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정 쇼핑 호스트

쇼핑 호스트 정윤정은 자신이 얼마 전에 판매했던 코트를 걸치고 나타났다.
대학생 기자들의 나이를 고려해(?) 일부러 맨투맨 티셔츠를 입고 운동화도 신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홈쇼핑 방송에서 만날 수 있었던 친근하고 솔직한 옆집 언니의 모습 그대로였다.
‘홈쇼핑계 마이더스의 손’, ‘매진의 여왕’, ‘1분에 1억 원을 파는 여자’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낯설어질 정도였다.
[지상 멘토링] “애인을 소개하는 마음으로 물건을 팔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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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홈쇼핑을 떠났다는 소식을 기사로 접했어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벌써 방송을 시작한 지 20년이 됐어요. 이제는 휴식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더라고요. 나를 위한, 그리고 가족을 위한 휴식을 갖는 중이죠. 방송을 쉬면 좀 한가해질 줄 알았는데 요즘 더 바쁘게 지내요.(웃음) 여기저기서 연락을 주시는데 회사를 그만뒀다는 기사가 너무 많이 나서 핑계를 대고 피할 수가 없더라고요. 요즘에는 명품 브랜드 행사 진행 같은 새로운 일을 하는 중이에요. 얼마 전에는 <나는 30초가 다르다>라는 책도 출간했어요. 굉장히 오래전부터 책을 쓰고 싶었는데 드디어 꿈이 이뤄졌죠. 출간을 기념해 강연도 많이 하고 있어요.


최근 설득에 관한 책을 내신 것처럼 쇼핑 호스트는 고객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본인만의 설득 노하우가 있나요?
진심이 중요한 것 같아요. 스스로 ‘좋다’, ‘최고다’라고 인정한 것을 남에게 전달해야 설득력이 있죠. 설득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예요. 그러려면 내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죠. 누군가가 나에게 ‘남자친구가 왜 좋아?’라고 물어본다고 생각해보세요. 남자친구를 정말 좋아하면 술술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내가 왜 그 남자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종이에 적고, 분석하는 것은 아니죠. 그게 삶의 방식이에요. 저는 판매하는 물건을 늘 애인처럼 생각해요. 내가 좋아하는 남자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시켜 준다고 생각하는 거죠.


남을 설득하려면 화려하고 논리적인 말들만 해야 할 것 같은데, 의외네요.
저는 억지로 팔려고 하지 않아요. 진심을 다하고 내가 아는 것, 느끼는 그대로 전달하죠. 예전에 홈쇼핑에서 가방을 판매한 적이 있는데 가방 겉의 문양이 특이하더라고요. 패턴을 찍은 것인 줄 알았는데 스팀을 쏴서 표면이 쪼그라든 거였죠. 순간 장조림이 생각났어요. 장조림처럼 졸였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장조림 가방’이라고 소개했더니, 바로 대박이 났죠. 제가 모르는 어려운 말로 소개하지 않고, 느끼는 그대로를 전달하니 고객 분들에게 더 많이 어필이 되는 것 같아요.


정윤정 씨의 방송을 보면 쉽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말이 많아요.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많고요.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이 바탕이 돼야 해요. 책으로 배우고, 외운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게 되죠. 하지만 몸으로 체득한 것은 기억이 오래가요. 옛 남자의 향수 냄새만 맡아도 잊고 있던 기억이 확 살아나잖아요. 판매할 가방도 직접 들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경험하면 할 이야기가 많아지죠.

저는 둘째 아이를 낳고 나서 홈쇼핑의 진짜 고객이 됐어요. 그 전에 아이가 하나일 때는 부모님이 봐주시고 하니까 사실 워킹맘들의 마음을 잘 몰랐죠. 그런데 둘째를 낳고 나서는 회사, 집 외에는 아무 데도 갈 수 없게 되더라고요. 쇼핑도 집에서만 해야 하니 홈쇼핑을 보는 고객들의 입장이 이해되는 거죠. 고객들의 입장에서 물건을 저도 직접 써보고 경험하다 보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더 많이 찾게 되더라고요.
[지상 멘토링] “애인을 소개하는 마음으로 물건을 팔아야죠”
처음 리포터로 방송을 할 때 8번이나 NG를 내고 쫓겨났어요. 그러고 나서 얼마나 노력을 했겠어요. 그런 시간을 겪고 나니 쇼핑 호스트로 일하는 것이 오히려 쉽더라고요.


