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고른 다큐멘터리, 열 권의 책 부럽지 않다! 다큐멘터리 시청은 짧은 시간 내 방대하고 깊이 있는 지식을 쌓는 최고의 방법이다. 하지만 그 종류가 너무 많아 초급자들은 어떤 것부터 봐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준비한 ‘4대 키워드로 본 다큐멘터리 8선’. 내로라하는 현직 다큐 PD들이 직접 추천한 웰 메이드 작품만 모았으니 잊지 말고 챙겨볼 것.



1 사회를 보는 따뜻한 시선을 키워라

KBS 스페셜-길택 씨의 아이들(조정훈, 2007. 5. 13)

“마음이 참 따뜻해지는, 디테일과 정성이 만들어낸 착한 다큐.”(채널A 이영돈 PD)
[다큐로 공부하기] 스타 PD들이 추천하는 웰 메이드 다큐멘터리
1980년대, 시인 임길택 선생님은 탄광촌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8권의 학교문집을 펴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시 쓰는 법을 단 한마디로 가르쳤다. “꾸밈없이 솔직하게 쓰자.” 소설가 조세희 씨는 이 학교문집을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 책’으로 보관하고 있다. ‘쓰껌헌’ 아빠 얼굴이 예쁘다고 했던 하대원의 시는 김민기의 노래극 ‘아빠 얼굴 예쁘네요’가 되었다. 제작진은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당시 학교문집에 시를 썼던 꼬마 시인들을 찾아냈다. 27년 만에 배달된 자신의 시집을 받아본 어른들은 그 시절처럼 목청껏 자기 시를 읽는다.



KBS 스페셜-세상의 모든 라면박스(최근영, 2006. 6. 3)

“물질의 윤회를 설명하면서 세상이 연결되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말하는 작품.”(채널A 이영돈 PD)

“절제된 감성의 표현 방식이 두드러진다.”(KBS 정현모 PD)
[다큐로 공부하기] 스타 PD들이 추천하는 웰 메이드 다큐멘터리
이 작품은 길거리를 배회하는 라면박스의 삶을, 라면박스를 주워서 생계를 유지하는 할머니의 힘든 삶과 조용히 대비시키고 있다. 라면이 끓여지면 라면박스는 해체되고 버려진다. 그렇게 버려진 라면박스는 최문례 할머니에게 1kg에 45원 하는 소중한 폐지로 다가온다. 강남의 빈촌 슬레이트 지붕 아래에 사는 오상희 할머니에게도, 용두동에 사는 김한준 할머니에게도 라면박스는 소중한 물건이다. 다큐는 시종일관 라면박스의 시각에서 세상과 인간을 조명한다. 그리고 할머니의 사연은 소리꾼 김용우가 부르는 다섯 곡의 노래로 전달된다. 연출자는 다큐에서 최대한 말을 절제한다.



Satoyama : Japan’s Secret Watergarden 사토야마-물의 정원(Masumi Mizunuma, 2004)

“기다림의 미학과 관조적 삶의 철학이 돋보이는 최고의 작품.”(KBS 정현모 PD)
[다큐로 공부하기] 스타 PD들이 추천하는 웰 메이드 다큐멘터리
[다큐로 공부하기] 스타 PD들이 추천하는 웰 메이드 다큐멘터리
[다큐로 공부하기] 스타 PD들이 추천하는 웰 메이드 다큐멘터리
인간과 자연의 공존과 조화에 대해 느끼게 해주는 작품. 2004년 제작된 이 작품은 2005 뉴욕국제 TV 프로그래밍&프로모션 환경부문 금상, 2005 국제 와일드라이프 영화제 각본상, 2005 상하이 TV 페스티벌 최우수 자연 다큐멘터리 등을 수상한 우수작이다. 의대생으로 세포 생물학을 공부했던 감독이 연구보다는 자연을 찍고 싶어 만든 작품인 만큼 세심하고 섬세한 디테일이 돋보인다. 작품은 일본 교토 부근 ‘사토야마’라는 작은 시골마을에 살고 있는 여든이 넘은 상고로 노인에게 주목한다. 상고로 노인이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2 통찰력 있는 문제 제시 능력, 다큐에서 배우자

Bowling for Columbine 볼링 포 콜럼바인(Michael Moore, 2002)

“제작자의 통찰력 있는 시선과 독설이 돋보이는 다큐멘터리.”(KBS 정현모 PD)
[다큐로 공부하기] 스타 PD들이 추천하는 웰 메이드 다큐멘터리
사회 비판 다큐멘터리의 대가 마이클 무어의 2002년 작품이다.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주 리틀턴시에 있는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루고 있다. 범인은 졸업을 앞두고 있던 에릭과 딜런이라는 학생이었는데, 아침에 볼링을 치고 온 이 소년들은 같은 날 학교에서 무려 900여 발의 총을 난사해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을 죽이고 자신들도 자살했다. 감독은 총기 소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시민들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문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는 정부와 국민에게 호소한다.



