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링 인터뷰

남궁훈 게임인재단 이사장. 스스로도 ‘이사장’이라는 직함보다는 ‘대표님’이 아직 익숙하다.

한국 게임산업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한게임 창립 멤버. 이후 CJ인터넷, 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 등 내로라하는 게임 기업을 이끌었던 CEO 모습은 이제 그에게서 찾기 어렵다. 같은 한게임 창립 멤버인 김범수 카카오 의장 등과 함께 대표적인 게임벤처 1세대로 알려진 그가, 기업 대신 게임산업 전체의 생태계 안착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게임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위한 게임인재단 설립이다.
남궁훈 게임인재단 이사장-CEO직 훌훌, 한국 게임 代父로 나서다
남궁훈
1997년 서강대 경영학과 졸업
1997년 삼성SDS 유니텔 기획 및 마케팅
1999년 한게임 커뮤니케이션 사업부장
2006년 NHN 한국 게임 총괄
2007년 NHN USA 대표이사
2009년 CJ인터넷 대표이사
2010년 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 대표
2013년 게임인재단 이사장(현)


한국의 ‘게임벤처 1세대’라는 평가가 스스로에겐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얼마 전까지도 스스로 ‘1세대’라는 생각을 하며 일한 적은 없어요. 1세대라는 건 2세대가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럼 내 세대는 끝났나?(웃음) 생각해보니 제 밑에 있던 친구들에게 실제로 도움을 받고 있네요. 게임업은 세대교체가 정말 빠른 산업이에요. 이제 마흔 초반에 1세대 소리를 들으니까요. 그러니 1세대라는 말 자체가 당혹스럽기도 해요.

사실 지금껏 게임산업의 발전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뛴 건 아니었어요. 그저 재미있게 일해 보자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온 거죠. 그래서 요즘은 자부심보다는 책임감이 더 커졌어요. 다들 제게 1세대라고 얘기하니, 그 속에는 ‘다음 세대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요청이 들어 있는 게 아닐까요? 후진들을 위해 뛰어달라는 요청이죠. 그런 면에서 카카오 김범수 의장이 좋은 케이스예요. PC 시대에 일가를 이뤘다가, 모바일로 다시 1세대가 됐으니까요.


1999년 한게임 창립 때와 요즘을 비교해보면 어떠세요?

일단 역량 자체가 달라졌죠. 이렇게 제가 하는 일에 언론이 관심도 가져주시고. 실제로 일을 할 수 있는 힘도 세졌죠. 업계 안에서 신뢰관계도 많이 쌓았고요. 그런 만큼 언행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게임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설렘은 마찬가지예요. 두려움도 그렇고요. 일을 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변수가 나타나게 마련이거든요. 어쨌든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은 아니니, 경영자로 일하며 느꼈던 심적 부담감은 덜한 게 사실이에요.


게임인재단 설립 배경이 궁금해요.

처음부터 재단 설립을 계획했던 건 아니에요. 원래는 게임 특성화고를 세우고 싶었죠. CJ를 떠나며 1년 정도 휴식기간을 가졌는데, 원래 내가 뭘 하고 싶었나를 돌아보게 됐어요.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선생님이 제 원래 꿈이더군요. 이제 와서 선생님이 되기는 힘들고, 좀 더 스케일 있게 해보자 생각했고, 학교 설립까지 가게 된 거예요. 제 뜻을 이해하고 도와줄 사람들이 있다고 믿으며 교육대학원 교육석사 과정까지 수료했어요.
남궁훈 게임인재단 이사장-CEO직 훌훌, 한국 게임 代父로 나서다
특성화고 설립에서 재단으로 방향을 트신 이유는 뭔가요?

사학재단 세우는 일이 만만치 않더군요. 우선 재단 설립 신고 후 6개월 안에 학교를 세워야 해요. 학교라는 게 인가 과정 자체가 쉽지 않더군요. 사실상 몇 년에 걸쳐 모든 준비를 마친 후에야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죠. ‘이래선 안 되겠다. 그럼 어떡하나’ 하던 차에 재단을 설립하기로 한 거예요.


게임인재단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해요. 어떤 일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우선 우리 게임산업의 위기를 생각했어요. 한 단계 도약해서 온라인에 이어 모바일에서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힘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인데, 현실이 받쳐주질 못하는 거죠. 환경은 더없이 좋아요. 스마트폰 같은 디바이스와 모바일 콘텐츠가 완벽하잖아요. 더 크게 나아갈 수 있는 모멘텀으로 삼아 여기서 더 치고 나아가야 해요. 그런데 오히려 게임산업을 급격히 위축시킬 법안이 발의된 게 지금의 현실이에요. 이런 사회적 흐름 속에서, 오히려 나라도 견제가 아닌 지원에 초점을 맞춰보자고 결심했어요. 제 나름의 소명의식이죠.


