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 취업률 상승 효과 없고 운영 힘들다”

[이슈 체크] 탄생 11년 여대생커리어 개발센터 현주소
지난 2003년 정부는 ‘여대생 취업률 증진’을 위해 새로운 지원 정책을 내놓았다. 전국의 대학에 여학생을 위한 커리어개발센터를 설치해 취업을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키로 한 것. 여성가족부(당시 여성부)가 추진한 이 사업은 연간 5만 명의 여학생이 참여하는 국가 지원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여전히 ‘취업하기 어렵다’는 여대생이 줄지 않고 있다. ‘영업부 신입 면접장에 갔더니 50명 중 여성은 나 혼자뿐이더라’는 후일담도 별로 놀랍지 않은 현실이다.

통계를 보면 여대생 취업난이 더욱 잘 드러난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평가서비스’에 따르면 2003년 4년제 대학 여성 졸업생의 취업률은 50.4%였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2013년엔 44.4%로 6%나 떨어졌다. 극심한 취업난을 이유로 앞세우기엔 남녀의 격차가 꽤 크다. 같은 기간 남성 졸업생의 취업률은 52.5%에 서 50.5%로 2% 떨어져, 오히려 남녀의 취업률 격차는 더욱 벌어졌기 때문이다.

‘여대생의 커리어를 개발해 궁극적으로 여성 취업률을 높이겠다’고 시작한 이 정책은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일까. 올해로 11돌을 맞은 ‘여대생커리어개발센터’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이슈 체크] 탄생 11년 여대생커리어 개발센터 현주소
“여대생의 장기적 커리어 설계를 돕겠다” 출범
지난 2003년 여성가족부는 ‘청년 여성들이 장기적 커리어를 설계하고 후일 직업세계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 나갈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여대생커리어개발지원사업’의 첫 삽을 떴다.

그로부터 11년 동안 여대생커리어개발센터는 전국 각 대학에서 여학생들의 취업 역량을 강화시키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취업 전문가를 초빙해 특강을 여는가 하면, 성공적으로 진로를 개척한 선배의 멘토링이나 진로 탐색 프로그램도 시행했다. 여학생만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남학생들로부터 ‘역차별이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특화된 프로그램으로서 기반을 다졌다. 2011년부터는 센터 사업 외에 취업 프로그램별로도 지원을 시작, 유연성을 더하고 있다.

여대생커리어개발센터는 전국 각 대학의 신청에 의해 설치 운영되고 있다. 설치를 원하는 대학은 연 단위로 여성가족부에 신청한다. 여성가족부는 여러 가지 조건을 심사해 지원 대상 학교를 선정한다. 센터의 독립·공식 기구화, 전임연구원 배치, 정규 교과목 개설 등이 선발 기준이다.


11년간 국고 92억여 원
여대생커리어개발센터의 프로그램은 대개 맞춤형 강의와 합숙캠프를 주축으로 한다. 각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진행하되, 여성가족부가 ‘필수’로 제시하는 과목은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

우선 ‘젠더의식 강화훈련’을 통해 남성 중심적인 취업 환경을 극복하도록 하고 있다. 또 ‘개인별 커리어 개발’ 수업은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여대생들이 직업 설계부터 포트폴리오 설계까지 스스로 하도록 돕는 게 목적이다. ‘직무능력 훈련’에서는 기업 내 관리자가 되기 위한 방향을 알려준다. 이를 통해 여대생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직접 설계해 취업 경쟁력을 높이고 사회에서 성공하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2003년부터 현재까지 이 같은 강의와 캠프 등의 프로그램에 투입된 국고는 92억5000만 원이다. 지난 2013년 센터 지원금을 받은 학교는 17곳으로 2003년 설립 당시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센터당 지원금은 5000만 원. 이 외에도 23개 학교가 프로그램당 1500만 원씩을 추가 지원 받았다. 사업을 총괄하는 신혜경 사무관은 “지원 대학을 늘리고 각 프로그램 지원 단가도 인상해 센터가 원활하게 운영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들 “차라리 폐지하겠다”, 왜?
그런데 일부 학교에서 여대생커리어개발센터가 돌연 자취를 감추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여성가족부 심사를 거쳐 선정된 뒤 수년간 센터를 운영해온 학교들이 아예 재신청을 포기하고 딴 학교에 '양보'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 한 대학 관계자는 “취업률이 기대보다 저조하고, 운영상 문제점이 많다”고 재신청 포기 이유를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센터를 운영하는 데 있어 정부가 모르는 고충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대학들이 귀띔하는 문제점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① 여대생 취업률 ‘지지부진’
무엇보다 당초 설치 취지인 ‘취업률’에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이라는 하소연이 많다. 학교 측은 센터 유지 여부를 결정하기에 앞서 대개 여학생 취업률을 판단 근거로 삼는데, 이 수치가 기대보다 저조하다는 것이다.

