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보험설계사 해볼까?
늦은 아침, 취준생 도민중은 눈을 뜨자마자 컴퓨터 전원부터 켰다. 그리고 이메일을 열었다. 오늘도 역시 불합격 메일이 도착해 있다. 새삼 실망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휴대전화 벨이 울린다. “여기는 OO생명입니다. 지금 신입사원을 채용 중인데, 도민중 씨의 이력서를 보고 같이 일해보고 싶어 연락드렸습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OO생명이면 그가 그토록 들어가고 싶어 했던 대기업이다. 하지만 지난 공채에서 진작 탈락한 상황. 그런데 함께 일해보고 싶다니, 드디어 대기업 신입사원이 되는 것인가.“지금 대졸자를 대상으로 재무설계직 인턴사원을 뽑고 있어요. 관련 지식이 없는 인문계 전공자라도 상관없어요. 열정이 중요하니까요. 내일 본사에서 설명회가 있으니 꼭 참석하세요.”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한 손엔 커피를 든 채 출근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한 가지 낯선 단어가 걸린다. 재무설계직이 뭐야? 잘 몰라도 되는 일이라면 영업이란 뜻인가?
‘재무설계직 인턴사원’이란?
최근 대형 보험사들이 대졸 인턴사원 양성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흔히 ‘재무설계직 인턴사원’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업무 내용은 기존 보험설계사와 유사하다. ‘FC(Financial Consultant)’라는 이름의 주부 보험설계사 영역에 젊은 인재를 투입하겠다는 전략이다. 보험사마다 이들을 부르는 이름도 다 다르다. 삼성생명 ‘SFP(Special Financial Planner)’, 현대라이프 ‘YGP(Young Generation Planner)’ 등 대개 진취적이고 프로페셔널한 느낌을 주도록 작명한 게 공통점이다. 채용설명회 등을 캠퍼스에서 주최하는가 하면 사전 교육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처럼 보험업계가 젊은 보험설계사 양성에 나선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한 차원 더 전문적인 보험설계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게 보험업계의 설명이다. 대학 졸업 이상의 고학력자로 진용을 짜고, 입사 후 한국공인재무설계사(AFPK) 등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독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시장 확대에 있다. 비슷한 눈높이의 사회초년생을 대상으로 영업활동을 펴 고객 저변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발 넓은’ 젊은이들이 지인들에게 자사 보험 상품을 소개하고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면 회사는 그에 맞게 보상하니 회사와 설계사 모두 ‘윈윈(win-win)’이라는 이야기다.
재무설계직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에게 보험사들은 저마다 다양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00 보험사 000은 “전문 보험설계사로서 성장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성과 및 평가에 따라 지점장이나 교육총괄 매니저 등으로도 진로를 개척할 수 있다”고 밝혔다.
주요 보험사 ‘재무설계직 인턴’ 운영 현황
삼성생명
SFP(Special Financial Planner)
삼성생명의 SFP는 지난 2008년 9월 시작됐다. 과거 ‘삼성생명 금융 아카데미’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현재는 ‘SFP 금융보험 과정’으로 변경됐다. SFP로 입사하면‘유니브(Univ)’ 라고 불리는 전국 36개 지점 중 한 지점에 배치된다. 채용 전형은 서류전형 → 1, 2차 면접 순이다. 면접은 주로 영업과 관련된 실질적인 질문으로 이뤄진다.
삼성화재
SRA(Samsung Risk Advisor)
2013년 2월부터 20대 보험설계사 조직 SRA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90여 명의 SRA가 활동 중이다. SRA는 2개월에 한 번씩 신규인력을 두 자릿수 선발한다. SRA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만 30세 이하로 4년제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
현대라이프
YGP(Young Generation Planner)
2013년 2월 1기를 모집한 현대라이프 YGP는 총 200명이 6개 지점에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현대라이프는 입사 후 2년 뒤 평가에 따라 지점장이나 본사 스태프 등 정규직으로 전환시킨다는 방침이다. 올 초에는 2명을 1년 만에 조기 전환하기도 했다. 다만 아직 설립한 지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2년 후 전환된 사례는 없는 상태다. YGP는 4주 입문교육, 4주 필드트레이닝(Field Training)을 거쳐야 한다.
현대해상
HIFA(Hyundai Insurance Professional Agency)
현대해상의 하이파(HIFA)는 현대해상의 영업채널 중 신(新)채널 본부에 소속돼 있다. 입사 후 첫 달은 약 150만 원의 기본급을 받고 이후로는 이전 실적에 따라 기본급이 새로 매겨진다. HIFA의 영업채널은 대면영업 외에도 유학 카페, 블로그, 유아박람회 등 다양하다.
한화금융네트워크
HFA(Hanwha Financial Advisor)
지난 2010년 7월 서울 지역에 2개 지점(TRI) 30명으로 시작한 이래 현재는 470명의 한화생명 HFA가 전국 13개 지점에서 활동 중이다. 총 4주간의 교육을 통해 보장, 은퇴설계, 세테크 등 금융지식과 세일즈에 대해 습득한 후 현장에 배치된다. 비슷한 개념의 GFP(Group FP)도 있는데 GFP는 지원 자격이 ‘초대졸 이상’으로, HFA보다는 조금 더 영업현장 업무에 특화돼 있다.
