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티즌 허브

신촌은 명실상부 서울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최근 3년 동안 신촌은 서울 상권 중 경매에 붙여진 상가가 가장 많은 곳으로 꼽힐 만큼 점점 활기를 잃어갔다. 불이 켜진 간판을 찾아보기 힘든 골목도 늘어났다.
인터뷰를 위해 찾은 이대 옆 골목도 마찬가지. 한참을 둘러본 후에야 오정익(30) 씨가 대표로 있는 ‘얼티즌 카페’ 간판의 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카페만 있는 줄 알았던 그곳에는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신촌의 청년문화를 위해 활동하는 청년 예술가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신촌의 어두운 뒷골목, 그것도 한 건물에 이들이 모인 사연이 궁금해졌다.
[스페셜리포트_청년 협동조합 열전] 청년과 마을을 잇는 ‘문화 허브’ 건설
[스페셜리포트_청년 협동조합 열전] 청년과 마을을 잇는 ‘문화 허브’ 건설
‘얼티즌 허브’는 문화·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청년 예술가들에게 임대하고 그들과 협업해 신촌의 청년 문화 프로젝트를 만드는 모임이다. 2007년 당시 대학생이었던 오정익, 장성욱, 한정태 씨가 전국대학생연합동아리의 모임장소로 활용했던 충무로 얼티즌 카페가 그 모태가 됐다. 현재는 충무로를 떠나 신촌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오정익 씨를 포함해 10명의 청년 문화기획자, 예술가들이 임대한 공간에서 신촌 문화 예술을 위한 활동을 기획하고 있다.

“대학을 다니면서 청년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동아리 활동을 하다 만난 친구들과 얼티즌 카페를 모임 공간으로 이용했죠. 그런데 지내다 보니 청년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 수 있는 작업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얼티즌 허브의 공간은 지하를 포함해 총 4층으로 구성돼 있다. 1층의 얼티즌 카페를 중심으로 지하 1층은 신촌 지역 뮤지션 네트워크 ‘신촌 콘서트’가 뮤지션들이 사용할 수 있는 마을 공연장으로 쓰고 있다. 2층은 신촌물총축제를 진행했던 축제 기획팀 ‘무언가’와 한식으로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비빔밥 유랑단’이 사무실로, 3층은 ‘얼티즌’과 ‘철학하는 예술가 포럼’ 팀이 예술 활동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지하 1층을 마을공연장으로 두고, 2층을 모임 공간으로 만들어서 1시간에 2500원의 이용료를 받았어요. 그러다가 2층까지 모두 청년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으로 임대했어요. 신촌의 문화를 만들고, 지속시켜 나가려면 얼티즌만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어서 얼티즌과 함께 ‘허브’를 만들어 프로젝트를 진행할 파트너를 찾은 거예요.”

얼티즌 허브가 활동을 시작한 지는 약 3개월. 기간이 짧아서 5개 팀이 협업해 진행한 큰 프로젝트는 없지만, 지난해 축제 기획팀 ‘무언가’에서 진행한 신촌 물총축제를 비롯해 크리스마스 파티, 연말 파티 등 청년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이벤트와 축제, 클래스 등을 열어 신촌 문화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을 기업 통해 협동조합으로 전환
신촌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얼티즌 카페는 세 명의 공동대표가 있는 주식회사로 운영됐다. 그러다 지난해 충무로를 떠날 때쯤 서울시에서 진행한 ‘마을기업 지원 공모사업’을 통해 마을 기업으로 선정돼 신촌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1억 원의 공간임대보증금과 5000만 원의 사업비를 지원받아 지금의 얼티즌 허브를 만들 수 있었던 것. 마을 공동체에 기반을 둔 기업 활동, 협동조합 운영방식 등 마을 기업의 기준에 마을 문화를 위한 활동 내용과 민주적인 운영방식이 잘 맞은 덕분이다.

“마을기업 조건 중에 협동조합으로의 전환 조건이 있었어요. 얼티즌 허브는 지난해 11월에 전환이 돼서 협동조합으로 운영을 시작했죠. 협동조합에 대해 알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해 공부가 필요했어요. 지금도 정기적으로 협동조합 강의를 듣고 있는데, 지속해서 협동조합을 운영해 신촌의 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하나의 공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생산자 협동조합인 얼티즌 허브 운영에 있어서 수익은 빠질 수 없는 문제. 현재 얼티즌 허브 건물에 입주한 팀으로부터 받는 임대료를 운영비로 사용하고 있지만, 더 많은 공간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공간을 마련할 부지와 자금이 필요한 상태다. 무엇보다 협동조합을 지속해서 운영해 나가는 것이 관건. 협동조합 중에서도 특히 서울을 기반으로 하는 협동조합은 만나는 일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에 꾸준히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오 대표의 설명이다.

“협동조합은 주식회사, 사단법인(재단법인), 개인사업자 이외에 창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 열린 것이잖아요. 2012년 협동조합에 관한 기본 법안이 통과됐으니 현재 협동조합을 하는 분들을 협동조합 1세대라고 볼 수 있죠. 그래서인지 사실 지속해서 하고 있는 곳이 많지 않아요. 굉장히 실험적인 방식이니까요. 성공이나 실패할 확률이 미지수죠. 얼티즌 허브의 경우 신촌이라는 마을을 중심으로 꾸려 나가고 있어서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얼티즌 허브를 넘어 ‘신촌공화국’ 건국 준비
오 대표는 인터뷰 중 ‘활기를 찾고 있는 신촌’이라는 말을 자주 꺼냈다. 브랜드숍에 밀려 홍대의 스토리숍이 신촌으로 유입되며 신촌에서 만날 수 없었던 새로운 청년들이 신촌을 찾고 있고, 새 단장을 마친 연세로나 드라마 ‘응답하라 1994’ 덕분에 사람들이 신촌을 주목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신촌만큼 특색 없는 문화도 없으니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자유로운 문화가 형성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얼티즌 허브의 색과 새로운 사람들의 색을 합쳐 신촌만의 문화를 만들어야죠.”

오 대표를 비롯한 얼티즌 허브의 청년들은 문화 허브의 규모를 점차 넓혀 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 얼티즌 허브의 옆 공터를 이용해 공간을 마련하고 새로운 청년들을 모집할 예정. 이 프로젝트의 시작이 바로 지난 2월 5일 첫 회의를 하고 본격적으로 건국 준비에 들어간 ‘신촌공화국’이다.

“신촌공화국 건국 준비는 얼티즌 허브 2층에 자리 잡은 문화기획단체 ‘무언가’의 아이디어였어요. 문화예술 공간을 넘어서 청년 창업, 주거 문제 등 청년들의 문제를 폭넓게 논의하자는 거죠. 그래서 얼티즌 허브뿐 아니라 신촌의 문화·사회단체와 개인들이 모였어요. 얼티즌 카페를 임시정부로 두고 세금을 걷는 국세청장, 홍보를 담당하는 대변인, 헌법 제정 팀 등도 조직했죠. 저는 임시 총리를 맡고 있어요.”(웃음)

신촌공화국의 국민이 되면 1년에 10만 원의 세금을 내야 하는데, 이렇게 걷은 세금이 일종의 운영비로 쓰이게 된다. 구체적인 사항은 매주 수요일 준비 회의를 통해 결정될 예정이며 올해 안에 개국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얼티즌 허브는 공실이 없어서 조합원을 더 모집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신촌공화국이 완성되면 공개적으로 공화국민을 모집해 함께 협동조합을 꾸려 나갈 예정이다.


글 김은진 기자 │사진 서범세 기자, 얼티즌 허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