게임인재단을 통한 구체적인 활동 계획은 무엇인가요?

세 가지 주요 미션을 정했어요. 중소 게임사 지원, 게임 꿈나무 지원, 다른 문화산업과의 교류 등이에요. 여러 사업들을 통해 국민에게 존경받는 게임인이 되자는 게 최종 목표죠. 언론인, 연극인, 문화인 이런 말이 부러워요. 존중 받는 느낌, 스스로의 자부심이 느껴지잖아요. 재단 이름을 게임인으로 정한 이유예요.

중소 게임사를 지원하기 위해 ‘힘내라 게임인상’을 제정했어요. 한 달에 한 번 1000만 원씩 우수 중소 게임사에 주는 상이죠. 재정적인 혜택만 있는 건 아니에요. NHN엔터테인먼트의 서버와 네트워크 지원, 카카오는 입점 시 무심사, 와이디온라인의 CS 응대 무상 지원, 10억 원 상당의 선데이토즈 아이템 기부 등 여러 게임 기업들이 도움을 주기로 약속했죠. 일종의 재능기부 개념이에요.


게임 꿈나무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우선 장학금을 계획하고 있어요. 구체적인 규모나 방식은 논의 중인데, 특성화고를 우대할 생각이에요. 위메이드에 있을 때 5개 특성화고와 위메이드 주니어스쿨을 운용한 경험이 있어요. 학생들을 회사로 초대해 현직 선배들의 특강을 듣고, 실제 현장의 업무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이죠. 대졸자의 경우 탄탄한 인맥이 바탕이 돼 취업에 유리한 게 사실이에요. 고교는 그런 게 없죠. 특강 등을 통해서 현장과 교류를 갖고, 채용까지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는 역할을 맡고 싶어요.
남궁훈 게임인재단 이사장-CEO직 훌훌, 한국 게임 代父로 나서다
문화 교류에도 상당한 관심과 정성을 쏟으신다고 들었어요.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서 출발한 문제인데요. 게임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문화산업이라고 얘기해요. 하지만 일반의 시선과는 괴리가 있는 게 사실이에요. 우리가 좀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판단했어요. 예를 들어 기존 게임을 소재로 뮤지컬을 만드는 식이죠. 게임 음악만 해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왔거든요. 외국에선 유명 오케스트라가 게임 음악을 연주해요. 콘서트까지 열리죠. 게임이 하나의 문화 장르로 깊숙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툼레이더’ 같은 게임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했죠. 개인적으로 배우 김수로 씨와 친분이 있어 ‘김수로 프로젝트’를 통한 공연 제작으로 첫 발을 뗄 계획이에요.

미술계도 주요한 협업 대상이에요. 게임산업 내에 디자인 인력만 30%는 돼요. 미술과 굉장히 가까운 영역이죠. 주로 신진 작가들이 타깃이에요. 갤러리에 그림 거는 게 쉽지 않잖아요. NC소프트나 넥슨 같은 큰 기업의 로비, 벽 등에 빈 공간이 많아요. 공간 기부를 받아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까지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미술계 저변을 확대하는 데 게임업계가 굉장히 좋은 매개가 될 거예요. 법적으로도 판교에 있는 회사들은 1층에 사무실을 못들이게 돼 있어요. 문화 공간으로 써야 하는데, 빈 공간을 채울 문화 콘텐츠가 마땅히 없는 게 사실이에요.

‘문화회식’도 주요한 캠페인으로 전개할 예정이에요. 게임업계 전반적으로 나이가 젊다 보니 회식문화라고 해봐야 술밖에 없어요. 이런 문화 자체를 바꿔 보자는 거죠. 오랜만에 대학로에서 연극을 단체로 관람하는 식이에요. 문화 콘텐츠를 많이 접해야 창작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게임인은 창작의 영감을 얻고, 공연계는 평일 좌석을 채워주니 서로 윈윈이죠. 앞으로 각 기업 경영진들과도 협의하려고 해요.


뜻을 모아 도움을 주는 게임 기업들이 많은데, 어떤 인연인지 궁금해요.