AIA생명
NEXT AIA
청년보험영업인력 양성 프로그램 ‘Next AIA’ 제도는 지난 2012년 12월 첫 도입됐다. 사회경력이 1~3년 이상 있어야 지원할 수 있다. 단, 보험영업 경력은 제외된다. ‘Next AIA’의 가장 큰 특징은 PSP진단(미국 생명보험 마케팅연구협회의 성향분석툴), MDRT(백만달러원탁회의) 달성 선배와의 멘토링 등 글로벌 영업교육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메리츠화재
MFC(Metro Financial Consultant)
2009년 12월 처음 만들어진 MFC 인턴십은 8주간의 ‘MFC 금융전문가 양성과정’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MFC 영업과정을 거쳐 경우에 따라 지점장, 매니저 등의 커리어를 부여하는 제도다. MFC 과정에선 6개월간 활동 지원금과 금융자격증 취득 지원금을 제공한다.
‘ 일하는 만큼 성과’ 사실상 프리랜서
20대 보험설계사 조직을 가동 중인 보험사의 속을 들여다보면 운영방식이 대동소이하다. 관심 있는 지원자라면 특징을 잘 알고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
고용 형태는 ‘위촉직’
위촉직은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회사와 일대일 업무계약을 맺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프리랜서인 셈. 즉 ‘일한 만큼 버는 것’이다. 당연히 개인의 책임은 개인이 부담하는 구조다. 사측에서 커버하는 보험이 있긴 하지만 개인별 4대 보험에 가입되지는 않는다.
기본급이 없는 완전 성과제
회사에 따라 입사 후 1~6개월간 100만~200만 원의 기본급을 제공하지만 이후에는 이전 실적에 따라 급여가 매겨진다. 정해진 기본급이 없기 때문에 월급이 아예 없을 수도, 천정부지로 솟을 수도 있다. 급여를 매기는 기준은 대개 판매 건수, 판매 상품의 환산성적, 근무 태도 등이다.
‘정규직 전환’ 장담 못해
일부 업체는 ‘1년이 지나면 정규직 전환의 기회가 있다’고 소개하지만 시기가 구체적으로 명문화 돼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게 공통적인 설명이다. 회사 상황이나 인력 수급 현황에 따라 유동적이라는 것. ‘보험설계’는 영업이 기본이기 때문에 정규직 입사의 기회로 삼거나 관리자가 되기 위한 곳으로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게 대부분 보험사의 입장이다. ‘영업 DNA’가진 이에게 적합
지원 자격은 대부분 만 30세 이하 4년제 대학 졸업자다. 채용 절차는 서류전형과 1, 2차 면접 순으로 진행되는 게 일반적이다. ‘스펙’은 중요하지 않다. 물론 학점이나 어학성적을 기입해야 하지만 당락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면접 때 중요한 것도 ‘얼마나 성실히 일할 수 있느냐’, ‘얼마나 영업에 적합한 사람인가’다. 따라서 지원하기에 앞서 스스로도 따져 보아야 한다. 우선 ‘보험설계사’의 의미부터 생각해야 한다. 기업에 따라 ‘재무상담사’, ‘인턴’ 등의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사실상 비정규직 보험설계사임에는 변함이 없다. 개인 위촉직으로 고용되고 연봉도 실적에 따라 책정된다. ‘정규직 전환’ 기회를 노리고 도전하겠다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특수한 경우’라고 할 정도로 드물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적응할 때까지 소비하게 될 시간과 경력으로서 가치도 고려해야 한다. 한 대형 보험사 인사팀장은 “영업직군 지원자들 중 재무설계직 인턴 경험을 앞세우는 이가 많은데, 정규직 공채 때 특별히 대우하진 않는다”면서 “진입 장벽이 거의 없어서 변별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업에 뜻이 있는 지원자라면 현장 경험을 쌓는 절호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학점이나 성별, 어학성적 등 정량적 스펙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동우 이루다컨설팅 대표는 “실적 중심의 보험영업 특성이 자신의 성향과 잘 맞는지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며 “대기업 간판에 끌려 지원했다가 시간 낭비와 마음의 상처를 입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전직 A생명 인턴의 조언
“금융권 지망생은 도전 신중해야”
김철수(가명) 씨는 지난 1년 동안 A생명 재무설계직 인턴으로 근무하다 최근 그만두었다. 은행 취업이 목표였던 그는 ‘금융 현장에서 인턴 경험을 쌓아 보자’ 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고.
Q. 젊은 보험설계사 채용에 적극적인 이유는?
A. 보험사에 ‘리크루팅’이라는 제도가 있다. 신규 영업 직원을 많이 채용할수록 높은 리크루팅 평가를 받는다. 이 평가는 매달 책정되는 실적에 반영돼 급여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학설명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취업 준비하는 이들에게 참여를 권유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Q. 평균 보수는 어느 정도인가
A. 기본급이 거의 때문에 급여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실적에 따라 1000만 원 가까이 버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예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중간 실적이라면 보통 월 200만 원이 채 안 되는 보수를 받는다.
Q. 적성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나
A. 언제든 자유 의지로 퇴사할 수 있다. 다만 입사 직후 지인들에게 상품을 판매해 쌓아 놓은 실적이 아까워서 퇴사를 주저하는 경우는 많이 있다.
Q. 이직할 때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나
A. 카드 영업 등 비슷한 영업 현장으로 옮기는 경우에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금융기업의 정규직 신입 공채에 지원할 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경력직은 현장 경험보다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Q.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A. ‘한 번 해볼까?’ 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반드시 후회한다. 평소에 영업 직무에 관심이 많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적합한 분야다. 내성적인 성격이거나 사무직을 선호한다면 적응이 어려울 것이다. 정규직 전환 기회가 드물고 연봉이 실적에 근거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크다.
글 이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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