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2일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96일간의 해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자, 삼성의 ‘마하경영’이 다시금 화두로 떠올랐다. 올해 신년사를 통해 이 회장이 강조했던 ‘마하경영’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초일류 도약의 한계 돌파를 위해 모든 것을 바꾼다’는 마하경영은 이건희 회장이 강조하고 있는 경영철학 중 하나.

그리고 그 핵심에는 지난 20년간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킨 이 회장의 ‘신경영’ 철학이 녹아 있다.

올해 삼성의 키워드로 떠오른 ‘마하경영’과 그 핵심정신인 ‘신경영’을 이해하기 위해 삼성의 지난 20년을 되짚어봤다.
삼성본사 스케치
/허문찬기자  sweat@  20080128
삼성본사 스케치 /허문찬기자 sweat@ 20080128
‘자만심’ 위기를 부르다
1990년대 초반 삼성은 실질보다 외형 중시의 관습에 빠져 있었다. 일선 경영진의 관심은 오직 ‘전년에 비해 얼마나 많이 생산하고 판매했는가’에만 집중돼 있어 눈앞의 양적 목표 달성에 급급했다. 자연히 부가가치, 시너지, 장기적 생존전략과 같은 질적 요인들에는 소홀해졌다. 해외 평가는 이러한 삼성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국내에서는 최고로 손꼽히는 삼성 제품들이 동남아 등 일부 시장에서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을 뿐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시장에서는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국내 제일’이라는 자만에 빠져 있던 삼성의 현주소였다.

이건희 회장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우리는 자만심에 눈이 가려져 위기를 진정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못난 점을 알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내가 등허리에 식은땀이 난다”고 지적했다. 이런 수준으로는 세계 초일류기업은 고사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조차 없겠다는 우려를 떨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회장은 1993년 2월 미국 LA에서 전자 관계사 주요 임원들이 참석한 전자부문 수출상품 현지비교 평가회의를 주재했다. 삼성이 최고라 자부하는 제품들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자는 취지였다. 현지 매장에 직접 가본 이 회장과 임직원은 고객으로부터 외면 받아 한쪽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삼성 제품을 보게 됐다. 이 회장은 임원들과 함께 이를 둘러보며 “삼성이란 이름을 반환해야 한다. 한쪽 구석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것에다 왜 삼성이란 이름을 쓰는가? 그나마 진열대에 놓여 있는 제품 중에는 뚜껑이 깨져 있거나 작동이 안 되는 것도 있지 않나? 이는 주주, 종업원, 국민, 나라를 기만하는 행위”라며 통탄했다는 후문이다.
[한국경제신문자료사진] 삼성전자 1994년 6월 9일 신경영 1주년 "작은약속, 큰실철"...
[한국경제신문자료사진] 삼성전자 1994년 6월 9일 신경영 1주년 "작은약속, 큰실철"...
“양 보다 질” 프랑크푸르트 선언
1993년 6월 4일 이 회장은 일본 도쿄에서 삼성의 경영 현장을 지도해온 일본인 고문들과 삼성의 문제점에 대한 회의를 가졌다. 새벽까지 이어진 회의에서 이 회장은 삼성뿐만 아니라 국내의 디자인 수준을 어떻게 올려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았다. 삼성전자 정보통신부문 디자인 부서를 지도했던 후쿠다(福田) 고문은 이 회장에게 삼성전자에서 4년간 근무하면서 보고 느낀 점을 숨김없이 말했다. ‘일류상품은 디자인만으로는 안 되고 상품기획과 생산기술 등이 일체화되어야 하는데, 삼성은 상품기획이 약하다. 개발을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시장에 물건을 내놓는 타이밍도 놓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그동안 이 회장이 숱하게 지적하며 고치기를 강조해온 고질적 업무의 관행이기도 했다.

1993년 6월 7일 이 회장은 임원과 해외주재원 등 200여 명을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로 불러 모아 ‘새로운 삼성을 여는 회의’를 주재했다. 사장단 회의를 갖고 여러 선진국을 둘러보면서 이 회장은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회장은 1993년 6월 7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은 이제 양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벗어나 질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삼성 신경영’을 선언했다.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는 다 바꾸라는 유명한 이야기도 여기서 나왔다.

삼성 신경영의 핵심은 ‘질 위주의 경영’이다. 이제까지 지속되었던 양 위주 경영에서 초래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질 중심에 양이 조화를 이루는 선순환의 경영구조를 실현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회장은 양 위주 경영의 한계를 절감하고, 양적 사고의 결과로 생기는 불량을 고질적인 병폐라고 지적했다. 불량은 ‘암’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회사를 망하게 할 수 있는 불량의 폐해를 강조했다.
삼성신경영 20주년 국제학술대회가 20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렸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20130620
삼성신경영 20주년 국제학술대회가 20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렸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20130620
“나는 20년이 넘도록 ‘불량은 암’이라고 말해왔다. 위궤양은 회복되지만 암은 진화한다. 초기에 잘라내지 않으면 3~5년 뒤에는 온몸으로 전이되어 사람을 죽인다. 삼성은 자칫 잘못하면 암 말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암은 초기에 수술하면 나을 수 있으나 3기에 들어가면 누구도 못 고친다.” 삼성에 만연한 양적 사고에 대한 이 회장의 경고였다.

