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소년’이고 싶은 기업의 욕망

[입사 시험에 나와! 족집게 경제 상식] 피터팬 증후군
정확히 언제라 콕 짚어 말할 순 없지만 말이야. 대략 90년대까지였을까? 극장에 가서 개봉영화를 본 사람들의 손엔 으레 ‘팸플릿’이란 게 들려 있곤 했어. 2000원 정도에 판매하던 영화 팸플릿은 ‘영화 좀 본다’는 친구들에겐 꼭 사서 모아야 하는 일종의 전리품 개념이었지. 마치 초딩들이 ‘유희왕’ 카드에 열광하는 것처럼.

기자의 집에도 그 당시 전리품들이 아직도 골동품처럼 보관돼 있는데 ‘람보2’, ‘로보캅’, ‘첩혈쌍웅’, ‘지옥의 묵시록’, ‘컬러 오브 머니’ 등 시대를 풍미한 영화들의 팸플릿들이야. 그 중 ‘후크’라는 영화의 팸플릿이 유독 눈에 띄더군. 1991년 작품이라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로빈 윌리엄스, 더스틴 호프만, 줄리아 로버츠, 밥 홉킨스 등 명배우들이 총출동했던 화제작이었어. 게다가 영화를 감독한 사람이 스티븐 스필버그니 당시 얼마나 핫한 영화였는지 짐작이 가지? 시간 되면 DVD라도 빌리거나, 다운을 받든가 해서 한 번 꼭 보시길….

영화 제목 ‘후크’는 후크 선장을 말해. 동화 ‘피터팬’에 나오는 악당 후크 선장 말이야. 영화 속 피터는 네버랜드에서의 기억을 까맣게 잊은 채 잘 나가는 변호사로 등장해. 그런데 어느 날 후크 선장이 피터의 아들을 납치하자 다시 네버랜드도 돌아가게 되고, 거기서 다시금 피터팬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악당들을 물리치고 아들도 구한다는, 더불어 팅커벨과의 달콤한 키스까지 이어지는 훈훈한 영화야.


중소기업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정부 혜택은 줄어들고 규제는 늘어나는 탓에 ‘어른’이 되지 않고 소년 ‘피터팬’으로 남으려 하는 현상


아, 서두가 너무 길었어. 옛 추억에 잠기다 보니…, 미안. 영화 속에선 피터가 피터팬으로 돌아가는 데는 한참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모조리 잊어버렸기 때문이지. 그런데 현실에선 영화 속 설정과는 반대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성장’하길 거부하는 거지. 이런 현상을 ‘피터팬 증후군(Peter Pan syndrome)’이라 불러. 나이는 이미 성인인데, 행동은 피터팬처럼 여전히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는 현상을 말해. 최근엔 경제 뉴스에 이 말이 종종 나오고 있어. 증후군을 앓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중소기업’이야.


중소기업 졸업 순간, 새로운 규제 190개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고. 중소기업이 열심히 노력해 중견기업이 되고, 또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커 나가려 하는 게 정상이잖아. 그런데 이런 상식과는 반대로 기존의 기업 규모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거야. 당최 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나아가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기업 환경을 둘러싼 ‘혜택’과 ‘규제’에 있어. 중소기업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즉 중견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즉시 정부의 혜택은 크게 줄어들고 규제는 그만큼 많아지는 거야.

한 기업이 중소기업인지 아닌지는 상시 근로자 수, 자본금, 매출액 등을 기준으로 판단해. 업종별로 기준이 다르기도 하지. 중소기업기본법에 따르면 제조업의 경우 상시 근로자 수가 300명 미만이거나 자본금이 80억 원 이하이면 중소기업으로 분류돼. 건설업은 상시 근로자 수 300명 미만 혹은 자본금 30억 원 이하, 도소매업은 200명 미만 또는 매출액 200억 원 이하가 중소기업이야. 업종에 관계없이 상시 근로자 수가 1000명 이상이거나 자기자본이 1000억 원 이상인 경우에도 중소기업이 아니야.

중소기업에겐 정부의 정책자금과 경영안정자금 등 각종 자금이 지원돼. 또 신용보증기금 같은 공기업의 보증을 통해 사업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지. 연구·개발(R&D) 자금, 제품과 회사 홍보, 창업, 컨설팅 등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정부 지원을 받고, 무엇보다 세금도 적게 내. 중소기업청을 비롯한 정부 부처가 중소기업에 지원해 주는 사업 명목은 무려 160여 개에 이르고 있어.

하지만 중소기업이 성장해서 상시 근로자 수가 300명 이상(제조업 기준)이 되거나 매출이 200억 원 이상(도·소매업 기준)이 되는 순간 ‘중소기업이여, 안녕~’이란 상황에 맞닥뜨리게 돼. 이별과 동시에 혜택과 지원도 사라지는 게 수순. 대신 이전과는 거꾸로 새롭게 적용되는 규제만 190여 개에 이르러. 이러니 중소기업인들이 ‘어른(중견기업)’이 되지 않고 영원한 소년인 ‘피터팬(중소기업)’으로 남으려 하는 거야.


글 장진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