배우기 위해 한국 땅을 밟는 이들이 증가하는 상황에 발맞춰 정부는 2020년까지 20만 명의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캠퍼스에서 외국인을 마주치는 것이 더 이상 특별한 경험은 아니지만, 각자의 뚜렷한 꿈을 안고 한국을 찾은 세 이방인과의 대화는 특별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훈남 외국인들의 토크 프로그램처럼 베트남, 일본, 캐나다에서 날아온 젊은이들의 한국 생활 분투기를 ‘어디 한번 들어보자’.
[캠퍼스 비정상회담] 한국에서 영그는 이방인의 꿈
리카(Ozasa Rika)
1993년생. 일본 후쿠시마 출신. 성균관대 성균어학원 한국어과정

어디에 살고 있나요? 동네 자랑 좀 해주세요.
오스틴 지난해까진 잠실에 살았는데 올해 공덕동으로 이사 왔어요. 공덕동은 맛집이 많기로 유명해요. 갈매기살, 갈비, 골뱅이, 전 등등. 특히 족발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아직 먹어보진 못했어요. 또 공덕동은 직장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서 사람 만나는 재미가 있어요. 한강이 비교적 가까운 것도 좋고요.

신촌에 살고 있어요. 그동안 학교 기숙사에서 지냈는데 1년 전쯤부터 자취를 하고 있어요. 다들 잘 아시다시피 신촌은 젊음의 거리잖아요. 저희 대학뿐만 아니라 근처 몇몇 대학의 학생들로 종일 붐비는 활력 넘치는 곳이죠. 먹을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아서 유쾌한 동네예요.

리카 을지로4가에 살아요. 저희 동네는 번화가가 아니고 전자상가 말고는 큰 건물도 없어서 마땅히 얘기할 것은 없지만, 집 앞에 청계천이 있어서 참 좋아요. 원래 걷는 것을 즐기는 편이라 청계천에 산책을 자주 나가요. 또 조금만 걸어가면 동대문 의류상가가 있어서 구경하기에도 좋아요.


한국에 어떻게 오게 되었나요?
고등학교 때 한국 여름 캠프에 참가했었어요. 그때부터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한국 대학 진학을 결심한 건 연세대 언더우드 국제대학 교수님들의 학과 설명회를 듣고 나서부터였어요.

오스틴 평소 아시아 국가들에 관심이 많았어요. 특히 다양한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한국이 배울 점이 많을 것 같았어요. 서울이라는 도시도 재미있는 곳이라고 생각했고요.
리카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한국에 처음 와봤어요. 그때 한글을 조금 배웠는데, 조금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글자들이 매우 귀여웠어요. 그래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영어를 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영어권 유학도 고려했지만, 부모님이 먼 곳으로 딸을 보내는 것을 주저하셔서 미련 없이 한국을 택하게 되었지요. 일본에서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던 선생님이 성균관대 연구원이었는데 그 영향으로 한국에 와서도 성균관대 어학원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고요.
[캠퍼스 비정상회담] 한국에서 영그는 이방인의 꿈
오스틴(Austin Fehr)
1993년생. 캐나다 벤쿠버 출신. 연세대 언더우드국제대학 3학년


다들 한국어가 유창해요. 배운 지 얼마나 됐나요?
오스틴 한국에 오기 4개월 전쯤 친한 친구에게 한국어 배우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술 한 병을 가져오더니 공부를 게을리하면 벌주를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술이 무서워서 한국어 공부를 더 열심히 했고, 덕분에 비교적 빨리 습득할 수 있었어요. 그 후 한국에 와서는 학원을 다니거나, 별도의 과정을 밟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배웠어요. 지금 제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 한국인들이에요. 사는 곳도 외국인 밀집 지역이 아니고요. 생활밀착형 한국어 공부를 했다고 할까요?

중학교 시절 K-POP 덕분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특히 가수 비를 매우 좋아했는데 그의 노래를 달달 외우다시피 하며 한국어를 배웠지요. 고등학교 때는 하노이 한국문화원의 한국어 수업을 듣기도 했어요. 한국에 오고 나서는 대학 어학당에서 공부하기도 했는데, 탁구 동아리 활동을 하며 한국인 친구들로부터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익힌 것이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리카 일본에서는 한글만 공부하고, 회화는 한국에 온 다음부터 배우기 시작했어요. 본격적으로 배운 게 아직 6개월이 채 안 되는 셈이죠. 일본에서는 한국 드라마나 노래를 자주 접했어요. 그래서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듣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역시 대화가 안 되더라고요. 나중에 한국 대학에 진학하고 싶은데, 이런 실력으로는 학업을 잘 할 수 없을 것 같아 일단 한국어를 집중해서 배우려고 어학원에 다니고 있어요.


한국어 공부, 어떤 점이 어렵던가요?
리카 한국어가 어려운 언어인 것 같긴 해요. 특히 존댓말 사용은…. 하지만 재미있어요. 지금 듣는 수업이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돼 빠듯하지만 한국어 자체에 흥미를 느끼기에 문제가 되진 않아요. 주말엔 친구들과 많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한국 문화를 알아가고 있어요.

