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야, 부엌에 사라 하나 갖고 와.”
“지나야, 쓰메키리 쓰고 어디다 뒀니?”
일제강점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할머니 할아버지는 접시를 ‘사라’라고 하고 손톱깎이를 ‘쓰메키리’라고 했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서 사라, 쓰메키리 등과 같은 일본어는 사라진 듯하다.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일본어가 우리말 속에 섞여 있다는 사실! 더구나 우리말인 줄 착각한 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쓰는 일본어가 부지기수다. ‘이것도 일본어였어?’ 하고 놀랄 준비 단단히 하시라.
[생활 속 일본어 찾아내기] 네가 자주 쓰는 그 단어 일본말이야!
일본말 비속어
이런 말 쓰면 쎄 보일까 봐?

“‘아다리’가 맞아서 만난 거야”
tvN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서 김희애가 우아하게 한 말이다. ‘아다리가 맞다’는 표현은 원래 ‘あたり(아타리)’라는 일본어에서 나왔다. ‘あたり’는 동사‘あたる(아타루)’에서 명사형으로 변형된 것인데 동사 ‘あたる’는 ‘맞다’, ‘(총탄·화살·타격 등이) 명중하다, 적중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아다리가 맞다’와 같은 표현 대신 ‘예상이 적중했다’, ‘딱 맞았다’라는 표현이 훨씬 예쁘다.


“빡빡하게 굴지 말고 ‘유도리’ 있게 해”
흔히 원칙대로 하고 빈틈이 없는 사람을 “유도리가 없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유도리’라는 말 또한 일본어에서 유래했다. ‘유도리’는 일본어 ‘ゆとり(유토리)’로 ‘(공간이나 시간·정신·체력적인) 여유’를 뜻한다. ‘유도리 있게’라는 말보다는 ‘여유롭게’, ‘융통성 있게’ 등과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시 시험을 봐도 결국 ‘똔똔’이야”
어른들 사이의 대화에서 ‘똔똔’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을 것이다. ‘또이또이’라고도 하는 ‘똔똔’은 ‘같다’, ‘마찬가지다’라는 뜻으로 비속어이다. 이 역시 일본어에서 온 것인데 ‘とんとん(돈돈)’은 ‘(둘이) 엇비슷함’, ‘수지가 균형 잡힘, 팽팽함’이라는 뜻을 가진다.


“쟤는 뭘 입어도 ‘간지’ 작살이야”
옷맵시가 좋은 사람을 봤을 때 흔히 쓰는 ‘간지난다’는 말은 ‘폼 난다’, ‘멋있다’는 뜻. 20대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게 통하는 이 말은 일본어 ‘感じ(かんじ 간지)’에서 유래됐다. 원래 뜻은 ‘감각’, ‘감촉’, ‘인상’, ‘기분(분위기, 감상)’이라는 의미다. 이제 ‘간지 작살!’이라는 말은 목구멍으로 넘겨버리자.



생활 속 일본어
고치기 힘들다고? 핑계 대지 마!

“누가 내 컴퓨터 화면에 ‘기스’ 냈어”
‘기스’는 남녀노소가 평상시에 많이 사용하는 말로, 바꿔 쓸 만한 우리말 단어를 찾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왠지 ‘기스’라고 해야 더 긁힌 느낌이 든다는 것. ‘기스’는 일본어 ‘きず(기즈)’로 ‘상처’, ‘(알리기 싫은) 비밀’, ‘흠·결점·티’라는 뜻을 가진다. 이제부터라도 ‘흠’, ‘흠집’, ‘상처’라는 말로 대신해 보자.


“매일 ‘노가다’ 뛰느라 힘들지?”
‘노가다’는 원래 ‘どかた(도카타)’라는 일본어에서 나온 것이다. 이 ‘どかた’의 뜻 역시 공사판의 ‘노동자’, ‘막일꾼’ 또는 ‘막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노가다’라는 단어는 일본어의 잔재일 뿐만 아니라 ‘노동’, ‘막일’, ‘막일꾼’을 낮춰 부르는 말이므로 가능한 삼가는 것이 좋다.