또한 이 회장은 “양과 질의 비중을 5:5나 3:7 정도로 가자는 것이 아니다. 아예 0:10으로 가자는 것이다. 질을 위해서라면 양을 희생시켜도 좋다. 제품과 서비스, 사람과 경영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하다면 공장이나 라인의 생산을 중단해도 좋다”라며 질적 상승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불량품 제로에 도전
라인스톱 제도와 불량 전화기 화형식

삼성은 불량을 없애며 제품의 질에 대한 혁신을 시작했다. 생산라인을 중단시키더라도 불량을 선진 수준으로 낮추도록 했으며, 한 품목이라도 좋으니 세계 제일의 제품을 만들기로 했다. 실제로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품질을 최우선으로 하기 위해 불량을 뿌리 뽑기 위한 조치들이 잇달아 취해졌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라인스톱 제도’다.
[COVER STORY] 2014 키워드 ‘마하경영’ 신경영 21년의 정신을 담아 새롭게 도약!
라인스톱제란 생산현장에서 불량이 발생할 경우, 즉시 해당 생산라인의 가동을 중단하고 제조과정의 문제점을 완전히 해결한 다음 재가동함으로써 문제 재발을 방지하는 혁신적인 제도다. 신경영 이후 라인스톱제를 가장 먼저 도입한 곳은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세탁기 생산라인. 세탁기 생산라인은 프랑크푸르트 선언 후 곧바로 라인을 스톱하여 불량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점을 해결한 후 다시 가동에 들어갔다. 세탁기 라인에서 시작한 라인스톱제는 전자 관계사의 모든 사업장으로 확산되었다. 생산물량이 밀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라인을 세워야 하는 부담이 있었지만 효과는 컸다. 전자제품의 경우 1993년의 불량률이 전년도에 비해 적게는 30%, 많게는 50%까지 줄어든 것이다.
[COVER STORY] 2014 키워드 ‘마하경영’ 신경영 21년의 정신을 담아 새롭게 도약!
1995년 3월에 있었던 ‘불량 무선전화기 화형식’도 질 위주로 가기 위한 삼성의 의지를 보여 준 사례로 손꼽힌다. 당시 삼성전자의 무선전화기 사업부는 품질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완제품 생산을 추진하다 제품 불량률이 무려 11.8%까지 올라가는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불량은 암이고, 양을 버리고 질로 가기 위해 모두 변할 것을 다짐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불량품이 나오는 것에 대해 여기저기서 원성이 높았다. 이 회장은 “신경영 이후에도 이런 나쁜 물건을 만들고, 엉터리 물건을 파는 정신은 무엇인가? 적자 내고 고객으로부터 인심 잃고 악평을 받으면서 이런 사업을 왜 하는가? 삼성에서 수준 미달의 제품을 만드는 것은 죄악이다. 회사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강하게 질타했다.

1995년 1월 이 회장은 품질사고 대책과 향후 계획을 점검하면서 고객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무조건 새 제품으로 교환해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수거된 제품을 소각함으로써 임직원들의 불량의식도 함께 불태울 것을 제안했다. 15만 대, 150여억 원어치의 제품이 수거되었고 화형식을 통해 전량 폐기 처분되었다. 자기 손으로 힘들게 만든 제품이 불타는 것을 보면서, 임직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불량품 화형식은 전 임직원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가시적 조치와 노력을 통해 ‘불량은 암’이라는 인식이 삼성인들 가슴속에 자리 잡아갔고, 현장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부실 요인을 찾아 고치는 풍토가 그룹 전체에 확산될 수 있었다.
[COVER STORY] 2014 키워드 ‘마하경영’ 신경영 21년의 정신을 담아 새롭게 도약!
초일류 도약을 위한 ‘마하경영’ 등장
삼성은 지난 20여 년간 이러한 신경영의 실천으로 국내 최고기업에서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삼성은 다시금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삼성은 창업 75주년을 맞았다. ‘100년 삼성’을 향해 새로운 각오로 또 다른 25년을 출발하는 해인 것. 남의 길을 뒤따르던 ‘Fast Follower’에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는 ‘First Mover’로 새롭게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이 회장은 2014년 신년사를 통해 “다시 한 번 바꿔야 한다.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며 초일류 도약의 한계 돌파를 위해 신경영 정신으로 모든 것을 바꾸는 마하경영을 선언했다.
10살때 고 이병철회장과 함께
10살때 고 이병철회장과 함께
마하경영(마하란 소리의 속도를 나타내는 단위)은 지난 2002년 이 회장이 “제트기가 음속의 2배로 날려고 하면 엔진의 힘만 배로 있다고 되는가? 재료공학부터 기초 물리, 모든 재질, 소재가 바뀌어야 초(超)음속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 제트기가 음속을 돌파하려면 엔진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하듯, 삼성이 기존 환경에서 전혀 다른 환경으로 성공적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모든 것을 바꾸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이 회장은 전 임직원들에게 끊임없는 도전을 촉구했다. ‘질을 넘어 사업의 품격과 가치를 높여나가는 기업’, ‘혁신을 넘어 자율과 창의가 살아 있는 창조적 기업’, ‘경쟁을 넘어 이웃,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기업’ 등 삼성이 그리는 진정한 초일류 기업 모습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삼성은 이러한 마하경영을 전 직원에게 전파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지난 20여 년간 이 회장이 강조한 ‘신경영’이 삼성을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만들었듯 ‘마하경영’을 통해 또 한 번 새로운 도약을 하겠다는 경영전략이다.