3 어렵기만 했던 전문 지식, 다큐 한 편으로 올킬

Inside the Human Body 인사이드 더 휴먼 보디(BBC, 2011)

“아무리 다가가도 닿을 수 없는 ‘인간’이란 존재의 여전한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4부작 다큐멘터리. 앵글과 프레임에 스며들어 있는 유머는 보너스.”(EBS 김수현 PD)
[다큐로 공부하기] 스타 PD들이 추천하는 웰 메이드 다큐멘터리
인체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인체가 작동하는 원리를 가장 종합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시리즈다.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중요한 장기들부터 두뇌의 발달, 운동, 의사소통 능력까지, 또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게 된 이유부터 면역 체계에 대한 이야기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전에 볼 수 없었던 생생한 컴퓨터 그래픽과 세상 곳곳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의 인상적인 사연으로 이루어져 있어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Inside Job 인사이드 잡(Charles Ferguson, 2010)

“미국발 경제위기의 맨 얼굴을 드러내는 다큐멘터리. 난사람이면서 된사람이 되는 것이 그렇게 힘든 건가?”(EBS 김수현 PD)
[다큐로 공부하기] 스타 PD들이 추천하는 웰 메이드 다큐멘터리
2008년 미국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신청과 최대 보험사 AIG의 몰락은 미국 경제를 뒤흔들었다. 월 스트리트 쇼크로 글로벌 주식 시장은 휘청거렸고 전 세계는 수십 조 달러의 빚더미에 올라앉으며 세계 금융위기가 닥쳤다. 이 작품은 이러한 2008년 금융위기가 어떻게 시작됐고, 왜 커졌는지, 그 주범은 누구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치학 박사 출신의 찰스 퍼거슨 감독은 정치와 금융의 영역을 오가며 금융자본을 비판한다. 다양한 금융계 거물급 인터뷰와 뉴스 자료화면을 인용한 철저한 분석도 더해졌다. 당시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 등도 자세히 설명한다.



4 다큐멘터리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배워봐

오사카 스토리(나카다 도이치, 1993)

“기획과 연출, 스토리 라인의 승리, 극적 반전이 있는 작품.”(채널A 이영돈 PD)

재일교포 3세인 나카다 도이치가 자신의 집안 이야기를 본인 시각에서 적나라하게 도출한 다큐다. 오사카에서 성공한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여섯 형제의 삶을 영국인 카메라맨인 사이먼의 앵글이 냉혹하리만큼 차분히 따라간다. 나카다가 다닌 영국 런던의 영화학교 졸업 작품이기도 한 이 다큐는 사실 한 편의 드라마다. 그만큼 극적인 요소가 많다. ‘오사카 스토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행한 결혼 생활과 형제들의 심리적 갈등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다가 후반부에 본인이 동성애자임을 밝힌다. 그리고 자신의 연인이 카메라맨인 사이먼이라고 커밍아웃하는 극적 반전을 보여준다.



모들린 가족 이야기(Sergio Oksman, 2012)

“실화라고는 믿을 수 없는 한 가족의 기이한 궤적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의 문명이 멸망하는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마저 든다.”(EBS 김수현 PD)

[다큐로 공부하기] 스타 PD들이 추천하는 웰 메이드 다큐멘터리
[다큐로 공부하기] 스타 PD들이 추천하는 웰 메이드 다큐멘터리
2012년 EIDF(EBS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 상영작인 26분의 짧은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은 마드리드를 걷다가 모들린 가족에 대한 사진, 편지, 물품 등을 우연히 쓰레기통에서 줍는다. 그리고 그것을 단서로 모들린 가족을 추적해 나간다. 로만 폴란스키의 ‘악마의 씨’에 단역으로 출연했던 앨머 모들린은 미술가 아내 마가렛과 유럽으로 떠나 유럽 영화나 TV 시리즈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하지만 주목받지 못하고, 부부는 사망한다. 감독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몇 개의 사진과 책, 여권, 아내의 작품 비디오테이프 등이 전부지만 세심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



다큐멘터리를 엄선한 현직 PD는 누구?

채널A 이영돈 PD
다수의 히트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만든 스타 PD. 현재 채널A에서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 ‘이영돈 PD의 논리로 풀다’를 기획, 진행자로도 활약하고 있다.


KBS 정현모 PD
KBS 콘텐츠본부 다큐멘터리국 프로듀서. ‘KBS 일요스페셜’, ‘KBS 스페셜’, ‘추적 60분’ 등을 제작했고 2013년 ‘공부하는 인간’을 연출해 화제가 됐다.


EBS 김수현 PD
2009년 입사 후 ‘공감’, ‘60분 부모’, ‘부모가 달라졌어요’ 등을 제작했다. 현재 EBS 대표 프로그램 ‘지식채널 e’를 연출하고 있다.


글 박해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