“아줌마, ‘다대기’는 따로 주세요”
해장국집 가면 이런 말 하는 사람 한두 명쯤은 봤을 것이다. ‘다대기’는 ‘たたき(다타키)’라는 일본어에서 나왔는데 ‘たたき’는 ‘두들김·두드림’이라는 뜻을 가진다. 이것이 마늘 생강과 고춧가루를 넣어 ‘다져서 만든 양념’을 가리키는 ‘다대기’라는 말로 변형돼 사용된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다대기’라는 말은 접어두고 ‘다진 양념’이라고 주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넌 ‘땡땡이’ 무늬가 잘 어울려”
요즘 패션 잡지나 TV에서는 ‘도트 무늬’라고 순화해서 말하지만 여전히 일상생활 속에서는 ‘땡땡이’라는 말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땡땡도 언뜻 보면 순우리말 같지만 ‘点点(てんてん)’이라는 일본어이다. ‘도트 무늬’도 외래어이니 가능하면 ‘물방울 무늬’라고 사용하는 것이 좋다.


“우리 과 티셔츠는 ‘소라색’으로 할까?”
온라인 쇼핑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라색 후드티’, ‘소라색 티셔츠’들. 어찌된 일인지, 소라색이라 불리는 것은 하나같이 하늘색을 띤다. 소라는 일본어로 하늘을 나타내는 ‘そら(소라)’에서 온 것이다. ‘소라색’ 후드티가 바다에서 나는 소라의 갈색이 아니라며 매장에 항의하러 간 언니들! ‘하늘색’이라는 예쁜 우리말을 사용하자고요.


“길거리에 ‘찌라시’ 주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를 걷다 보면 꼭 하나씩은 받는 ‘찌라시’. 증권가에서 나도는 소문도 흔히 ‘찌라시’라고 한다. 단어에서 풍겨오는 느낌만으로도 ‘찌라시’가 일본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터. ‘찌라시’는 ‘ちらし(지라시)’에서 나온 말로, ‘어지름, 흩뜨려 놓음’, ‘광고로 뿌리는 종이, 즉 전단’이라는 뜻을 가진다. 앞으로는 ‘광고 전단지’라고 말하는 버릇을 들여보자.



일본식 한자
세상에! 이 말마저!

“감히 신병이 ‘고참’한테 대들어?”
자신보다 먼저 들어 온 사람, 혹은 선배를 군대에서는 ‘고참’이라고 한다. 그러나 ‘고참’은 ‘古參(こさん、고산)’이라는 일본 한자를 우리 식으로 읽은 것이다. ‘선임자’가 바른 표현.


“우리 학교 ‘축제’ 때 소녀시대 온대”
‘축제’라는 뜻을 가진 ‘まつり(마쓰리)’는 한자로 ‘祝祭’라고 쓰기도 한다. 우리나라 방식으로 한자를 읽으면 축제다. 그런데 이 축제의 ‘제’에는 ‘제사’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의미대로 위의 문장을 해석하면 ‘우리 학교 제사 때 소녀시대가 온다’는 뜻이 된다. ‘축제’보다는 ‘축전’, ‘잔치’라는 말을 쓰는 것이 의미에 적합하다.


“‘절취선’을 따라 잘라주세요”
우유곽이나 컵라면 등 물건에 많이 보이는 ‘절취선’. 명료하게 표기하기 위해서 ‘절취선’이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절취선’은 ‘切取線(きりとりせん 기리토리센)’이라는 일본 한자를 우리 식으로 읽은 것이다. 요즘은 ‘절취선’ 대신에 ‘자르는 선’으로 순화해서 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 참 ‘애매’하다”
예전에 최효종이 개콘에서 그렇게 외쳤던 ‘애~매합니다잉!’의 ‘애매’도 일본 한자라는 사실! 일본어 ‘曖昧(あいまい、아이마이)’에서 왔으며 이것을 그대로 읽은 것이 ‘애매’이다. 흔히 ‘애매모호하다’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이것은 ‘애매’라는 말의 뜻과 ‘모호’라는 말의 뜻이 중복되기 때문에 잘못된 표현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모호하다’라고 순화하자.


글 정지나 대학생 기자(인천대 일어일문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