▶▶ 삼성의 역사 한눈에 살펴보기 ◀◀

삼성의 태동기(1938∼1969)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은 1938년 3만 원의 자본금으로 대구에서 ‘삼성상회(三星商會)’라는 간판을 내걸고 사업을 시작했다.

1938년 3월 삼성상회 창립(대구)
1941년 6월 삼성상회, 주식회사 삼성상회로 법인 등록
1948년 11월 삼성물산공사 설립
1954년 9월 제일모직 설립
1957년 1월 국내 최초 사원 공개 채용 실시
1958년 2월 안국화재 인수(1993년 삼성화재로 상호변경)
1963년 4월 삼성문화재단 설립 인가
1966년 12월 중앙개발 설립(1997년 삼성에버랜드로 상호변경)
1969년 1월 삼성전자공업 설립(1984년 삼성전자로 상호변경)


화학 및 기계사업 진출(1970∼1979)
1970년대 삼성은 제2차 삼성 경영 5개년 계획을 세우며 중화학 공업 부문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1973년 1월 제일기획 설립
5월 임페리얼 설립(11월 호텔신라로 상호변경)
8월 삼성산요파츠 설립(1987년 삼성전기로 상호변경)
1974년 7월 삼성석유화학 설립
8월 삼성중공업 설립
1977년 2월 삼성종합건설 설립(1993년 삼성건설로 상호 변경, 1995년 삼성물산에 합병)
4월 삼성조선 설립(1983년 삼성중공업에 합병)
12월 한국반도체 인수(1978년 삼성반도체로 상호변경)
1978년 4월 코리아엔지니어링 설립(1991년 삼성엔지니어링 상호 변경)


삼성, 세계 시장으로 나아가다(1980∼1989)
1980년대 삼성은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을 시작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64K D램 VLSI의 개발 성공을 시작으로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은 각종 반도체 제품을 개발했다.

1982년 2월 삼성라이온즈 설립
4월 호암미술관 개관
1983년 12월 삼성반도체통신, 국내 최초 64K D램 개발
1987년 11월 이병철 회장 서거
12월 제2대 삼성 이건희 회장 취임
1988년 11월 삼성전자ㆍ삼성반도체통신 흡수합병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의 도약(1990∼1999)
삼성은 기업 경영혁신 운동을 실시하고 신경영 출범 선언을 하며 기술뿐만 아니라 인간미 넘치는 조직 분위기를 만들고,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1993년 6월 삼성 신경영 선언
1995년 3월 삼성자동차 설립
7월 삼성, 공채 필기시험 전면 폐지
1999년 8월 삼성전자, MP3 플레이어 휴대폰 세계 첫 개발


세계 TOP5 브랜드 기업 선정(2000~)
삼성은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디지털 기업으로 성장하며 세계 Top5 브랜드 기업으로 선정된 바 있고, 대한민국 전체 수출의 21%를 담당하며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2000년 12월 삼성 사상 최대 8조3000억 원 순익 실현
2001년 1월 삼성전자, 휴대폰 생산 5000만 대 돌파
2002년 9월 ‘삼성 이건희 장학재단’ 설립
2004년 3월 삼성전자, 미국 경제지 <포천> ‘존경받는 기업’ 전자업계 4위 선정
4월 삼성서울병원 7년 연속 국가고객만족도(NCSI) 1위
10월 ‘삼성미술관 리움(Leeum)’ 개관
2005년 4월 이건희 회장,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세계 100대 인물 선정
2007년 8월 삼성전자, TV 사상 최고 점유율로 세계 1위(디스플레이서치 2분기)
2009년 9월 삼성, 글로벌 100대 브랜드 조사에서 브랜드 가치 세계 19위
2010년 5월 삼성, 2020년까지 신사업에 23조 원 투자 결정
2011년 10월 삼성, 대학생 대상 토크콘서트 ‘열정樂서’ 개최
삼성, 글로벌 100대 브랜드 17위 선정(인터브랜드)
2013년 5월 갤럭시 S4 한 달 만에 글로벌 1000만 대 판매 돌파
2014년 3월 삼성SDI·제일모직 합병 결의
4월 갤럭시 S5 출시


글 박해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