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룸메

모든 것을 부모님이 챙겨주던 둥지에서 벗어나 유학과 함께 타향살이를 하게 된 당신. 룸메(룸메이트)와 산다는 건 혼자인 삶보다 훨씬 윤택하리라 믿었던 당신. 룸메가 열어주는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 비오는 날 도란도란 털어놓는 서로의 속내, 챙겨주고 배려하는 훈훈한 자취방 혹은 기숙사를 꿈꿨던 당신. 그러나 현실은 트러블 메이커 룸메 때문에 멘탈 대붕괴! 웬만한 호러물 저리 가라 경지의 룸메 잔혹 스토리를 공개한다.
[룸메 잔혹사] 너, 영원히 빠이빠이 하고 싶다
내가 투명인간이니? 정녕 안 보이는 거니?
통학이 불편해 학교 기숙사에서 살게 됐습니다. 저는 외동딸이기 때문에 누군가와 한 방을 쓴다는 것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룸메가 생기면 언니처럼, 또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내야겠다는 다짐도 했었지요. 그러나 처음 만난 룸메는 제 이런 낭만을 산산이 부숴 놓았습니다. 먼저 인사를 해도, 말을 걸어도 룸메는 자기 스마트폰이나 노트북만 만져댈 뿐 묵묵부답이었어요. 이런 생활이 정말 답답했던 저는 룸메가 관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로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싶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룸메 책상을 흘끗흘끗 보던 중 그가 어느 아이돌 그룹의 열렬한 팬임을 알게 됐어요. 룸메에게 슬쩍 그 아이돌 그룹 이야기를 꺼냈더니 차가웠던 눈빛이 하트 뿅뿅이 되면서 좋아하는 거예요. 그럴 거면서 한 학기 동안 같은 방 쓸 사람을 투명인간 취급하다니… 너, 너무했어!

(22세 파주녀)



오늘도 룸메 친구들 때문에 밤을 지새우고
남자는 여자보다 덜 예민하기 때문에 룸메이트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을 것 같다고요? 천만의 말씀. 저는 제 허락 없이 자기 친구를 방으로 데려오는 룸메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어요. 처음 룸메가 친구들을 데려왔을 땐 또래 친구가 생긴 것 같아 좋았지만 지금은 너무 힘들어요. 밤마다 친구들과 야식을 시켜 먹지를 않나, 밤이고 낮이고 방에서 떠들어 대는 룸메의 친구들 때문에 잠은커녕 눈 붙이는 것조차 불가능했어요. 룸메 친구들이 늦은 시간까지 술 먹고 우리 기숙사로 자러 올 때는 진짜 가관이었죠. 결국 폭발한 저는 룸메에게 더 이상은 못 참겠다며 친구들을 데려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룸메는 내가 이렇게 힘든 상황인지 몰랐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더군요. 겉으로 봤을 땐 신경 안 쓰는 것처럼 보였대요. 얘기 안 했으면 학기 끝날 때까지 그 진상 친구들을 만날 뻔했네요. 앞으로 우리 방은 룸메 외 출입금지라고!

(21세 익산남)



가사 분담 기본은 지키자! 제발~
1학년 때 만난 친구와 자취를 하고 있습니다. 같이 살면서 생기는 갈등은 정말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불편한 것을 솔직히 말하려 해도 속 좁아 보이고 자칫 큰 싸움으로 번질까봐 쉽사리 말하지 못했어요. 저는 매주 집에 갈 수 없기 때문에 반찬을 아껴 먹는데 룸메는 아무 생각 없이 반찬을 너무 많이 먹어요. 먹고 나서 설거지도 대충, 청소할 때 청소기도 대충. 그러다 보니 방 청소는 그대로 제 몫이 돼 버렸죠. 진짜 별거 아닌 것이라 말도 못하고 참는 생활이 계속되다 보니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만 갔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생각해낸 방법은 엄마와 통화하며 룸메가 들으라는 식으로 간접적인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어요. “엄마, 반찬 만들어 주느라 힘들지? 목소리가 왜 그러냐고? 방 청소가 제대로 안 돼서 그런지 감기가 자주 걸리네….” 얼마 뒤 그 하소연의 의미를 눈치챈 룸메는 센스 넘치는 룸메로 환골탈태했답니다. 내 마음을 딱딱 알아채는 룸메, 어디 없나요? (22세 안성녀)



