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비극과 야망의 파멸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The Place Beyond the Pines)
[Movie]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The Place Beyond the Pines)
감독 데릭 시엔프랜스 출연 라이언 고슬링, 브래들리 쿠퍼, 에바 멘데스, 데인 드한
모터사이클 스턴트맨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루크(라이언 고슬링)는 1년 전 하룻밤을 보냈던 로미나(에바 멘데스)와 우연히 마주친다. 로미나가 자신의 아들을 낳았다는 걸 알게 된 루크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마을에 정착한다. 그러나 이미 다른 남자와 살고 있는 로미나의 현실적인 요구에 부응할 수 없는 루크는 좌절한다. 은행을 털던 루크는 신참 경찰 에이버리(브래들리 쿠퍼)의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는다. 이 사건 이후 에이버리는 출세 가도를 달리지만 15년 뒤,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이 나타난다. 잊고 있던 루크의 아들 제이슨(데인 드한)이 에이버리의 아들 A.J.(이모리 코헨)와 가까워진 것이다.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는 근래 보기 드문 스타일의 영화다. ‘부모 자식 2대에 걸친 복수의 비극과 야망의 파멸을 다룬 대서사시’라는 설명은 1980년대 할리우드 대작 영화들과 함께 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심각하고 복잡한 혈통의 가계도는 TV 드라마 혹은 프랜차이즈 영화에서 사용되며 열렬한 팬 층의 트리비아 놀이로만 사용될 뿐, 장편영화 하나 안에 꾹꾹 눌러 담는 것은 관객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장치라고만 여겨졌다.

심지어 누가 봐도 영화의 전체 주인공이라고 생각할 톱스타 라이언 고슬링은 영화의 절반이 채 지나기도 전에 총을 맞고 목숨을 잃는다. 나머지 절반은 15년 뒤로 껑충 점프한다. “악당 하나가 없어진 것뿐이야.” 정직하게 노동하여 돈을 번다는 일반적인 윤리의식을 거절한 좀도둑의 죽음 같은 건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죽음, 그러나 루크의 흔적은 계속 인물들의 영혼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아버지의 부재, 아버지의 죄, 아버지의 양심, 언제나 잘못된 선택만 하던 아버지의 인생. “번개처럼 달리다가 천둥처럼 파괴된” 그것이 아들의 삶을 구속하며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조급한 청춘의 비극을 유발한다.

감독 데릭 시엔프랜스는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상찬을 받았던 저예산 영화 ‘블루 발렌타인’ 이후 10배가량 뛰어오른 제작비와 큰 스케일의 차기작을 연출했다. 다소 버거울 수 있는 규모였지만, 그는 마치 그래픽 노블을 읽는 듯한 빠른 템포로 거대한 이야기를 돌파한다. 장면과 장면 사이는 촘촘하지 않고 대사가 친절하지도 않지만, 보폭 넓은 점프를 충분히 따라올 수 있게끔 하는 배우들의 집중력과 밀도 높은 연기가 숨죽이고 영화를 끝까지 지켜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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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용언 영화 칼럼니스트