거의 대부분 NHN 근무 시절에 인연을 맺은 분들이에요. 소중한 인맥이죠. 카카오 김범수 의장은 제가 모시던 분이고, 위메이드는 친정이라 보면 되죠. 이정웅 선데이토즈 대표도 NHN에서 함께했던 직원이었죠. 이사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문태식 엔플루토 대표는 김범수 의장과 함께 한게임 창립 멤버예요. 신상철 와이디온라인 대표도 한게임에서 함께 일했고요. 한때 ‘IT 업계에 삼성SDS 출신이 쫙 깔렸다’는 말이 있었는데, 게임업계에선 NHN 출신 아닌 사람이 드물어요.


게임중독법 발의 등, 게임산업 환경이 녹록치는 않은 것 같아요.

게임산업에 관련한 법규들을 보면, ‘이분들 눈에는 아직도 동네 오락실이구나’, ‘50원, 100원 들고 밥 먹으러 안 온다고 야단맞던 그 시절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에요. 오락실은 돈 안 주면 그만이지만, 요즘 게임은 집에서 하니 아예 법으로 막아 버리자는 발상이죠.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연결된 상황에서 그걸 어떻게 막겠어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게 더 쉬울지 몰라요.

체중계를 예로 들어볼까요? 가까운 미래에는 다이어트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소셜 개념이 도입될 거예요. ‘누가 많이 살을 뺐나’ 하고 순위를 매기는 거죠. 다이어트 노하우를 올리면 댓글도 달리고, 애니팡 순위 바뀌듯 다이어트에도 게임 개념이 들어간단 뜻이에요. 전문용어로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우리말로는 게임화 개념이죠. 미래의 삶은 게임과 떨어져 생각할 수 없어요. 3년 전만 해도 어느 누가 동네 시장서 물건 파는 아줌마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기리라 생각했겠어요. 게임이 대중화를 넘어서 아예 삶 속으로 들어간 거죠. 이제 게임을 하지 말라는 건 언어를 쓰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어요.
남궁훈 게임인재단 이사장-CEO직 훌훌, 한국 게임 代父로 나서다
한국 게임산업이 위기라는 게 사실인가요?

이미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돼 국경의 의미가 사라진 지 오래예요. 이런 틀 안에서 대한민국 게임산업만 도태되는 게 지금의 현실이죠. 온라인 게임의 경우 어느새 외산 게임의 비중이 더 커졌어요. ‘리그오브레전드’ 같은 게임은 실제 소유 법인은 중국 회사예요. 중국 게임이 온라인게임 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는 거예요. 셧다운제 이후 나타난 현상이죠. 산업은 도태됐지만, 게임 이용은 줄지 않았어요. 이건 누가 책임지나요?

저 어릴 때 만화책 불태우고 화형식한 거와 똑같아요. 둘리를 태워버렸다는 게 믿어지나요? 그 사이 미국에선 픽사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커 갔어요. 재밌는 건 이들이 그리는 그림의 90% 이상을 한국 하청업체가 도맡는다는 거죠. 처음부터 둘리의 가치를 알아봤다면 뽀로로 같은 작품이 수십 개는 나왔을 거예요. 게임 기업들도 ‘한국에선 뭐라도 안 되니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예요. 영국, 독일, 미국 같은 곳에서 자기 나라로 오라고 난리죠. 세금, 심지어 직원 월급까지 지원하겠다는 곳도 있어요. 전향적인 자세와 가치관의 변화가 꼭 필요한 시점이 바로 지금이에요.


초대 이사장직을 맡으셨는데, 다시 경영자로 돌아가실 계획도 있으신가요?

사실 계획적으로 사는 편이 못 돼요. 한 2년 정도 내다보고 사는 게 고작이죠. 사업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전제조건은 있어요. 새로운 일이어야 한다는 거죠. 지금 재단 사무실에 3D 프린터를 기부 받아 들여놨는데, 직원들과도 미래 산업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고 연구도 하는 편이에요. 재단에서 일하는 젊은 직원들도 그렇고, 저도 새로운 분야, 즉 완전히 다른 프레임에서 일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커요.


게임산업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에게 조언 부탁드려요.

취업을 결정할 때 기업도 중요하지만, 정작 더 꼼꼼히 따져야 할 건 산업이에요. 지금이 아닌,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은 분야를 찾아야 한다는 거죠. 취업 경쟁률도 낮고 자리도 많지만, 성장은 어느 산업보다 빠른 곳. 바로 게임산업이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미래에는 게임의 요소를 채용하지 않는 분야가 거의 없을 거라는 건 제 생각만이 아니에요. IT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분야가 바로 게임이죠. 게임 기업, 강추합니다!


글 장진원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