자취방에 남친을! 오늘도 솔로는 운다
저번 학기는 기숙사에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자취를 하고 있던 친구와 같이 지냈어요. 자취는 처음이라 걱정이 많았지만 룸메가 워낙 깔끔한 성격이고 저와 맞는 구석이 많아서 불편함 없이 잘 지낼 수 있었어요. 문제는 룸메가 자취집에 남자친구를 자주 데리고 온다는 것이었어요. 룸메가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한다고 하는 날에는 혹시 집에 데리고 올 수도 있으니까 세면도구 등 짐을 싸고 다른 친구 집이나 찜질방으로 피신했어요. 아무리 룸메를 위해서라지만 버젓이 제 집이 있는데 못 간다는 것이 서럽고 짜증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룸메가 아침에는 분명 친척 집에 갔다 온다고 했는데 갑자기 남자친구와 같이 자취집에 간다고 연락이 온 겁니다. 밤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는데 말이죠. 화가 나는 것은 둘째치고 언제 룸메와 그의 남자친구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짐을 챙겨 그 밤에 지하철을 타고 찜질방에 갔어요. 다행히 학기 말쯤 룸메 남자친구가 군대를 가는 바람에 이 문제는 단번에 해결됐죠. 아무리 자기 집이라지만 갑작스러운 그대 남친의 등장은 아니 아니 아니 되오! (23세 수원녀)



꽐라 룸메, 얘 어떡하니
기숙사에 살아본 적이 있는 학생이라면 한 번은 만난다는 꽐라 룸메. 저도 만났습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한번은 술을 엄청 마시고 걷지도 못하는 룸메를 같은 과 친구들이 업고 왔습니다. 방에 들어오면 그냥 잘 것이지 잠이 안 온다며 뭐라 뭐라 알 수 없는 질문들을 자꾸 해대서 정말 괴로웠어요. 술 취해도 자기 방을 잘 찾아오는 그가 그나마 나았습니다. 그다음 학기에 만난 룸메가 하루는 과 행사에 간다고 나갔는데 점호 시간이 다 되어도 안 오는 겁니다. 걱정이 돼서 연락을 하려는데 갑자기 전 룸메에게 전화가 왔어요. 알고 보니 지금 제 룸메가 전 룸메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는 겁니다.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 방에 들어간 것이었죠. 저는 그 방으로 달려가 술에 취해 자기 방이라며 우기는 룸메를 겨우 달래서 끌고 왔습니다. 친구에게 미안해서 밥 사줄게 술 사줄게 얼마나 싹싹 빌었는지 몰라요. 그때 생각하면 정말 끔찍합니다. 술을 마시더라도 자기 방은 잘 찾아서 조용히 자주면 안 되겠니? (22세 성남남)



외국인 룸메랑 살면 재미있겠다고? 모르는 말씀!
외국인 룸메 있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우와, 좋겠다. 완전 외국 대학 기숙사 같겠는데” 하며 부러워했어요.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다른 문화와 생활방식으로 20년을 넘게 살다 만났으니, 그 어떤 룸메보다 맞추기가 힘들었어요. 1학년 때 룸메 언니가 일본인이었는데, 일본인들은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고 속에 있는 말을 잘 안 한다고 해서 눈치가 많이 보였어요. 저뿐만 아니라 같이 생활하던 다른 룸메들도 그 언니 눈치를 보느라 고생했죠. 한번은 룸메들과 이야기하다 목소리가 커진 적이 있는데 그 언니가 한국말로 또박또박 “저기, 지금 몇 시죠? 조용히 좀 해주시겠어요?”라고 화를 냈어요. 정말 미안했고 소름 돋을 정도로 무서웠어요. 그래도 마지막 날에는 자기가 직접 만든 초콜릿도 선물하고, 저와 다른 룸메들 때문에 불편한 게 많았을 텐데 그동안 고마웠다고 먼저 인사해줘서 고마웠어요. 제 친구는 룸메가 인도 사람이었는데 양치할 때마다 가래를 큰 소리로 뱉어서 고생했다고 하더라고요. 그에 비하면 저는 별거 아니구나 싶어도 다시 외국인 학생과 같이 지내라고 하면 단칼에 거절하고 싶네요. (22세 인천녀)


글 김가현(원광대 경영 3)·정지나(인천대 일어일문 2) 대학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