홈쇼핑뿐만 아니라 예능에도 많이 출연하셨죠. 쇼핑 호스트에게는 방송 감각도 중요한가요?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쇼핑 호스트라는 직업을 알더라고요. 엄마들이 집에서 홈쇼핑을 많이 시청하니까요. 제가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쇼핑 호스트는 ‘방송을 할 줄 아는 판매원’ 정도로 인식됐었죠. 그런데 요즘은 ‘방송인’이라는 개념으로 더 많이 접근한 것 같아요. 실제로도 그렇게 변해가는 것 같고요. 오프라 윈프리도 사실은 쇼핑 호스트 출신이라고 해요. 그만큼 최근에는 방송인 자질도 필요한 것 같아요.


쇼핑 호스트가 판매하는 물건이 ‘완판’ 되면 인센티브를 받는지 궁금해요.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전혀 없어요. 그런 오해가 억울할 정도죠. 모든 쇼핑 호스트가 그래요. 완판이 되면 자신의 커리어가 쌓이는 것뿐이에요. 업체에서 받는 것은 조금도 없어요.


기업에서 선호하는 쇼핑 호스트의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라고 들었어요. 지금부터 준비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제로 쇼핑 호스트는 어느 정도 연륜이 필요한 직업이에요. 저는 리포터를 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쇼핑 호스트가 될 수 있었죠. 팔도강산을 3번 돌고, 수없이 많은 경험을 하고, 야단도 맞으면서 방송한 것이 내공이 되었으니까요.

제가 지금 대학생이라면 집에서 혼자 물건을 팔아볼 것 같아요. 저는 어릴 때 늘 홈쇼핑을 보면서 ‘나라면 이렇게 할 텐데’, ‘여기서는 이렇게 말해야지’ 하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홈쇼핑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고, 방법이 보이게 되죠. 그리고 집에만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세요. 저는 그 나이 때 비오는 날만 아니면 늘 밖으로 나갔어요. 밖에서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는지도 보고, 트렌드가 어떤지도 살펴보는 거죠. 요즘도 저는 잡지에 나온 카페는 다 정리해 두었다가 한 번씩은 꼭 가봐요. 감각을 잃으면 안 되는 거죠. 말을 잘하고 싶다면 친구와 수다를 떠세요. 용기를 내어 낯선 사람에게도 말을 걸어보고요. 마트에서 ‘줄을 서세요’ 라고 외치는 아르바이트 같은 것도 경험해 보면 좋겠죠.
[지상 멘토링] “애인을 소개하는 마음으로 물건을 팔아야죠”
를 선물받은 대학생 기자 이지은(덕성여대 문화인류 2)·권예슬(계명대 체육 4)">
리포터 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도 쇼핑 호스트가 되는 데 도움이 될까요?
처음 리포터로 방송을 할 때 8번이나 NG를 내고 쫓겨났어요. 그러고 나서 얼마나 노력을 했겠어요. 리포터가 생계였으니까요.(웃음) 입을 크게 벌리고 발음을 정확하게 하려고 목욕탕에 가서도, 운전을 할 때도 연습했죠. 듣는 사람과의 거리, 말하는 리듬 등 모든 것을 신경 썼어요. 그렇게 몇 번의 고비를 겪으면서 점점 성장한 거죠. 그런 시간을 겪고 나니 쇼핑 호스트로 일하는 것이 오히려 쉽더라고요.


카메라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몸에 중심을 가져야 해요. 성공한 배우들을 보면 걸음걸이부터 달라요. 꼿꼿하고 당당하죠. 그걸 몸의 중심이라고 해요. 자세가 불량한 것은 몸의 중심이 무너졌기 때문이에요. ‘몸의 포스’를 가지려고 노력하세요. 저는 늘 TV 속 아나운서의 말과 행동을 따라했어요. 엄마가 방송을 보고 ‘내 딸 맞아?’라는 생각을 하게 해야 해요. 그런 게 반복되고 익숙해지다 보면 실제의 모습도 방송에서 보이는 것처럼 변하게 되어 있어요.


쇼핑 호스트가 되고 후회한 적은 없나요?
‘내가 물건을 잘못 팔았구나 ’하고 반성한 적은 있어요. 하지만 후회해본 적은 없죠. ‘후회하지 말자’가 제 인생 신조거든요.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장단점을 계산하고 답이 나오면 바로 결정하죠. 결과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아요.


쇼핑 호스트를 꿈꾸는 대학생을 위한 조언 한마디!
대학생들이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반가워요. 다만 정말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일을 하면서 한 번도 이 직업이 싫었던 적이 없거든요. 자신이 정말 이 일을 좋아하고 원하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자신이 정말 좋아한다면 꾸준히, 성실하게 노력하세요.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글 박해나 기자│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