센터를 운영했다가 폐지한 A대학 관계자는 “센터 운영 후에도 취업률은 크게 높아지지 않아 학교 행정부서에서 여대생 취업 지원 부문을 다른 팀과 통합해 운영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교육부의 정보공시제도사이트 ‘대학알리미’가 건강보험DB를 바탕으로 조사한 A대학의 여성 취업률은 공시가 시작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계속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학은 2003년 사업 시작 당시부터 2013년까지 11년째 꾸준히 센터를 운영해왔다.


② “국고 지원, 큰 도움 안 된다”
여대생커리어개발센터 운영을 위해 국고에서 지원을 하지만, 실제 센터 운영을 위해 학교에서 자체 충당해야 하는 비용이 적지 않다. 지원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제시한 사업비 편성안에는 국고 지원금 외에 ‘대학 본부 부담액 등’이라는 항목이 있다. 즉, 국고로 지원하는 5000만 원 외에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은 각 학교에서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연간 센터 운영비용은 얼마나 될까. 한 지방 소재 B대학의 2013년 센터 운영비를 조사한 결과 약 2억5000만 원이 소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고 지원금의 5배 수준이다. 또 다른 C대학도 매년 전체 운영비 중 70% 이상을 학교에서 부담해 왔다고 밝혔다. 이 대학 관계자는 “교비 충당 규모가 예상보다 커서 센터 운영이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③ “여학생만을 위한 센터 운영 부담스러워”
대학들은 센터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도 부담이 된다고 밝혔다. 독립된 조직으로 운영하려다 보니 예산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 수도권 대학에서 이 같은 의견이 많았다. 실제로 지난 2월 25일 2014년 사업에 새롭게 선정된 대학 중 수도권 소재 대학은 아주대 한 곳뿐이다. 그동안 동국대, 한양대 등에서도 센터를 운영했지만 현재는 모두 없어진 상태.

서울 소재 한 대학의 여대생커리어개발센터 연구원으로 일했던 한 관계자는 “기존 취업지원 센터를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학교들은 여학생만을 위한 센터를 추가로 설립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다”면서 “센터 설립 신청보다 단일 취업 프로그램별 지원에 대한 신청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취업지원센터를 양분화하는 것 역시 비효율적”이라고 덧붙였다.
[이슈 체크] 탄생 11년 여대생커리어 개발센터 현주소
④ “여성성 강조하는 강의가 자칫 편견 가져올 수도”
일각에서는 강의 자체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강의 내용이 과연 센터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방향인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의 여대생커리어개발사업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한 대행사 관계자는 “현재 대다수의 프로그램 콘셉트가 여성의 성공적인 사회 진출보다는 성차별이나 출산, 양육 등 성별 특성에 편중된 경향이 있다”며 “몇몇 학교는 강사에게 강의를 의뢰할 때 여성성에 포커스를 맞추도록 요구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여성가족부가 필수과목으로 제시한 ‘젠더의식 강화훈련’은 처음부터 여성이 취업시장에서 불리하다는 전제조건을 두고 진행하기 때문에 여학생들이 자칫 피해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시각도 있다. 전국 대학에서 취업특강을 하고 있는 취업전문가 김수경(가명) 씨는 “여성학 박사 등 주로 학문적인 부분에 맞춰진 강사들이 많은데 이보다는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현직 종사자가 참여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슈 체크] 탄생 11년 여대생커리어 개발센터 현주소
“정책 취지 살리려면 기본부터 다잡아야”
여학생 취업을 돕기 위한 정부의 지원 정책이 학교의 외면을 받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기본’부터 다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수요자인 학생들이나 취업 컨설턴트들은 “강의의 질 개선 등 근본적인 프로그램 점검부터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센터에서 실시하는 커리어 개발 관련 프로그램들이 알맹이 없이 ‘속 빈 강정’인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지방 국립대에 재학 중인 조경윤(24) 씨는 “P/F(합격 또는 불합격) 강의의 경우 출석하고 보고서만 내면 1~2학점을 자동 이수할 수 있기 때문에 학점을 채우기 위해 참가한 학생들이 많다”면서 “수업 분위기도 어수선해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여대생 취업 프로그램을 수강한 적이 있는 김영진(25) 씨는 “학생들의 흥미를 이끌기 위해 가볍고 뻔한 내용을 다루거나 3시간 수업 중 절반만 진행하는 강의도 있어서 눈살이 찌푸려졌다”고 전했다.

대학 취업지원센터에서 자주 특강을 하는 취업 컨설턴트들은 몇 가지 개선사항을 내놨다.

취업 컨설턴트 A씨는 “센터의 프로그램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으려면 1~4학년 대학 생활 전체를 꾸준히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센터에 상주하는 취업지원 담당자의 수나 역량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컨설턴트는 또 “센터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대부분이 ‘여대생’이라는 단어를 떼어내도 문제가 없을 만큼 특성이 없다”며 “여학생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라면 특화된 프로그램이 제시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책 취지 자체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취업 컨설턴트 B씨는 “남녀 가리지 않고 취업난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여학생만의 취업 역량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건 공감대를 얻기 힘들다”면서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가 지원 정책 자체를 점검하고 기존 취업지원센터와의 시너지를 높이는 방안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 박수진·이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