베트남어에도 존댓말이 있긴 한데 단어 하나만 문장에 넣는 식이라 쉬워요. 한국어는 불규칙 문법이 많아서 기억하기가 힘들어요. 저도 한국어 공부가 재미있어요. 하지만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은 아직도 꽤 어려워요. 게다가 주위 친구들이 다 영어로 대화하고, 수업도 영어로 듣고 그래서 한국어를 쓸 기회가 많지 않아요.

오스틴 학교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학장님을 ‘아주머니’라고 소개한 적이 있어요. ‘Mrs.’라고 하면 되는 건데, 제 부족한 한국어로 굳이 호칭을 붙이려고 하다가 발생한 불상사였죠. 저도 존댓말이 어려운데 호칭도 아리송해요. 영어로는 그냥 ‘you’라고 부르면 될 텐데, 나이와 직급, 상황에 따라 호칭이 어찌나 다양한지….


한국인 남자친구나 여자친구 있나요?
오스틴 지금은 ‘썸’만 타는 상황이지만, 예전에 사귀어 본 적 있어요. 한국인 여자친구와 잘 사귀려면 눈치가 있어야 해요. 세밀한 부분을 잘 신경 써주며 센스를 발휘해야 하죠. 눈치가 없으면 잔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웃음)

학교 탁구 동아리에서 만나 2년 넘게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가 있어요. 경상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쓰는 전형적인 한국 남자죠. 주로 영어로 대화하는데, 따뜻하게 잘 챙겨주고 좋아요.

리카 한국인 남자친구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누구를 사귀어본 적이 없어요. 한국어 공부하기에도 벅차 여유가 있을지…. 혹시 모르죠, 한국에서 연애를 시작하게 될지!


주로 무엇을 하며 지내나요?
동네 탁구장도 다니고, 친구들과 한강 공원 산책을 하고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하죠. 광주, 울산 등 지방으로 여행을 가기도 해요.

리카 친구들과 치맥하는 것을 좋아해요. 삼겹살에 소주도 즐기고요. 아, 비 오는 날 파전에 막걸리를 곁들이는 것도 별미예요.

오스틴 수영, 테니스를 해요. 카페에서 수다 떠는 것도 좋아하고요. 시간 나면 주말마다 여행도 떠나고, 지방 축제에 가기도 해요. 특히 부산 해운대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곳이에요.


한국 생활에 어려운 점이 있다면?
리카 아직 한국어가 능숙하지 못해, 가까운 곳을 나가도 길 한 번 묻는 게 큰일이에요. 또 저의 출신 지역(후쿠시마)을 알고 자꾸 과장되고 허황된 질문을 던지는 게 난처해요.‘거기에 아직도 사람이 사느냐’라는 식의 질문들이요.

오스틴 가끔 사투리에 당황할 때가 있어요. 경상도, 전라도 사투리는 그래도 괜찮은데 제주도 사투리는 ‘나는 누군가, 여긴 어딘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해요. 한번은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 중에 돼지고기를 시켰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못 알아들으시더라고요. 제주 말로 돼지를 ‘도새기’라고 한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캠퍼스 비정상회담] 한국에서 영그는 이방인의 꿈
웬(Uyen Nguyen)
1991년생. 베트남 하노이 출신. 연세대 언더우드국제대학 4학년


베트남 음식이 가끔 그리운 것 말고는 한국생활에 어려움은 없어요. 남자친구가 울산 사람이라서 그런지 사투리는 저에게 귀엽게 들려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캠퍼스 비정상회담] 한국에서 영그는 이방인의 꿈
한국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오스틴 쉬는 법을 알았으면 해요. 한국인들은 쉴 틈 없이 사는 것 같아요. 바쁘게 사는 것도 물론 좋지만 가끔은 휴식이 필요하거든요. 공부에, 취업에 갈 길이 멀다고 해도 때로는 가만히 누워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여유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리카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때가 있겠지만, 놀 수 있는 것도 때가 있잖아요. 한국 친구들은 근면·성실·책임감 등에서 본받을 점이 많지만 조금 더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을 듯해요.

‘지난 4년 동안 정말 고마웠어’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한국 친구들이 아니었으면 행복했던 제 한국 생활은 불가능했을 거예요. 그리고 한 가지 바람은 한국 친구들이 베트남에 대해 더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쌀국수가 베트남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말이죠.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리카
어학원 한국어 과정이 끝나면 한국의 대학에 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할 거예요. 그래서 저처럼 한국과 한국어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들에게 재미있는 한국어 강의를 들려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지금은 국제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대학원에 진학해 베트남과 한국의 역사에 대한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어요. 한국어로 된 역사 자료를 원만하게 읽을 수 있을 만큼 한국어 공부도 더 열심히 할 생각이고요.

오스틴 경제나 경영을 비롯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공부 욕심이 있어요. 국제무대에서 일하는 게 목표여서 우선 한국의 회사에 들어가 실무경험을 쌓고 싶어요. 취업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겠지만, 저도 한국 친구들 못지않게 열심히 준비하려고요.


진행 박상훈 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 | 정리 김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