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를 잃었다면 빛을 찾아가야죠
하루키 신간의 주인공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입니다. 우리는 빛의 반사로 색을 인식하죠. 결국 색채를 잃었다는 것은 빛을 잃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다자키 쓰쿠루는 몰개성화되어 빛을 반사해낼 수 없는 색채를 잃은 존재들의 초상입니다.

색채를 잃은 인간 군상이 모여 있는 사회에 드리워진 정서는 허무와 무기력입니다. 캘리포니아대학의 철학 교수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하버드대학의 철학 교수 숀 켈리가 공저한 ‘모든 것은 빛난다’는 바로 이런 현대인의 실존 상황인 허무와 무기력을 끄집어내고 있습니다.

이들이 현대인의 허무와 무기력의 원인으로 살펴보는 것은 두 가지인데요, 바로 서양 중세시대의 ‘유일신 전통’과 계몽주의가 추구한 ‘개인의 자율성’입니다. 이 두 가지 전통 모두 의미의 생산이 한 곳에서만 이루어진다고 환원합니다. 바로 창조주 유일신과 자율적인 개인의 내면입니다. 유일신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절대자로 도저히 그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자율적인 개인은 어떤가요? 그에게 주어진 선택의 책임은 너무나도 크고 무겁습니다. 이런 투쟁의 모습과 대안적 가능성이 비근하게 묘사된 것이 ‘모비딕’입니다. 모비딕은 흰 고래로 표상되는 유일신과 에이헤브 선장 개인의 처절한 투쟁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결국 ‘모비딕’이 흰 고래와 에이헤브 선장 모두 바다로 가라앉히는 것으로 끝내는 것은 의미심장하지요. 저자들에 의하면 양쪽 모두 의미 찾기는커녕 허무와 무기력을 낳았을 뿐입니다. 저자들은 이러한 허무와 무기력의 상태와 그에 대한 대안을 다양한 서양 고전을 통해 이야기합니다.

결론적으로 두 철학자가 성찰해내는 것은 일상의 ‘모든 것은 빛난다’는 점입니다. 일상에서 빛나는 순간들과 조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고대의 ‘다신적 사고’와 유사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의미는 신이 부여하거나 나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빛나는 일상 속에서 무수한 신이 던져주는 의미의 떡밥을 냉큼 물어버리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루키의 다자키 쓰쿠루는 색채를 찾기 위해 ‘순례’를 떠납니다. 재미있게도 이 순례라는 말에는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죠. 다자키 쓰쿠루가 색채, 즉 의미를 찾으려면 결국 모든 것을 광원으로 삼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가 떠난 순례는 바로 빛을 찾는 순례겠죠. 이 책이 이야기하는 ‘모든 것이 빛난다’고 하는 지점이 바로 거기일 겁니다.


허영진
[Book] 색채를 잃었다면 빛을 찾아가야죠
교보문고 북뉴스(news.kyobobook.co.kr)에서 책을 소개하고 추천하고 있는 북 리포터. 삶을 위로(慰勞)하고, 삶의 위(高)로 갈 수 있는 책에 관심이 많다.



모든 것은 빛난다
[Book] 색채를 잃었다면 빛을 찾아가야죠
휴버트 드레이퍼스·숀 켈리│사월의책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 고전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책. ‘뉴욕타임스’가 유례없이 세 번이나 리뷰를 실으면서 ‘2011년 최고의 책’이라 평가했다. 저자들은 우리가 아무런 의심 없이 찬양하는 ‘개인의 자율성’이 삶에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매일처럼 겪고 있는 삶의 불안과 무기력증, 허무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
[Book] 색채를 잃었다면 빛을 찾아가야죠
김용규│휴머니스트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1987년 타계하기 직전 남긴 신과 인간에 관한 근본적인 24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담았다. 저자 김용규는 24가지 질문이 고 이병철 회장의 질문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질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에서 시작하여 ‘종말은 언제 오나’에 이르는 숙명적 문제들을 진지하게 성찰할 것을 독자들에게 제안한다.



눈에 띄는 책
기생충 열전
[Book] 색채를 잃었다면 빛을 찾아가야죠
서민│을유문화사
기생충을 대중에게 알리는 전도사로 알려진 서민 교수가 네이버캐스트 ‘생물산책’ 섹션에 각종 기생충에 대해 연재한 것을 엮은 책. 쉽고 맛깔 나는 필치로 기생충 이야기를 풀어간다. 몸에 좋은 기생충·나쁜 기생충·이상한 기생충은 뭔지, 어떻게 우리 몸속에 침투해 어떤 증상을 일으키고 어떻게 공존하는지 혹은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지 등의 내용이 흥미롭다.


신을 찾아 떠난 여행
[Book] 색채를 잃었다면 빛을 찾아가야죠
에릭 와이너│웅진지식하우스
자신에게 맞는 신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 저자의 체험과 통찰을 유머와 재치, 그리고 온기를 담아 쓴 책. 이슬람 수피즘, 불교, 가톨릭 프란체스코회, 라엘교, 도교, 위카, 샤머니즘, 유대교 카발라까지 8개 종교에 대한 체험을 저자의 남다른 유머 감각을 더해 썼다. 정신없이 키득거리게 되지만, 다 읽고 나면 ‘재미’ 이상의 메시지를 남겨준다.


시리얼리스트
[Book] 색채를 잃었다면 빛을 찾아가야죠
데이비드 고든│검은숲
사형이 확정된 연쇄 살인범이 삼류 연재 작가를 감옥으로 부른다. 자신의 자서전을 쓰게 해주는 대가로 자신의 여성 팬들이 등장하는 포르노를 써달라고 요구한다. 기회라면 무엇이든 잡아야만 하는 주인공 해리 블로흐는 어쩔 수 없이 요구를 받아들이고 사건에 휘말린다. 일본 미스터리 시상식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데이비드 고든의 인상적인 데뷔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